남해에서 만난 사람, 이성이 늘 앞서는 낭만가 A
"... (생각)... 왜 그랬을까?" A는 말했다.
"아니, 지금 니 애인의 패딩 점퍼가 열려 있는데, 지퍼를 니 친구가 대신 올려줬다니까. 참아, 못 참아? 질투가 나, 안 나?"
나는 답답해 하며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내 친구 걔는... 왜 그랬을까?"
"아후..진짜.."
그때 우리는 이성간에 친구로서 어떤 행동까지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 중이었다. A는 자기의 동성 친구가 찰싹 붙어버린 두 장의 깻잎을 떼어 먹는 것에 어려움을 겪을 때, 자기 애인이 살짝 젓가락으로 잡아주는 정도는 아무렇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는 애인이 입고 있는 패딩 점퍼의 지퍼를 친구가 대신 올려 주어도 로봇처럼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유를 불문하고 그 상황에서 어떤 감정이 끓어오르는 지를 묻는 질문에 자꾸만 이유를 찾으니 답답해서 가슴을 쳤지만, A는 그 친구가 왜 그랬는지를 알아야 자신의 감정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의 감정이 질투심인지도 모를 가능성이 크다. 자신도 모르는 감정을 입밖으로 꺼낼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되물었다. 불편하면 고양이처럼 자리를 쓸쩍 떠나버리기 때문에 자리를 옮기는 귀찮음보다는 약한 강도로 그를 괴롭혀야 한다. 이렇게 쿡쿡 쑤셔야지만 감정을 조금이나마 드러내는 A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 조금 심심하긴 하지만, 늘 평화롭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향수처럼 뿜어내지 않고, 대부분 조개처럼 입을 꾹 닫고 자신만의 세상에서 즐겁게 헤엄을 친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질 때가 있다.
A가 좋아하는 것은 그가 설계한 예측 가능한 세상. 그는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집을 만드는 비버처럼 수많은 경험치에서 그만의 자료를 모아 그가 가장 편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삶을 만들고 있다. 그곳에는 편리한 제품들이 가득하고 A의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감정이나 에너지 소모가 없는 곳이다. 두더지가 땅을 파고, 꿀벌이 꿀을 모으고, 비버가 집을 짓듯 A는 자신에 게 꼭 맞는 생활을 만든다. 그것이 A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떡볶이 회담을 해야할지도 몰라."
A의 삶에선 떡볶이 재료가 언제나 냉장고 안에 있어야 한다. 갑자기 떡볶이가 먹고 싶은데 떡볶이를 먹을 수 없으면 그것보다 더 큰 낭패가 없기 때문인 것 같은데,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 분위기를 풀어주는 음식으로 떡볶이만한 것이 없단다. 아무래도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급속도로 떨어지는 에너지를 바로 바로 채울 수 있는 것으로 떡볶이만한 것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A가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보다 유튜브나 설명서를 보면서 기계의 사용법을 익히는 것을 더 자주 보았는데, 그는 자동차를 샀을 때 받은 설명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의외로 '멜로가 체질' 같은 사람간의 대화가 주를 이루는 드라마나 영화도 좋아한다. 대화를 즐기지 않는 그는 드라마 속 일명 '티키타카'(스페인어로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뜻하는 짧은 말, 최근에는 사람들 사이에 빠르게 주고 받는 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출처: '네이버 오픈사전')를 보면서 대리만족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일까.
대학 때 못해 본 한을 풀겠다며 남해 대학에서 열렸던 가요제에 나갔을 때, A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대학생도 아니면서 대학가요제에 나간 나를 응원해주러 왔었다.(남해 군민도 참여 가능했다. 군민 참여자는 나혼자뿐이었지만) 제일 마지막 순서였던 나를 위해 오래도록 기다리게 하는 것이 고맙고 또 미안했는데, 다행히 그는 그날이 정말 재미있었던 날이었다고 말했다. 그말이 인사치레가 아닌 것을 알고 있다. A는 빈말 같은 것을 하는데 에너지를 잘 쓰지 않기 때문이다.
나중에 안 얘기지만, 내가 가요제에 나간 것을 응원하러 왔을 때 느낀 감정이 얼마 전 축구선수 손흥민이 프리미어 리그에서 득점왕이 되는 것을 응원할 때와 비슷한 감정이었단다. (영광) 물론 그때의 감정에 비하면 아주 아주 낮은 강도의 바람이고 응원이었겠지만, 감정의 색깔은 많이 닮았었다고. 응원하는 누군가가 잘 되길 바라면서 마음 졸이며 기다렸다가 잘 되는 장면을 보면서 환호하고(다행히 가요제에서 상을 탔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마무리 했으니 말이다.
A는 남해에서 나고 자랐다. 세상에서 A가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애가 타는 사람인 그의 어머니는 남편을 도와 분주하게 일하며 이 섬에서 그를 키워내셨을 것이다. '또! 오해영' 이라는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인 오해영을 묘사할 때, '집으로 돌아오면서 우연히 발로 차며 걸어왔던 돌멩이에도 정이 들어버려 집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A의 어머니를 보면 '또! 오해영' 속 그 따뜻하고 정 많은 오해영이 떠오른다.
어쩌다 나는 A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도 그런 따뜻함을 보아서 최고의 효율을 찾아 움직이는 A가 얄밉지가 않다. 돌아보면 작업실에 블라인드를 달아주는 것과 같은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 할 때 늘 도움을 주었던 사람은 A였다. 사실 그는 자신의 삶을 지키느라 사람들에게 쉽게 곁을 내어주지 않는 것 아닐까? 그는 관계를 맺는 일에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사람들을 도와주느라 자신의 인생을 다 써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어린시절 A는 웬만하면 집밖으로 나서지 않는 집돌순이였지만, 배우고 싶은 것이 생기면 그곳이 어디라도 갔다고 한다. 문예창작과를 가려고 작문법을 배우기위해 아늑한 집을 떠나 친척집에 머물면서도 그는 글을 쓰며 자신의 세계를 만드는 재미를 배워갔다. 그 즐거움을 좇아 남해를 떠났고, 다양한 형태로 자신이 머릿속에서 만든 세계를 구현해내는 데 몰두했다. 이제는 남해로 다시 돌아와 사람들이 남해에서 새로운 삶을 그려볼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너는 어떤 사람을 좋아해?"
언젠가 나는 물었다. 에이아이같은 A의 마음을 사로 잡는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다.
"... (시간이 걸림)... 음... 그 사람의 가장 아픈 부분까지도 내가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어."
그는 서로가 서로의 아픔을 이해할 때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뜨거운 사랑고백이나 달콤한 애정 표현을 하지 않더라도 사랑하는 존재와 함께 행복하게 '생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사랑하는 존재의 가장 아픈 부분을 낫게 하는 데 정말 필요한 도움을 내어주면서. 느리더라도 그에게 맛있는 음식과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며 늘어질 수 있는 시간을 준다면, 그는 힘을 모아 그가 좋아하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좋은 것을 주려고 애쓸 것이다.
"유록, 가끔은 니가 나보다 내 감정에 대해서 더 잘 아는 것 같아."
하루는 A가 내게 말했다.
"유록, 너는 사람의 마음을 잘 보지만, 그래서 가끔씩 그 사람이 너가 생각했던 사람이 아닐 때 실망감이 클 것 같아."
또 하루는 A가 내게 말했다.
그는 가끔씩 자료를 모아 내게 가장 필요한 연구 결과 보고서를 내어 놓는다.
잘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계속해서 잘 보려고 노력할텐데, 잘 본다고 믿어버려서 보는 것에 게을러질 때가 있다. 보는 것에 게을러지다보면, 자기 마음대로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정해두고 그 사람을 보는 데 소흘해진다.
'왜 그랬을까?'
한 발자국 떨어져서 계속 궁금해하는 것. 이것이 '좋아하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포장해 질투를 하거나 실망을 하는 것보다 관계에 있어 더욱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 아닐까. 자신이 아직 모르는, 그랬을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상대방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보류하는 '거리두기'가 더 필요할 때가 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보다, 나를 계속 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나에게 실망하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
요즘 A를 보며 나도 비버처럼 집을 짓기 시작했다. 편리하고 안락한 나의 삶 속으로 사람들을 초대할 수 있도록, 느리더라도 천천히 집을 지어내는 중이다. 사랑하는 이가 그곳에서 편히 누워 책을 읽고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도록 말이다. 나도 A처럼 뜨거운 감정뿐만 아니라 편안한 마음과 단내가 피어오르는 밥, 따뜻한 지붕으로도 사랑을 표현하며 실질적인 사랑을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