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국수 1탄
“제주에 맛있는 냉면집 있어요?”
나처럼 제주살이를 하고 있는 이들의 모임에서 들은 질문이다. 제주에 평양냉면 혹은 함흥냉면 전문집이 있냐는 거다. 나도 그간 찾는다고는 했지만 전문집은 아직 못 찾았다. 하지만 제주에도 ‘냉면’ 전문집은 있다. 다만 우리가 아는 평양냉면, 함흥냉면 전문점이 아닐 뿐이다.
서울에선 냉면의 세계가 훨씬 촘촘하다. 일반 냉면집도 많지만 계열이 쭉쭉 나뉜다. 일단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이 있다. 평양냉면에도 의정부파, 장충동파 등으로 나뉜다. 그리고 요즘은 브랜드별로도 마니아들이 생겨나고 있다. 함흥냉면 전문점은 오장동에 많이 있다. 하지만 이들도 서로 조금씩 다른 맛이 난다. 그뿐인가? 코다리냉면, 매운냉면, 중국식 냉면 등 수많은 계열들로 나뉘어 진화하고 있다.
서울에서 이렇게 다양한 냉면을 먹어본 사람은 제주의 냉면이 당연히 단출할 수밖에 없다. 자기가 선호하는 냉면집이 있었는데 제주는 물냉면과 비빔냉면으로 내놓을 뿐이니 ‘맛있는 냉면집 아냐’는 질문이 나오는 것이다.
물론 제주의 냉면집 메뉴판에도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이라 쓰여 있다. 하지만 그것은 서울에서의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물냉면과 비빔냉면이다. 어쨌든 물냉면엔 평양냉면이, 비빔냉면엔 함흥냉면이 대표주자니 이름을 그리 붙여놓았을 뿐이다.
지인과 둘이 가서 제주의 냉면집에 가서 물냉면, 비빔냉면을 모두 먹어보았다. 그리고 들었던 생각은 이랬다.
서울에서 먹던, 자기 입맛에 딱 맞았던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을 떠올리면 당연히 만족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냉면들은 그들과 다른 계열이다. 전문냉면이 아니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일반냉면’이다. 겨자와 식초를 넣어야 더욱 맛있어지는 그런 냉면. 그런 차원에서 전문냉면과 일반냉면을 비교하는 것은 세단과 SUV를 비교하는 것처럼 의미 없는 일이다.
일반냉면으로 본다면 나쁘지 않다. 그리고 먹는 사람의 입장을 잘 고려하여 세팅되기도 했다. 물냉면을 먹다 보면 비빔도 먹고 싶고, 비빔을 먹다 보면 물냉면도 먹고 싶어 지지 않던가. 이곳은 이런 사람들을 위해 양념장과 육수를 준비해뒀다. 물냉면을 먹다 양념장을 더하면 비빔물냉면이 되고 비빔냉면을 먹다 육수를 부어도 비빔물냉면이 된다. 재미있는 건 결론은 같아도 서로 다른 맛이 난다는 거다. 기본 베이스가 달라서 그렇다.
왜 제주에 냉면집이 별로 없었을까를 생각해봤는데 그것은 냉면 뽑기에 어려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냉면의 면은 기본적으로 메밀로 만들어진다. 제주엔 메밀은 많았지만 뚝뚝 끊기는 성질의 메밀로 냉면의 면으로 뽑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무릇 냉면의 면은 압축을 가해야 뽑아지는 것이다. 요즘은 다들 기계로 뽑지만 옛날엔 2~3미터나 되는 나무 제면틀에 장정 2-3명이 달라 붙여야 면을 뽑을 수 있었다. 1930년대가 돼서야 무쇠 제면기가 등장했는데(냉면열전《냉면열전》, 백현석, 최혜림 지음, 인물과사상사, p.87) 이는 당시 최신 기술이었다.
본래 제주에 냉면을 먹는 문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였을테니 이 기계가 제주까지 보급되긴 어려웠을 것이다(있긴 있었던 것 같다. 중산간 쪽에선 메밀반죽을 나무 제면틀로 면으로 뽑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확인은 못했다).
옛 제주사람들은 메밀로 메밀 범벅을 많이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귀한 손님이 와야 메밀반죽을 칼국수처럼 덤벙덤벙 썰어 꿩메밀국수를 만들어 먹었다고 하니 냉면이 웬 말인가.
게다가 옛 제주에선 따로 김장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음식을 저장한다는 건 음식이 없을 때를 대비하는 조상의 지혜에서 비롯됐다. 김장은 바로 저장법의 하나인 것이다. 하지만 제주엔 우영팟이 있다. 게다가 겨울도 그닥 춥지 않으니 김장을 하더라도 한 달 남짓만 버틸 정도의 양이면 된다. 그래서 제주민들은 그때그때 우영팟에서 배추며 무를 쑥 뽑아 김치를 해 먹었다고 하니 냉면 육수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동치미’를 담갔을까 싶다.
서울에서도 근대에 얼음이 생산되고 그 얼음을 저장할 수 있는 냉동고가 등장하고서야 크게 유행을 했다고 하니 제주도는 이래저래 냉면과는 인연을 맺기 어려웠던 지역이었던 거다.
최근엔 밀면의 든든한 존재도 한몫했다고 본다. 밀면이 있는데 무슨 냉면, 이랬을지도 모른다. 원래 밀면은 냉면의 차선책으로 만들어졌지만 제주에선 오히려 냉면이 차선이 되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여태까지는 일반냉면과 밀면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10년 사이 제주 이주민들은 늘어난 덕분일까. 사람들이 제주에 있는 냉면에게 바라는 것이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슬슬 전문냉면집을 준비해도 될 시기가 오지 않았을까? 그러니 외쳐본다.
평양냉면, 함흥냉면 전문점 사장님, 제주점도 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