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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난영 Jul 23. 2018

추자도, 외로운 국수의 섬

또 섬국수 5편

결론부터 말하면 추자도는 국수여행자에게는 외로운 섬이었다. 물론 비양도보단 조금 더 많은 국수집이 있지만 섬의 규모에 비한다면 국수의 외로운 섬이 맞다.  


목포와 제주의 중간쯤인 추자도는 그 위치 덕분에 예전엔 전라도였고 지금은 제주도인 독특한 섬이다. 굽이굽이 무인도로 둘러싸인, 목포에서 제주로 오는 뱃길여행 중 마주칠 수 있는 신비의 섬이기도 하다.  


온라인 속의 추자도 역시 비양도만큼 국수가게 정보가 빈약했다. 태반이 낚시요, 올레꾼 이야기였다. 그 속에 간간히 나오는 국수는 짬뽕뿐이었다. 낚시엔 갯바위에 앉아서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짬뽕이 최고죠. 그런 거. 


간혹 국수를 판다는 가게 이름이 등장하기도 했는데 전화번호는 없었다. 심지어 지도에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그 가게는 실존하는 곳일까? 혹시 이미 없어진 가게는 아닐까? 뱃멀미하며 고생하며 갔는데 제대로 된 국수 한 그릇 못 먹고 ‘터덜터덜’ 돌아와야 하는 건 아닐까? 마음이 내내 불편했다. 


하지만 별 수 없었다. 일단 가보기로 했다. 우도, 가파도, 마라도, 비양도 다 가봤는데 추자도를 빼놓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뱃멀미로 고생하며 도착한 추자도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며 약간은 정신 나간 상태로 국수집부터 찾기 시작했다. 겨우겨우 알게 된 주소로 찾아갔으나 식당은 보이지 않았다. 실패인가... 식당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있을 때 함께 간 H가 소리친다. 찾았어! 


간판 대신 입구에 붙어있는 A4지에 쓰여 있는 가게 상호. 네. 존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멸치국수를 먹겠습니다. 


추자도에 가기 전부터 추자도는 멸치가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의 멸치국수는 대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쩌면 춘자멸치국수를 넘어설지도 몰라. 너무 맛있으면 어쩌지? 추자도 오기 힘든데.



하지만 다행히도(?) 그건 환상이었다. 적어도 멸치국수를 먹으러 올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멸치가 유명하다는 추자도의 멸치국수는 특별나지 않는 걸까? 추적에 들어갔다. 


알고 보니 추자도의 멸치는 대부분 젓갈로 가공된다고 한다. 멸치를 전문적으로 말리는 가공시설이 없다고 했다. 혹시나 해서 어떤 가게에 진열되어있는 실한 마른 멸치를 보고 혹시나 해서 ‘이거 추자도 산이예요?’ 물어봤지만 역시나(?) 남해 산이라 했다. 추자도 사람들도 마른 멸치는 남해 것을 선호하는 모양이었다. 추자도산 마른 멸치가 있을 줄 알고 그걸로 우린 국물은 끝내줄 거라 생각했던 건 나의 착각이었다. 


숙소를 잡고 동네를 둘러보니 검색에서 봤던, 낚시인들에게 배달을 하는 중국집이 보인다. 조금 허름해서 진짜 낚시인과 동네 주민을 위한 곳이라 생각되었다. 우도의 하얀 짬뽕이나 가파도 짬뽕, 마라도 짜장면. 그것들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있었다. 가볼까 말까 살짝 고민했지만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신 하추자도로 넘어가 올레꾼들이 오며 가며 사 먹는다는 묵리슈퍼의 배말라면을 먹어보기로 했다.  


그저 약 3km라는 거리만 알아보고 출발했던 묵리슈퍼. 이 정도면 걸을만하잖아? 하지만 언덕이 우릴 기다리고 있는 줄 몰랐다. 저질체력인지라 그마저도 힘겨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은가, 출발했으니 도착하는 수밖에.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잇는 다리를 건너자 드디어 ‘묵리’로 가는 길 표지판이 보였다. 



묵리에 가까이 와서는 오른 만큼 내려가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데 멀리서 '휘익~' 소리가 들렸다. 휘파람 소리 같던 그 소리는 해녀들이 내는 ‘숨비소리’였다. 숨비소리는 숨을 참고 물질을 하다 내쉴 때 나는 소리다. 그 소리가 여기저기서 조그맣게 들려왔다. 묵리의 해녀들이었다. 


해녀들이 놓고 입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바구니들


드디어 묵리에 도착했다. 작은 포구 앞에는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버스가 다니는구나. 어떻게 타야 하는 거지? 하지만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개는 있었지만. 



그렇게 찾아간 묵리슈퍼는 굳게 닫혀있었다. 저... 저기요. 


입구에는 ‘배말(보말)라면 끓여드립니다’라고 쓰여있었다. 혹시나 해서 전화까지 해봤는데 오늘은 다시 못 갈 것 같다는 사장님의 목소리.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영업 끝이었다. 여행이 1박 2일로 예정되어 있던 터라 다음날 아침에 잠깐 들려볼까 생각했지만 동네 슈퍼라 아주 일찍 열 것 같지도 않아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아쉬웠다.  


버스(!)를 타고 상추자도로 돌아왔다. 다행(?)이었던 건 국수집 하나를 더 알아놨다는 거다. 그래서 거길 가보기로 했다. 조촐했다. 멸치국수를 먹어봤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추자도에서 국수를 찾은 것이 잘못이었다.



추자도는 조기와 삼치회가 유명하다. 더군다나 추자도를 많이 찾는 낚시인들은 자신이 잡은 물고기를 먹을 것이다. 숙소는 식사까지 함께 제공하니(옵션이다) 올레꾼들은 주로 숙소에서 식사를 할 것이다. 든든하게 먹고 걸어야 하니 국수를 먹진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국수집이 번창할 이유가 없는지도 모른다.  


궁금해서 나도 숙소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신청해서 먹어봤는데 낚시인들이나 올레꾼들이 좋아할 만했다. 정말 맛있었다. 도착한 당일 저녁에는 옥돔구이와 장어구이가 나왔고 그다음 날 아침에는 돌돔 구이가 나왔다. 



전라도 문화가 남아있어서인지 한상 차림이 푸짐했다. 그러니 아쉽지만 추자도는 외로운 국수의 섬이다. 추자도 여행을 계획한다면 생선구이나 회를 먹는 게 좋겠다.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 계절에 가면 숙소 식사 때 그들이 잡은 생선회가 나올 때도 있다고 하니 복불복이지만 기대해봄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자도에 또 오고 싶은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풍경 때문이다. 크고 작은 추자도의 무인도들이 들쑥날쑥, 가깝게 혹은 멀리 보이는 게 너무나 멋졌다. 나는 제주 본섬에서 오름을 올라 주변의 오름의 실루엣들을 보는 걸 참 좋아한다. 그게 그렇게 멋질 수가 없다. 그 비슷한 광경은 추자도에서, 오름이 아닌 섬의 실루엣들로 보게 된 것이다.  


게다가 추자도는 제주 유인섬 중 유일하게 화산섬이 아니다. 그래서 육지에서 보던 돌(이름은 모르겠다)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맨날 보다가 오랜만에 보면 그게 또 그렇게 반갑다. 그리고 이 섬은 제주와 전라도의 콜라보다. 둘의 문화가 적절히 섞여있어 매우 흥미롭다. 이를테면 밭담이 현무암이 아닌 육지에서 흔히 보던 돌들로 쌓아 올렸다. 그리고 추자도 가게에서 자주 보이던 삼치회는 전라도 남도에서 많이 먹는다고 한다. 



그런 적절한 문화. 그게 추자도의 매력이다. 국수여행자지만 다음에 추자도를 또 찾는다면 삼치회를 먹어보고 싶다. 


#


섬 속의 섬 여행, 그것은 나를 찾는 여행 


15년도 넘은 이야기다. 그때 제주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제주에 있는 대학을 선택한 후배가 있었다. 그런데 그 후배는 6개월 만에 자퇴를 하고 육지로 올라오고 말았다.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그에게 제주는 갇힌 공간이었던 거다. 그는 유배지가 따로 없다고 했다. 지금처럼 저가항공이 엄청나게 날아오르는 시절도 아니었으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하긴 옛 시절 제주는 가장 가혹한 유배지였다.  


제주로 이사 오기 전에 혹시나 나에게도 제주가 유배지면 어쩌지 싶어 미리 예행연습을 했었다. 제주에서 두 달 정도를 미리 살아봤던 거다. 그런데 웬걸. 맞아도 너무 잘 맞았다. 결국 두 달을 채우지도 않고 집을 구했고 바로 육지로 올라와 이사 준비를 했다.  


내게 제주는 열린 공간이었다.  


사람은 무언가를 시도할 때 막막해 보이면 일단 망설이게 된다. 막막함의 높이가 높을수록 포기에 가까워진다. 하지만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면 일단 시작할 수 있다.  


추자군도를 제외한 네 개의 제주 부속섬은 아침 느지막이 출발해도 해지기 전에 돌아올 수 있다. 육지였으면 상상도 못했을, 시간과 공간의 축약이 이뤄지는 곳. 내가 가고자 하면 갈 수 있는 곳, 그게 나의 제주였다.  


서울에선 바다 한 번 보려면 교통체증을 견디어야 했고, 그렇게 간다 해도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에 아무렇게나 만든 것 같은 음식들에 무척 실망을 하곤 했다. 섬에 간다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물리적 거리, 심리적 거리 모두 멀었다.

하지만 제주는 달랐다. 할 수 있었다. 언제든 떠날 수 있었다. 바다도 볼 수 있고, 오름에 오를 수도 있고, 섬에도 다녀올 수 있다. 단 몇 시간만 있어도 충분했다. 이것이 내가 제주에 와서 갖게 된 여유의 진짜 이유였다.  


할 수 있다는 것.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작은 것이라도 완성해낼 때 밀려오는 뿌듯함, 그것은 곧 자존감이다. 국수여행으로 제주의 부속섬에 다녀오면서도 해냈다는 기쁨을 느꼈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뿌듯한 감정이었다.  


해냈어. 해냈다고.


남들에겐 별거 아닐지 몰라도 나에게 있어서는 완성의 첫걸음이었다. 그러니 내게 국수여행은 단순히 국수를 먹으러 다니는 여행이 아니다. 도전과 완성의 의미가 있다. 작은 완성을 이룰 수 있었던 힘은 ‘해볼 만한데’였다. 


혹시라도 살아가며 자신감이 떨어질 때가 온다면 남들의 시선 따위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해보길 바란다. 작은 것을 해내는 힘이 쌓여야 큰 것도 해낼 수 있다. 쌓이는 과정에서 나는 조금씩 빛을 찾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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