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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난영 Jul 09. 2018

마라도는 짜장면이지

또 섬국수 3편

땅끝이라고 하면 가보고 싶어 지는 게 있다. 육지의 땅끝이 해남이라면 대한민국의 끝은 마라도다. 모든 일에도 끝은 있다. 마라도로 향하는 배 안에서 내 국수여행의 끝을 가늠해본다. 제주국수여행의 끝은 좀 보이나?  


마라도는 그곳에서 하루에 소비되는 면을 한 줄로 이으면 최북단인 강원도 고성까지 왕복도 가능할 것 같은 면천국이다. 국수여행자에게도 이곳은 대한민국 최남단의 국수여행지이자 꼭 들려야 할 성지다. 이토록 국수를 사랑하는 섬이 또 있을까.  


아마 ‘마라도의 짜장면이라고 크게 다를 게 있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해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나도 최남단이니까 가보고 싶었던 거지 짜장면을 먹으러 가고 싶진 않았다. 짜장면이 거기서 거기 아니겠어?  


약간의 의무감으로 찾아간 마라도. 배에서 내리자마자 풍경에 입이 벌어졌다. 작은 섬이라 볼 수 있던 풍경. 그리고 짜장면도 그냥 그런 건 아니었다. 다르긴 달랐다. 식당들이 많아 다양하게는 못 가봐서 전부가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식당들 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더 다양한 짜장면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살아남아야 하니까. 



내가 간 곳의 짜장면의 가장 큰 특징은 볶은 매운 해산물 고명이다.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설명하자면 이렇다. 오징어 볶음을 생각하면 쉽다. 그런 볶음인데 오징어만 있는 게 아니라 새우도 있고 홍합도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방풍잎과 톳이 올라온다는 거다. 짜장면 소스와 볶은 매운 해산물 고명과 함께 비비면 매콤한 맛의 짜장면이 된다.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이게 참 맛있다. 게다가 살포시 놓여있는 방풍잎에 짜장면을 싸 먹으면 별미가 된다(제보에 의하면 방풍잎이 올라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사실은 그게 방풍잎인지도 몰랐다. 무언가의 잎이 한 장 가지런히 놓여있길래 사장님께 이게 뭐냐고 여쭤봤는데 방풍잎이라 했다. 잘라서 짜장면을 싸 먹으면 맛있다며 가위를 하나 가져다주셨다. 가위로 방풍잎을 3등분 하여 싸 먹어 봤는데 방풍잎의 서걱서걱한 식감과 참 잘 어울렸다. 짜장면을 쌈 싸 먹는 건 생각조차 못했던 건데 의외로 맛있었다. 그래서 한 장 올라왔던 방풍잎이 너무 아쉬웠다. 방풍잎 추가 500원, 하면 추가해서 먹을 생각도 있는데.  


섬을 돌면서 바다와 맞닿아있는 곳에서 아슬아슬하게 피어있는 방풍잎을 보았다. 해풍을 맞으며 자란 방풍이 마라도에 많이 자라고 있을까? 그렇다면 짜장면에 방풍잎을 올리는 건 탁월한 선택인 듯하다. 톳도 좋지만 방풍잎도 마라도의 상징으로 한번 내세워보는 것은 어떨까. 그게 그렇게 건강에도 좋다던데.  


다음에 마라도에 갔을 땐 같은 가게에서 짬뽕도 먹어봤다. 우도와 가파도에 비해 고명이 부실하지만 국물에서만큼은 다양한 해산물의 맛이 난다. 마라도도 섬이니까 짬뽕에 뿔소라가 올라올 거라 기대했는데 딱새우가 그나마 체면을 세워준다. 



아마도 마라도는 파도가 거세서 해녀들이 물질을 하기 힘들 거다. 더군다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제는 해녀들이 물질을 하는 대신 식당을 많이 차렸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짬뽕의 고명의 푸짐함도 가파도에 비해 떨어지고 그나마도 대부분 외지에서 들여온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해는 간다. 섬의 환경이니까. 이런 상황이다 보니 역시 마라도는 짜장면이다. 가파도는 짬뽕이 유리하고 마라도는 짬뽕보다는 짜장면이 훨씬 유리하다.  


성공한 사람은 자기가 있는 곳을 파악하여 가장 유리한 모습으로 최적화된 사람일지 모른다. 그 사람이 젊을수록 나는 신기하기만 하다. 어떻게 그 나이에 그런 현명함을 갖출 수 있는지. 아마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에서 가장 유리한 것을 무기로 삼았을 거다. 유리한 게 뭔지 일찌감치 깨달은 거다. 나는 살면서 내 장점은 이것이다, 생각하여 한 우물을 팠는데 그게 아닌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마라도에서는 짬뽕을, 가파도에서는 짜장면을 내세웠 던 셈이다. 이런 시행착오를 정말로 오래오래 하고 있다.  


성공은 대단한 게 아닐지 모른다. 자신을 빨리 파악하는 게 사실은 더 대단하다. 내가 나를 완전히 안다면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흔들리지 않았을 텐데. 잘못된 선택을 덜 했을 텐데. 그런 면에서 마라도는 현명하다. 그 시작이 어찌 됐건 짜장면의 섬으로 각인되었으니 잘 찾은 거다. 


나도 마라도의 짜장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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