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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난영 Jun 18. 2018

우도의 세련된 젊은 짬뽕

또 섬국수 1편

우도에 처음 간 것이 벌써 8년 전이다. 4박 5일의 짧은 일정 속에서도 어떻게든 우도는 가보고 싶었다. 그땐 투어버스를 타고 유명한 곳만 들렸었다. 너무나 이색적인 풍경의 우도봉에서 깜짝 놀라고, 서빈백사에서 또 한 번 놀랐다. 그렇게 아름다운 바다색이 있을 줄 몰랐다. 


에메랄드빛의 바다와 새하얀 모래사장은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게 예뻤다. 어느 곳을 찍어 도 아름다운 사진이 나왔다. 그때의 감동은 쉽게 잊을 수 없어 한동안 휴대폰 배경으로 깔고 쳐다보고 또 쳐다봤다.  


우도는 점점 젊어지고 있다. 젊음은 천진항에서부터 시작된다. 분홍, 파랑 스쿠터 군단들은 잠자리 떼처럼 붕붕거리며 우도 한 바퀴 가득 청춘을 뿌리고 다닌다. 스쿠터를 타기에 우도만한 부속섬은 또 없다. 추자도는 너무 멀고, 비양도, 마라도, 가파도는 너무 작다. 그런데 우도는 스쿠터 타기에 적당한 크기다.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몰라도 청춘 마케팅이 잘 통한 것 같다(요즘은 붕붕 소리가 없는 전기 탈 것이 많아졌다). 


청춘들은 우도의 가게들마저 바꿔놓았다. 예쁜데 없어? 색다른 거 없어? 있지 왜 없어. 그렇게 색다르고 예쁜 카페가 들어서고 식당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짬뽕도 세련되고 젊어졌다.  


무릇 짬뽕이란 시뻘건 국물에 홍합이 잔뜩 올라간 면요리다. 이 짬뽕에도 나름 계보가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배달 짬뽕이다. 짜장면과 더불어 무지 빨리 배달된다. 거기서 뻗어 나온 라인이 더 매운 짬뽕이다. 피똥 쌀만큼 매운 짬뽕에 도전하는 마니아들도 많다. 


그리고 또 하나의 라인이 있다. 그것은 하얀 짬뽕이다. 국물은 하얗지만 매운맛은 간직하고 있으며, 해산물 고명이 잔뜩 올라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얀 짬뽕 계열은 특히나 ‘디자인’이 가미된 경우가 많다. 그러니 예쁜 짬뽕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  


내가 먹은 우도의 짬뽕은 하얀 짬뽕 라인이며 역시 디자인이 입혀졌다. 그릇도 거의 도자기급이다. 넓고 깊은 그릇에 하얀 국물이 가득 채워진다. 고명은 뿔소라와 딱새우가 포인트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요즘 그 가게에선 뿔소라와 딱새우를 먹지 않고 남기는 경우가 많아서 새우튀김과 흑돼지 등심 샤브샤브로 바꿨단다. 나는 뿔소라와 딱새우도 좋았는데 청춘들의 생각은 또 다른 모양이다. 손으로 까먹어야 하는 불편함 때문일까. 아무튼 실험정신으로 계속해서 ‘새로고침’을 하는 것이 젊어진 우도답긴 하다.  


하얗지만 매콤한 국물과 함께 면을 먹고 다양한 고명들을 먹으면 버라이어티한 맛이 쿵탕거리며 후끈 달아오른다. 역시 이것이 짬뽕의 매력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짬뽕은 좀 매워야하고 ‘짬뽕’이라는 이름처럼 다양한 고명이 올라와줘야 한다.  


간혹 예쁜 것만 도드라지고 실체가 없어진 음식들을 만날 때가 있다. 이를테면 유명 아티스트가 디자인한 그릇에 맵지 않은 맑은 국물에 고명 없는 국수에 짬뽕이란 이름이 붙었다면 그것은 짬뽕일까? 아닐까? 우리가 조금씩 다른 모양과 맛이어도 그것이 짬뽕임을 인지하는 것은 역시 매운 국물과 화려한 해물 고명 때문이다. 짬뽕의 전통, 홍합이 들어가면 더할 나위 없다. 이런 짬뽕의 본질이 사라진 국수는 짬뽕이 아니라 다른 국수다. 다른 이름을 붙여줘라. 잘만하면 국수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으니 해볼 만하지 않는가?  


젊은 감각, 트렌디. 다 좋다. 하지만 본질은 지켜져야 한다. 본질의 맛을 배제한 채 디자인만 가지고 승부해도 될 것 같겠지만 절대 아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인지된 것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여의치 않으면 다른 국수라고 인지시키는 것이 훨씬 낫다. 누군가 저쪽을 가리킨다면 저쪽을 봐야지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면 안 된다. 손가락은 본질이 아니다.  


어느 순간 내가 싫어질 때 본질을 탐구하지 않은 채 아슬아슬하게 경계를 넘나들며 남의 삶을 차용해보려고 한다. 그 사람처럼 살면 행복해지기라고 할 것처럼.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된다. 가장 나다 운 것이 행복하다는 걸. 나의 본질은 나다. 짬뽕은 짬뽕일 때 행복한 거다. 거기에 예쁘기까지 하면 인기도 많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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