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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난영 Jun 11. 2018

제주도와 경기도를 잇는, 자구리 국수

바다국수 4편

처음 ‘자구리국수’의 이름을 들었을 때 ‘자구리’가 제주어인 줄 알았다. 개구리도 아니고 자구리? 그러다 곧 서귀포에 자구리 해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중섭 화가가 그곳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급부상하는 호기심. 나에겐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자에 대한 무한 호기심이 있다. 그가 무엇을 보았는지 알고 싶어 졌다.  자구리가 무엇이든 가자, 그곳으로.  


자구리는 경기도 방언으로 ‘밴댕이’를 뜻한단다. 어째서 경기도의 방언이 제주로 내려왔을까? 자구리 해안에 밴댕이가 많이 잡힌단 말인가? 온갖 궁금증이 난무하는 가운데 국수를 먹었고 결국 식당 사장님께 자구리 해안과 자구리 국수, 그리고 경기도 방언인 자구리에 대한 연관성을 들을 수 있었다. 사연은 이랬다.  


먼저 자구리에서의 ‘리’는 행정구역이고 ‘자’는 스스로자(自), ‘구’는 구할 구(求)로 스스로 구하는 동네쯤 된다. 사장님의 말에 의하면 옛 제주의 관리들의 애첩들이 이 동네에 많이 살았다고 한다. 왜 이 마을에서 많이 살았는지도 궁금했지만 그 이유에 대해선 말씀해주지 않으셨다. 어쨌든 시간이 흘러 관리들이 섬을 떠난 후에는 애첩들이 홀로 남아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하며 살았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마을 앞에 있는 바다도 자구리 해안이다.  


사장님은 마을이 자구리이기에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국수 이름을 자구리국수로 지었다 했다. 이름만 그럴 뿐 실상은 멸치국수였다. 그런데 어떤 이로부터 경기도에서는 자구리가 밴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래? 그렇다면 그 이름을 찾아주자. 


그래서 멸치국수에 밴댕이를 더 추가하여 국물을 우려냈다고 한다. 그렇게 자구리국수는 진짜(?) 자구리 국수가 되었다. 그러니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화개장터만큼 경기도와 제주도를 잇는 화개국수가 됐다고나 할까. 사장님의 센스에 박수를 쳐드리고 싶다. 


자구리국수는 밴댕이와 멸치를 메인으로 육수를 만들고 생면으로 국수를 삶아 낸 것이다. 처음에는 춘자멸치국수처럼 맑은 것일 거라 생각했으나 그쪽 라인은 아니었다. 깔끔라인이라기보단 묵직라인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지만 지역주민들이 좋아하는 국수는 묵직라인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동네 주민들이 자주 찾는 국수집의 특징을 볼 때 맑은 육수의 깔끔한 맛이기보다는 어느 정도는 강한 면이 있었다. 조미김이 많이 올라가 있고, 간이 좀 세고, 뭔가가 많이 들어가 있는 뭉툭한 맛이다. 여기도 그랬다. 그러니 이런 맛을 좋아한다면 관광지에 있는 식당보다는 지역주민들이 잘 가는 동네국수집이 잘 맞을 것이다. 



자구리국수를 먹고 바로 앞에 있는 자구리 해안으로 나가보면 이중섭화가의 흔적과 마주할 수 있다. 그는 한국전쟁 때 제주도로 피난을 왔다. 그 몇 개월 동안의 제주에서의 피난생활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한다. 비록 먹을 것이 없어 섶섬이 보이는 이 해안에 아이들과 나와 게를 잡아 곯은 배를 채웠다지만 가족과 함께 단란하게 보낸 시간만큼은 무척 행복했던 듯하다.  



상상해보건대 피난민들에게 배급되었다던 밀가루로 이중섭도 국수, 혹은 수제비를 해 먹지 않았을까? 수제비도 국수의 영역을 끌어들인다면 그는 이곳에서 잡은 게로 국물을 내어 뜨끈한 국물의 국수를 만들어먹었을 수 도 있다. 호호~ 불어 가족과 함께 한 그릇을 먹는 그의 모습이 눈 앞에 선하다. 

 

어쩌면 자구리는 ‘함께 행복한’ 동네로 재인식될 수 있을 것 같다. 이중섭도 그랬고, 자구리국수도 제주도와 경기도와 함께하여 행복해졌다. 자구리는 옛 제주에선 먹을거리를 스스로 구해야 하는 동네였을지 몰라도 이제는 화합을 스스로 구하는 동네가 될 것이다. 



요즘 제가 '제주 유기견/반려견에 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글을 읽어주세요. ^^ 제가 쓴 글입니다. 


https://brunch.co.kr/@foodsister/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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