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난영 May 28. 2018

해녀가 직접 잡은 성게로 끓이는 성게국수

바다국수 2편

성게는 날카로운 가시가 동그란 몸에 잔뜩 돋아있다. 제주에서 많이 잡히는 것은 주로 보라성게로 멀리서 보면 검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진한 보라색을 띠고 있다. 성게는 온몸에 돋아있는 가시를 움직여 바다 밑을 걷는다. 해초류를 먹으며 바다를 유유히 ‘걸어’다닌다.  


제주에서는 해녀가 직접 잡은 성게로 국수를 만들어 파는 곳이 있다. 이런 곳에는 해녀들이 물질을 할 때 사용하는 테왁과 망사리를 쉽게 볼 수 있고 마당이 있는 곳이라면 빨랫줄에 널려있는 검정 해녀복도 볼 수 있다. 나는 이런 풍경을 보는 게 너무나 즐거웠다. 그래서 성게국수를 더욱 맛있게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제주의 성게국수는 대부분 해녀와 관련이 있었다. 그래서 내겐 성게국수는 곧 해녀국수다.  


제주로 국수여행을 올 때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더랬다. 해녀를 만나야지. 왜 그리 해녀에게 끌리는지는 몰라도 꼭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해녀를 만났냐고? 물론 만났다. 그것도 자주 만났다. 해녀의 수가 줄고 있는 실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제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해녀를 직접 보지 못한다 해도 그들의 흔적은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여행 중 도저히 만날 수 없겠다 싶으면 해녀가 운영하는 성게국수집을 찾으면 된다.  


평대리에서 먹은 성게국수는 성게 향이 끝내줬다. 너무 맛있어서 사장님(=해녀)께 여쭤보니 제주 성게는 달짝지근하단다. 슴슴한 맛의 성게는 육지 것이라고. 사장님은 성게철에 성게를 잔뜩 잡아다 손질을 하여 얼려두고 사용한다고 했다. 성게알은 금방 녹아버리기에 냉동이 필수다.  


국물은 조개와 멸치 등을 사용하여 우려낸다 하셨다. 내가 너무 맛있어하니 국수를 만들려고 해동시켜둔 성게 한 덩이를 떠 내 입에 슬쩍 넣어주신 다. 성게향이 확, 퍼진다. 성게철에 잔뜩 사서 퍼먹고 싶을 정도였다. 제주에서의 사치라면 그런 게 아니겠는가.



또 성게철에 섶섬이 보이는 식당에 가면 해녀할망이 식당 옆에서 성게를 다듬고 있는 현장을 볼 수도 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현역 해녀로 활동하시는 할망이 있다. 운 좋게도 내가 갔을 때 해녀할망은 식당 한편에서 직접 잡아온 성게를 맨손으로 까고 계셨다. 


나 이때 엄청 흥분했었다. 해녀를 본 것만 해도 좋았는데 그 분과 이야기할 수 있다니. 거기에 해녀할망은 성게를 까서 내 입에 넣어주시기도 했다. 까울. 나 해녀에게 2연타로 성게 얻어먹은 여자야. 


 

이 곳의 성게국수는 조금 다르다. 대파가 진짜 많이 들어간다. 혹자는 이 대파 때문에 성게 맛이 덜 난다고 하지만 나는 정말 맛있게 먹었다. 내 특유의 버릇, 맛있으면 국물을 미친 듯이 떠먹는다. 차가우면 벌컥벌컥 마신다. 여기도 그랬다. 성게가 이렇게 맛있는 줄 육지에서는 미처 몰랐다. 괜히 가시 만발한 성게가 이뻐 보이기까지 한다.



사실 성게는 삐쭉빼쭉한 가시로 온 몸을 방어하고 있지만 굉장히 부드러운 녀석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부드러운 속살 때문에 그런 갑옷은 단단히 차려입었을지 모른다.    


실은 나도 그랬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방어하기 위해 가시를 세우고 독을 품었던 건지... 처음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을 테지만 시간이 흘러 이제는  무엇 때문에 그리했는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제주로 내려오고, 내 삶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나의 가시덤불이 나는 내 안의 서서히 붕괴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젠 성게처럼, 인생의 가시를 거두고 찬란한 나의 향을 만들어 나갈 때다. 전진~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foodsister

이전 07화 낯선 맛이 오히려 제주다운, 보말칼국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