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맛이 오히려 제주다운, 보말칼국수

바다국수 1편

by 홍난영

만재도에서 자급자족하는 모습이 그려진 <삼시세끼 어촌 편(차승원, 유해진)>엔 다양한 갯것들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는 물고기를 잡지 못한 날, 어김없이 등장하여 훌륭한 식재료가 되어주었던 보말이라는 녀석도 있었다. 그들은 바위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보말을 떼어다 즐겁게 한 끼를 해결했다.


보말은 고둥을 통칭하는 제주어다. 어렸을 때 외할아버지(외갓집은 경상도에 있었다)는 계곡에서 고둥을 잡아오시곤 했는데 그들은 고깔모자처럼 빼쪽한 나선 모양의 껍데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보말이 길쭉한 녀석들인 줄 알았다. 하지만 보말이라 부르는 고둥은 대체로 넙적한 나선 형태, 동글뺑이라는 이름이 쓱 떠오르는 녀석들이었다.


보말이 제주에서만 나는 건 아니지만 제주 특유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만큼 꼭 먹어보고 싶었다. 솔직히 말해서 ‘보말’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설렐 수가 없었다. 마침 제주 지역민으로부터 추천받은 식당도 있었다. 숙소에서 약 1.2km. 걸어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런 날 보말칼국수를 먹겠노라 나선 것인지. 비가 엄청나게 왔다. 제주에서 그렇게 비가 온 것을 처음 봐서 육지 생각하고 우산 하나 달랑 쓰고 용감하게 나섰는데…….


제주의 비는 올곧지 않았다. 사방팔방에서 치고 들어와서 우산을 쓰는 게 나은 건지, 차라리 쿨하게 던져버리고 가는 게 좋을지 모를 그런 비였다. 내가 제주의 비를 우습게 봤구나……. 한여름이었는데도 당당하게 내놓은 슬리퍼의 맨발이 시려웠다.


우산이 있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반쯤은 비에 젖은 몰골로 들어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보말칼국수를 받았을 때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냄새 좋고~! 마침내 뜨끈하게 한 젓가락 입에 넣었을 때 뭉근하게 퍼지는 보말의 향. 아, 이것이 보말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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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들어있는 감자는 보말의 맛을 은은하게 끌어올리고 있었다. 신의 한 수였다. 그렇게까지 배고프진 않았는데 허겁지겁 국물을 떠먹고 면을 빨아들였다. 보말칼국수가 이렇게 맛있는 거구나~ 내 너를 내 마음속 바다국수 1위로 올려주리라.

정말로 맛있어서 그 뒤로도 여러 번 갔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지인에게 추천을 하게 됐는데 그들은 식당 위치가 관광지와 상관없는, 그냥 어느 동네에 있는 식당일 뿐인데도 굳이 찾아가는 정성을 보였다.


그러다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사람에 따라 보말칼국수가 호불호가 갈린다는 거였다. 어떤 이는 보말 향이 진하게 나는 것이 맛있다 했지만 어떤 이는 ‘향토맛’을 좋아한다면 먹을 만하겠다고 돌려 돌려 말했다. 그때만 해도 음식의 개인 취향이야 다양하기에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밀면으로 이미 유명한, 그러면서 보말칼국수로도 많이 알려진 식당에서 미역 칼국수에 가까운 보말칼국수를 먹었을 때 나는 깨달았다. 처음에는 이것도 보말칼국수라 할 수 있을까 상당히 고민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보말 향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에겐 잘 맞을 것 같다. 아니, 이 가게가 잘 되는 걸 보면 오히려 나 같은 입맛이 소수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래서 보말보다 미역의 맛이 강한 칼국수가 더 인기가 있는 거구나.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알기에 보말 향을 잡아주는 미역을 사용한 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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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보말 향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을. 어느 쪽이든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거다. 내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폄하할 필요는 없다. 우리들의 입맛은 다양하니까.


그러고 보면 나 또한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나의 맛과 향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게 가장 좋을 것이다. 향토맛이 나면 어떻고, 대중적인 맛이 나면 어떤가. 통하는 사람과 만나 즐겁게 살면 되는 것을.


그렇다고 그 안에 매몰되어 살고 싶진 않다. 두루두루 맛보면서 다양한 매력들을 느끼며 살아갈 거다. 다른 건 틀린 게 아니니까.



강아지, 탐탐이와 제제 이야기 https://brunch.co.kr/magazine/tamt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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