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국수 최고 난이도, 순대(고기)국수

고기국수 6편

by 홍난영

순대국수도 낯선데 순대고기국수라. 그 이름은 어떤 형상의 음식을 지칭하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순대고기 국수인건지, 순대 고기국수인건지. 띄어쓰기에 따라 휙휙 갈려 상상되는 국수라니. 순대고기 국수라면 순댓국의 그것이 생각나고, 순대 고기국수는 고기국수에 순대가 덤으로 나오는 게 연상됐다. 아무튼 가보기로 했다. 직접 먹는 자만이 한 그릇에 담겨있는 이야기를 취할 수 있으니!


* 사실 메뉴판에는 아래 그림처럼 나와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순대고기국수가 아니라 순대국수도 팔고 고기국수도 판다는 뜻이었다. 착각에 의해 이 글은 고기국수 편에 들어왔다. 그래도 고기도 꽤나 많았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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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말해두자면 나는 순대국수를 먹어봤다. 순대국수 이야기는 다시 이야기할 예정이다. 이곳의 순대고기국수는 다른 두 곳에서 먹었던 순대국수와는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이곳에서 추구하는 순대고기국수는 그야말로 순대국 반, 고기국수 반이었다. 국물을 떠먹어보면 곧 느낄 수 있다. 순대국 특유의 맛과 고기국수 특유의 배지근함이 함께 느껴진다. 그 섞임이 절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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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따라 여행도 갈 겸 국수도 맛보는 재미에 빠졌던 H는 더 이상 국수는 그만, 이라며 순대백반을 시켰었다. H의 순대국을 먹어보니 순대고기국수와의 차이가 확 느껴졌다. 순대국에선 돼지 간의 맛이 월등하다. 하지만 역시 순대고기국수에선 배지근함이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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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수준이면 고기국수 좀 먹어본 사람으로는 안 되겠다. 순대국도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가능할 레벨이다. 맛은 심심한 편이어서 매운 고추와 함께 먹어야 하니 이왕이면 매운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더 좋겠다. 그러니 순대국 맛, 배지근함, 매운맛을 소화할 수 있다면 그에겐 최상이 음식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맛들에 자신이 없다면 당부하건대 차라리 두루치기를 시키자.


이런 걸 보면 국수여행에도 모험은 있다. 그저 먹고 다니는 여행이라 우습게 보지 말아 달라. 모험이 익숙함 대신 일부러 낯섦을 택하는 것이라 면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맛에 도전하는 것도 모험이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국수를 통해 깨달음도 얻고 있으니 여행의 요소는 다 갖추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고기국수의 끝판왕까지 소개하며 국수여행의 한 코너, 고기국수로드를 마칠까 한다. 초보자가 먹기 적당한 고기국수로 입문하여 순대고기 국수까지 섭렵한다면 그대는 고기국수 마스터다. 국수집 근처에는 늘 멋진 제주풍광이 있으니 소화도 시킬 겸 두루두루 살펴보시길. 그러다 나처럼 제주로 이사 오고 싶어 져도 책임 안 짐.



한 그릇의 고기국수처럼


제주여행 중 한라산을 오른 적이 있다. 등산 초보인 나는 시작하면 어떻게든 오르겠지, 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떻게든 오르긴 올랐다. 정상에 올라도 운 나쁘면 백록담을 못 본다는데 나는 그것도 봤다. 하지만 나는 굉장히 화가 났었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그렇게 화가 났던 적이 없었다.


한라산이 화산이라 그런가. 울퉁불퉁한 돌덩어리는 왜 그렇게 많은지, 또 올라갈수록 그 돌덩어리의 크기는 왜 점점 더 커지는 건지. 까딱하다간 발목이 나갈까 싶어 발끝만 보고 올라야 했다. 경사도 높았다. 누가 성판악 코스가 쉽다 그랬어. 오르는 내내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하더니 정상 가까이에 와서는 폭발 직전이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올랐던 까닭은 오직 하나였다. 백록담이었다. 또 나 혼자 화를 내봤자 별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백록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SNS로 자랑질을 하며 한껏 정상에 오른 기쁨을 만끽했다. 그리고 이젠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내려가는 건 좀 수월하겠지. 잘 참고 올라왔어.


하.지.만.


웬걸, 내려올 땐 더 큰 화가 올라왔다. 그 화를 꾹꾹 참는 것이 얼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는지 함께 등반한 친구는 ‘썩은 표정’이라고 반은 놀리고 반은 걱정을 했다. 그 와중에 생각한 ‘화가 나는 이유’는 오르는 건 포기할 수 있으나 내려오는 건 포기할 수 없다는 거였다. 그야말로 살려면 어떻게든 내려가야 했다.


어쩔 수 없음.


어쩔 수 없이 한라산에 꽁꽁 매여 있는 내가 싫었다. 그래서 미치도록 화가 났던 거다. 내가 왜 여기서도 매여 있어야 되는 거야!


제주로 이사 온 후 성판악 탐방로 입구를 지나간 적이 있다. 입구 앞으로 주르르 주차되어있는 차들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지금 이 한라산 안에서는 이를 악물고 올라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겠지? 그 사람들을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처음엔 내게 악마 기질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여유였다. 내게 여유가 생긴 거다.


한라산이 그 옛날, 용암을 내뿜으며 아우성을 치다 고요해졌듯 나 또한 한라산을 오르내리며 젊은 날의 어쩔 수 없던 상황들은 화산 폭발하듯 다 쏟아버리고 왔던 거다. 그리고 나는 고요해졌다.


사람이 가장 평화로울 때는 모든 것의 하모니가 잘 이뤄졌을 때다. 사람뿐만 아니라 국수도 그렇다. 육수와 면, 그리고 고명이 하모니를 이룰 때가 가장 맛있다. 우리가 힘들다고 느낄 때는 삶의 균형이 깨졌을 때다. 어느 한쪽이 무너졌을 땐 인생이 피곤하다. 이를 회복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조화를 이뤄야 한다.


결국 인생도, 국수도 균형을 잘 맞추기 위한 여정이다. 새로운 환경은 늘 밀물처럼 밀려온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밀물을 탓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밀물은 당연한 것이고 그 안에서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 내 몫일뿐이다.


나는 여전히 고기국수에 탐닉하고 조화로운 맛을 찾았을 때 환호한다. 그것이 마치 내 인생이라도 되는 듯. 조화로운 국수를 찾았을 때 마치 내가 그 안에 빙의되는 것처럼 기분이 좋다.


사실 국수를 만든다는 건 하모니를 오롯이 한 그릇 담아내야 하는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있어 제주도 한 그릇의 국수다. 비틀린 인생을 여기서 잡아나가고 있으니까. 밀물과 썰물로 둘러싸인 이 한 그릇의 섬에서 나는 오늘도 나만의 균형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저주하며 내려왔던 한라산을 언젠가는 다시 올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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