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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난영 Jun 04. 2018

차세대 제주국수가 될, 몸국국수

바다국수 3편

도대체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 걸까? 옛 문헌에서나 보던 ‘아래아’가 등장하는 음식명. 이를 보통은 몸국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제주를 다녀보니 이 ‘아래아’가 등장하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보였지만 어떻게 읽어야 할지 애매했다. 몸국일까? 맘국일까?  


제주 지역민에게 물어보니 그 발음은 ㅗ 와 ㅏ 사이라 했다. 뫔? 모암? 혀를 꼬아가며 발음해봤지만 영 어색하다. TV에서 보니 ‘모오왐’정도로 길게 발음하던데. 여튼 아래아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몸국은 제주사람들이 예부터 먹어오던 향토음식이다.  


몸은 모자반이라는 해초다. 제주엔 예로부터 ‘돗추렴’이라는 문화가 있었다. 돗추렴은 마을에 경사가 있을 때 돼지를 잡아 동네 사람과 나눠먹는 풍습이다. 식재료가 부족한 제주에서 돼지는 알뜰하게 먹어야 할 존재였고, 그래서 뼈까지 고아 우려낸 국물에 모자반과 메밀가루를 풀어넣어 먹었다. 그것이 바로 ‘몸국’이다. 제주사람들은 진하게 우려진 국물에 몸과 메밀가루를 풀어 남김없이  한 끼 식사로 만들어 먹었다. 몸과 돼지고기의 궁합이 그렇게 좋다고 하니 ‘몸’은 ‘몸’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듯하다. 


보통 몸국은 밥을 말아먹는다. 제주여행을 다닐 때 이 몸국을 먹어보고 싶었는데 국수가 아니라서 고민을 했더랬다. 그래도 제주에서만 먹을 수 있는데 한 끼 정도는 밥을 먹어도 되지 않을까? 아무리 국수여행을 떠나왔다고 해도 매 끼니를 국수로 먹어야 하는 사명감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이제 가면 언제 또 몸국을 먹으러 온단 말인가. 이렇게 막 갈등하고 있을 찰나 등장하신 제주지역민.  

 

“몸국국수 하는 데 알아요. 거기 동네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이에요.” 


그렇게 내 앞에 나타나신 몸국국수.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뚝배기에 몸들은 몽글몽글, 국수는 반짝반짝거렸다. 국물은 돼지고기 베이스라 배지근했고 해초 특유의 맛이 쑥, 올라왔다. 역시 둘은 잘 맞는 것 같다. 여기에 메밀가루도 좀 풀었을까? 걸쭉한 국물과 함께 딸려 올라오는 면발. 내 입에 딱이었다. 



그뿐인가, 퓨전 몸국국수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문어몸국라면’이다. 한 고깃집에서 술국으로부터 출발하여 정식 메뉴 자리를 꿰찬 그 음식은 술국 출신처럼 매콤했고, 몸이 함께하여 든든했다. 거기에 살짝살짝 등장해주시는 문어까지. 



제주지역민들이 몸을 먹기 시작한 것은 맛보다는 양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곡식이 귀한 제주에서 양을 불려먹는 방법은 제주에서 많이 나는 몸과 메밀가루였으니까. 시작은 ‘양’이었을지 몰라도 시대가 바뀌면서 그것은 제주민에게는 ‘건강식’으로, 여행자들에겐 ‘제주의 맛’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서서히 고기국수의 뒤를 잇는 차세대 제주국수가 될 것이다. 고기국수의 형제이기도 하니까.  


제주로 이사 오고 국수 외에 다양한 음식을 맛보게 되면서 제주음식 전반에 몸이 많이 사용된다는 것을 알았다. 돼지고기 육수가 사용되는 음식이라면 몸은 단짝 친구처럼 따라왔다. 해장국, 순대국밥 등등.  


그런 의미에서 나는 몸일지 모른다. 나는 몸국, 해장국, 순대국밥처럼 메인은 아니라 생각한다. 하지만 몸처럼 그들을 더 맛있게, 더 든든하게 만들 수 있는 2인자, 혹은 3인자다. 사실 이걸 깨닫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내가 메인인 줄 알았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사람이 메인이 될 수도, 또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나는 몸인 거다.  


메인만 중요한 건 아니다. 축구에서도 골 잘 넣는 사람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다. 수비도 든든해야 하고 마지막 수비라인이 무너졌을 때에도 골도 잘 막는 골키퍼가 필요하다. ‘팀’이 중요한 거다. 몸은 메인과 서브가 잘 어울릴 수 있도록 화합을 담당한다. 음식도 하모니가 이뤄졌을 때 비로소 맛있는 음식이 된다. 내 위치를 잘 알고 그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몸은 내게 알려주었다. 



* 문어몸국라면집은 없어졌습니다. 제 입맛에 딱이었는데! ㅠ.ㅠ

* 제 페이스북에 놀러 오세요. https://www.facebook.com/foodsi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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