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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난영 Jun 25. 2018

가파도가 바로 한 그릇의 짬뽕

또 섬국수 2편

송악산 둘레길을 걷다 보면 저 멀리 가파도와 마라도가 보인다. 평평한 섬과 머핀 같은 섬이 그것이다. 평평한 쪽이 가파도고 머핀 쪽이 마라도다. 날씨가 좋으면 제주본섬과 좀 더 가까운 가파도의 집 모양까지 볼 수 있을까? 


가파도와 마라도의 이름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이 두 섬은 서로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돈을 빌려주면서 갚아도(가파도) 되고 말아도(마라도) 그만이라는 넉넉한 인심을 보였다고 한다.  


가파도에 가기 좋은 계절은 봄이다. 그 이유는 청보리가 섬 전체에서 푸르게 일렁이는 장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4월부터 5월까지 가파도엔 청보리 축제가 열린다. 나 역시 4월 말에 가파도에 갔다. 딱 이 시기에만 볼 수 있다고 하니 더욱 보고 싶었다.  


청보리 축제가 열리는 기간에는 가파도에 가는 배가 있는 모슬포 여객터미널(현재는 배 타는 곳이 운진항으로 바뀌었다)엔 아침부터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찬다. 조금만 늦어도 한 타임 밀린 시간의 표밖에 구할 수가 없다. 일찍 나선다고 나섰는데도 한참을 기다려서야 표를 끊을 수 있었다. 바다 위를 달리는 배도 복작복작이다. 사람들의 탄성과 사진 찍는 소리들이 한바탕 지나가고 나면 가파도에 도착한다.  


가파도는 제주의 부속섬 중 가장 낮고 평평하다. 그래서 걷는데 큰 무리가 없다. 둘레를 돌아도 좋고, 지그재그 걸어도 좋다. 섬 전체가 청보리밭이다 보니 어딜 보나 작품이고 어딜 가나 정겹다.  



축제 덕분에 걷는 사람이 늘어나자 가파도의 한 아주머니는 경운기 뒤편에 채취하고 말린 미역이며 우뭇가사리 등을 잔뜩 실고 팔러 나오셨다. 푸드트럭이 웬 말이냐. 이건 푸드 경운기다. 마을 곳곳 집집마다 미역도 말리 고 생선도 말리고 있던데 아마도 그것들을 추려 가지고 나오셨을게다. 그런 가파도 풍경을 보면서 굉장히 풍요롭고 활기차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파도에도 짬뽕이 있다. 해녀 어머니가 해산물을 잡고 아들이 음식을 하는 곳이라 했다. 역시 해산물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국수는 짬뽕만 한 것 이 없다. 가파도의 짬뽕은 내가 제주에서 먹어본 짬뽕 중 가장 푸짐한 고명을 올리고 있었다. 우람한 뿔소라, 우뭇가사리와 미역 더미, 온전한 모습의 엄지만 한 게와 주먹만 한 반 토막 게, 그리고 짬뽕의 영원한 친구 홍합까지. 동급 최강이었다.  


면은 시금치를 넣어 초록색이다. 빨강과 녹색이 대비 색이라 그런가? 잘 어울린다. 국물에선 배추 등의 채소에서 우러나온 단맛이 은은하게 났다. 식재료들의 맛이 골고루 잘 나는 국물이 나는 정말 좋다. 여기가 그랬다. 해산물 맛, 채소 맛, 국물도 면도 후루룩 후루룩 잘도 넘어갔다. 



가파도에 온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데 동급 최강 짬뽕을 만나고 나니 자랑하고 싶어 온몸이 근질근질해졌다. 결국 먹으며 올린 SNS의 짬뽕 사진. 역시나 후루룩 후루룩 댓글이 달렸다. 우와! 이게 짬뽕? 나도 먹고 싶으심. 후훗. 나 이런 거 먹으러 다니는 사람이야. 국수여행자라고. 어리버리하게 국수여행을 시작해놓고서는 이젠 자랑질까지 한다.  


4월이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그릇을 비웠다. 한 그릇 전체가 나무랄 데 없었다. 그러고 보니 짬뽕 자체가 가파도를 닮아있다. 한 그릇으로도 완벽한.  

 

언젠가 청보리 축제와 상관없이 가파도에 또다시 간 적이 있다. 정말 고즈넉했다. 사람이 거의 없는 가파도 둘레를 걸으며 정말 쉬고 싶다면 가파도에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 읽고, 할 일 없으면 섬을 돌고, 밥 먹고, 또 책 읽고. 그렇게 2박 3일만 있다와도 마음의 찌꺼기가 사라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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