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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난영 Jul 16. 2018

비양도의 해녀가 잡은 문어, 라면

또 섬국수 4편

협재해변에서 수영으로도 저 비양도에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수영은 못하는 주제에 그런 생각은 한다. 못됐다. 하지만 그만큼 가까워 보인다는 말이다. 실제로 예전엔 ‘떼배’라는 이름의 뗏목 비슷한 배를 타고 가기도 했었단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본 TV <한국기행>에서 협재해변 옆에 있는 금능해변에서 카약을 타고 비양도로 가는 모습이 나왔다. 심지어 카약을 탄 멤버중에는 어린이도 있었다. 포털 지도에서 대충 거리를 재보니 약 1.8km였다. 그렇다면 한강의 너비와 비슷하겠다. 그래서 찾아본 한강의 너비는 약 1.6~1.8km. 물론 위치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강 건너기 수영대회에서의 거리는 그 정도쯤 되었다.  


말이 길어졌지만 그렇게 가까운 비양도라도 실제로 배를 타고 들어가는 겐 생각만큼 쉽지 않다. 물론 한림항에 가면 배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왕복을 한다. 하지만 심리적인 거리는 분명 있다. 더군다나 ‘제주국수여행’을 하면서 수시로 검색해봐도 비양도엔 국수가 없었다. 국수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관광객이 덜 가는 곳이라 그런지 식당정보도 별로 없었다. 어쩐지 외딴섬 같은 느낌이 들어 발걸음이 향하지 않았다. 국수집이 있는지 없는지 궁금하면 그냥 훌쩍 가보면 되는 것을 말이다. 


배를 타고 가며 찍은 비양도. 배를 타면 금방 도착한다.


어쨌든 검색을 통해 누군가의 ‘문어라면’ 후기를 보았고 나는 그제야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비양도 맛집을 검색하면 빠짐없이 나오곤 하던 한 식당 외에도 다른 식당이 더 있음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내 눈으로 확인한 것은 네 곳이었다. 그중 최소한 두 곳은 최근에 생긴 것 같았다. 왜냐하면 두 곳에서 문어라면을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검색해도 나오지 않던 국수집이 무려 50%의 비중을 차지하며 운영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비양도의 대표 국수는 ‘문어라면’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앞서 말한 TV <한국기행>에서도 문어잡이 어부가 등장한 것을 보면 비양도 앞바다엔 문어가 많이 사는 것도 같다. 이 정도면 스토리가 나름 괜찮다. 게다가 찾아갔던 문어라면 집에선 해녀에게서 문어를 구입하기도 하고 직접 통발로 잡기도 한다니 비양도는 문어라면, 이라고 해도 잘 어울린다.  


내가 간 곳의 사장님 부부는 비양도에서 백패킹을 하다 눌러살게 되었다고 했다. 알록달록한 테이블은 마당에 펼쳐져있어 캠핑하는 기분을 낼 수 있었다. 이름은 카페지만 문어라면도 판다. 당연히 카페라서 여러 종류의 더치커피도 맛볼 수 있다. 


이곳의 특징은 1인분을 시키든 2인분을 시키든 크기는 다르지만 문어 한 마리가 온전히 들어간다는 것이다. 육수도 그냥 라면수프로 끓이는 게 아니라 따로 우려내었다고 했다. 



휴대용 가스버너에 올려진 양은냄비에서 문어라면은 보기 좋게 익어간다. 익은 통문어 한 마리를 가위로 썰어 우물우물 씹으면 뽀득뽀득, 입 안 가득 춤을 춘다. 내가 문어를 좀 좋아한다. 문어만으로도 위의 1/2이 차는 기분이었다. 아니 즐거울 수 있겠는가. 거기에 새우도 큼직하여 먹는 맛이 나고 들어있는 어묵들도 쫀득쫀득하니 상당히 맛있다. 골라먹는 재미가 짬뽕의 뺨을 친다. 


더구나 이게 끝이 아니다. 간단하지만 예쁜 디저트까지 나온다. 이 정도면 가성비 최고다. 주의할 점은 면이 ‘라면’이기에 문어에 빠져 면을 등한시하면 안 된다는 거다. 일단 ‘문어와 함께’ 면부터 빨리 건져먹는 편이 낫다. 

 

비양도는 크기가 마라도와 비슷해서 한 바퀴 도는데 넉넉잡아 1시간 정도 걸린다. 물론 섬의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비양봉에 오르면 조금 더 걸리겠지만 말이다. 나는 등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당연하게도 섬의 둘레를 걷기로 했다. 카페에서 구입한 더치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며. 둘레길은 잘 포장되어 있어 슬리퍼 신고서도 충분히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돌다 보면 염습지인 펄렁못도 나오는데 나무테크가 있어 연못을 둘러보며 기분도 낼 수 있다. 



내가 갔을 때는 미역철이었는데 둘레길마다 말리느라 널려있는 미역들이 줄을 지어있었다. 잘 건조된 미역을 옮기는 과정에서 흘린듯한 미역 뭉치들을 보며 살짝 고민했었다. 저걸 주워, 말아? 비양도 자연산 미역일 텐데. 아쉽지만 혹시라도 뒷수습하며 수거해가는 분이 계실지도 몰라 그냥 두었다. 둘레를 도는 내내 나를 유혹하는 미역 뭉치들이 곳곳에 떨어져 있었다.
 

비양도만큼 제주 본섬에서 잘 보이는 섬도 없을 거다. 자세히 보면 집 모양도 보인다. 그래서 자칫하면 협재해변의 배경, 그러니까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한 섬일 뿐이라 생각될 수 있겠다. 하지만 실제로 들어가 보니 밖에서 혼자 생각한 것처럼 외딴섬도 아니었고 비양도만의 매력도 충분히 있었다.  


겉으로 보는 것과 실제 안으로 쑥 들어가서 보는 건 다르다. 세상 어느 것 하나 ‘배경’ 일뿐인 건 없다. 나는 누군가를 배경으로만 보진 않았는지, 나 또한 누군가에겐 배경으로 비치는 건 아닐는지. 나는 그래서 계속 국수여행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국수를 핑계로 세상의 구석구석을 만나고 싶어서 말이다. 


비양도에서 본 제주본섬


이곳은 이제 문어라면을 판매하지 않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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