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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Sep 14. 2019

나이 든 싱글이 되는 이유들에 대하여

서른여덟. 노총각이 되었다. 나 자신을 노총각으로 묘사하면 주위에서는 겉으로 '야 요즘에 삼십 대 싱글은 노총각 아니야'라고 말하지만 나도 안다. 그들도 속으로는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단 것을. 그런데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내 기준에서 서른여덟에 결혼을 안 하는, 혹은 못하고 있는 사람은 노총각이었다. 그러니 이젠 그걸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


내가 결혼을 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내 인생의 풍파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내 삼십 대는 단 한 번도 안정이 된 적이 없었고,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내 삶은 여전히 '안정'과는 거리가 있다. 지난 7-8년 간 연애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내 상황으로 인해 연애를 1년 정도 인위적으로 끊은(?) 적도 있었고 둘이 결혼 얘기를 하다가 내가 소속이 생기면 결혼하기로 하고 그 논의를 미루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진 적도 있었다.


상황을 놓고 분석을 하면 그러했던 것이 사실이었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사실 내가 결혼을 하지 못한 더 근본적인 이유는 내 인생에 있어서 결혼이 우선순위에서 아주 높은 곳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내 삶의 패턴은 그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결혼이 내 인생에서 차지하는 우선순위가 엄청 높았다면 난 일단 생계를 해결할 곳에 취업을 알아보면서 대학원을 다녔을 것이다. 취업을 할 기회는, 같이 일하자는 제안은 계속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때마다 난 고민을 하다가 외길을 가기로 '선택'했다. 돌아보니 내가 그랬더라.


내 삶에 있어서 그런 패턴은 항상 있어왔다. 학부시절 어느 술자리에서 후배들이 한 구석에서 작당모의를 하고 있길래 뭐 하고 있냐고 묻자 그 친구들은 내가 연애를 하지 않고 있는 이유를 분석하고 있다고 했고, 그 결론은 내가 연애는 급하지 않다는 것이었다고 했으니까. 그때도 난 아니라고, 내가 얼마나 연애를 하고 싶은지 아냐고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렇지 않았다. 그때도 난 하는 일과 활동이 많았고, 연애를 위해서 그것들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주위에 내 또래에 결혼을 하지 않고, 혹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그렇다. 삼십대 후반이 넘어서 가정을 꾸리지 못한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일이 우선순위에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들 중에는 겉으로는, 그리고 의식의 수준에서는 결혼이 자신에게 엄청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그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정신없는 삶은 삶대로 살면서 그 패턴에 맞춰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데, 그런 사람이 현실에 어떻게 존재하겠나? 더군다나 일에 푹 빠져 살고 있거나 일에 엄청나게 집중해야 하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면 말이다.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결혼을 할만한 나이대에 결혼을 얘기하던 사람과 헤어짐으로 인해 결혼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못하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 여자는 30대 초반을 넘어서 중반이 되고, 남자는 30대 중반을 넘어서 후반이 되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 자체가 급격하게 줄어든다. 그게 현실이다. 그런데 결혼을 할지 여부를 놓고 고민하던 사람과 30대 초반에 헤어지면, 그 사람들은 적어도 수개월에서 길면 몇 년까지도 새로운 사람을 만날 상태가 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상태로 여자는 30대 중반, 남자는 30대 후반이 되면 그 사람들은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어져서 결혼하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멀쩡해 보이는' 나이 든 싱글들에게 눈을 낮추라고, 너무 까다롭다고 하지만 또 나이 든 싱글들은 자신은 눈이 높지 않다고 항변한다. 나이 든 싱글, 또는 노총각이 된 상황에서 그에 대한 답을 하자면 나와 같은 사람들이 꼭 눈이 높거나 까다로워서 싱글로 있는 것은 아니다. 결혼 그 자체보다 더 집중하고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것들이 있거나 기회 자체가 조금 더 어렸을 때보다 적기 때문에 싱글로 남겨져 있을 뿐이다. 본인이 나이 든 싱글로 살아본 게 아니라면, 함부로 조언하거나 판단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부모님과 친척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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