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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Oct 18. 2018

연애와 외모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한

외모에 자신이 없었다

외모에 자신이 없었다. 키는 170 중반에 특별하게 잘생기지도, 못생기지도 않은 외모였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는 것으로 푸는 편이다 보니(?) 거의 평생 좋게 말하면 덩치가 크고, 나쁘게 말하면 살이 쪄있는 상태였다. 물론 운동하는 걸 좋아해서 동급 체중인 사람들보다 조금 덜 쪄보였고, 살이 골고루 분산(?)되어 있다 보니 사람들이 내 실제 체중을 말하면 매우 놀라고는 했으며 건강검진을 받으면 근육 비율이 높아서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게 큰 문제는 아닌 상태라는 얘기를 듣고는 했지만 어쨌든 난 거의 항상 살집이 있는 편이었다.


그래서 꽤나 오랜 기간 동안 이성에 대해서 위축되어 있었다. 살이 빠졌을 때는 자존감이 올라가고, 살이 다시 찌면 자존감이 내려는 패턴이 반복되던 시절이 있었다. 20대 중반 정도 때까지의 이야기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누군가를 좋아하면 너무 위축이 되어서 표현을 못하고 있다가, 내 안에서의 마음만 커져서 어느 날 갑자기 고백을 해버리는 사태(?)들이 발생했고, 그럴 때마다 상대는 전혀 예상을 못했다며, 마음이 있었다면 소소한 것부터 챙겨주고 관계를 형성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나를 다그치곤 했다. 그때마다 내 외모 탓을 했었다. '역시 여자들도 외모를 보는 거야, 외모를 보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야'라고 말이다.


외모가 전부는 아니더라

그랬던 내 패턴을 깨준 고마운 사람이 있다. 같은 교회에 같은 대학부에 다녔던. 그 친구에게 호감도 있었고 그 친구가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말을 꺼냈다가 잘 안되면 교회 안에서 어색해지니까, 설사 잘된다고 하더라도 헤어지면 다른 사람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 명은 교회를 떠나게 될 테니까 표현을 하지 못했다. 표현을 하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종종 통화할 때 소개팅을 시켜달라고까지 했었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 혹시나 내가 호감이 있는 게 느껴질까 봐 방어막을 치는.


그러다 여러 가지 상황이 발생해서 내가 교회를 옮기게 되었고, 그래서 이젠 거절당해도 괜찮으니 말을 해보자는 생각에 주말에 밥 먹고 차를 마시다가 역시나 그때 즈음 내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예고 없이 고백을 해버렸다. 5분 간의 침묵. 두 사람이 대화를 하다가 5분이라는 시간 동안 정적이 흐르는 게 얼마나 어색한 지를 그때 처음으로 경험했고, 너무 힘들어서 뭐라고 말이라도 해달라고 했더니 그 친구의 첫 말은 '오빠 그때 왜 제게 소개팅 시켜달라고 했어요?'였다.


요지는 이렇다. 그 친구도 내게 호감이 있었다는 것. 그것도 무려 2년 동안이나. 심지어 본인의 부모님과 친구들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알 정도로 그 친구는 내게 호감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본인에게 소개팅을 시켜달라니 본인은 너무 당황했었고, 정말 우리는 안 되는 건가... 싶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이후에는 내가 당황해서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내가 누군가가 나를 2년이나 지켜봐 줄 만한 사람인가? 도대체 뭐 때문에 내게 그 정도 호감을 가졌던 걸까? 등등의 질문들이 뇌리를 스쳐갔고, 내가 지난 2년 동안 그 친구에게 했던 말과 행동들이 떠오르며 미안한 마음이 가득 찼다.


하지만 외모는 중요하다

그 친구와 만남의 과정에서 나의 자존감은 많이 회복되었다. 나의 미숙함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그 친구와 결국 헤어지고 다시 잡을 기회도 놓쳤지만 그 친구를 떠올리면 여전히 미안함과 고마움만 하나 가득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내게 연애가 엄청나게 어려웠던 적은 많이 없었다.


내가 살집이 있을 때나 없을 때 모두. 물론 내가 살집이 있을 때 나의 외모 때문에 감정이 생기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외모를 보는 기준은 모두 다르고, 그렇기 때문에 내 외모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지만 오히려 덩치가 있는 내 외모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그 이후에 깨달았다. 예를 들면 나보다 키가 큰 친구를 만날 때 '키 큰 남자가 좋지 않아? 나를 왜 만나는 거야?'라고 물었더니 그 친구는 본인이 키가 워낙 크기 때문에 180 중반 정도가 아니면 본인에게 키가 그렇게 의미가 없는데 그 신장대(?)는 별로 사람이 없고, 본인은 그저 같이 있을 때 본인이 거대하게 느껴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내가 몸집이 있기 때문에 본인이 작게 느껴져서 좋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000한 사람들은 000 할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사람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우리가 매일 시각적으로 접하는 것은 상대방의 외모이기 때문이다. 정말 좋은 사람인 줄은 알지만 상대방의 외모를 볼 때 앞으로 끌어당겨지기보다는 뒤로 한걸음 물러나게 된다면 그 관계는 언젠가는 끝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는 모두 인간이고 각자의 한계를 갖고 있기에 이는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두 번째 이유는 외모는 사실 단순히 이목구비나 몸매가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을 반영하는 요소들도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사실 그 사람이 옷을 어떻게 입는지도 외모에 포함되는데 사람들이 옷을 입는 성향은 그 사람의 성격을 반영하고, 때로는 입는 옷이 그 사람을 바꾸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한 때 '외모보단 인상이 더 중요한 것 같아'라고 말하고 다니고는 했는데, 그건 짜증을 자주 내는 사람은 그 표정이, 잘 웃는 사람은 그 표정이 얼굴을 변화시키서 그게 외모를 바꾸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속에 있는 것들이 나의 외모를 바꾸기도 하지만, 외모를 가꾸는 과정이 나의 내면에 영향을 주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는 외모를 어느 정도는 가꿀 필요는 있다.


그 세 번째 이유는 외모가 상대에게 미치는 영향보다 본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더 크기 때문이다.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본인이 스스로의 외모로 인해 위축이 되면 사실 그 위축된 마음이 그 사람의 외모를 더 망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의 자존감을 위해서 어느 정도는 본인의 외모에 신경은 쓸 필요가 있다. 위에서 마치 내가 스스로의 외모에 대한 평가에서 자유로워진 것처럼 말했지만 난 지금도 살집이 있는 상태보다는 살이 빠진 상태에서 자존감이 더 높게 유지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주위 사람들의 평가에 너무 구속될 필요가 없단 것이다. 물론 누가봐도 아닌 것은 아니지만, 사실 외모는 본인을 위해서 가꾸는 것이기 때문에 본인에게 너무 버겁거나 불편한 것은 하지 않는게 낫다고 난 생각한다.


외모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외모에는 정답이 없단 것이다. 남자들이 너무 외모를 많이 본다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고, 거울부터 보고 양심이 있으면 외모를 덜 보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남자들이 외모를 본다는 것이 외모'만' 보는 것도 아니고 여자들도 그렇지만 남자들도 본인이 호감을 느끼는 외모는 사람들마다 다 다르다. 키가 엄청 큰 사람 중에 아담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본인이 크기 때문에 키가 큰 사람만 찾는 사람도 있고, 키가 작은 사람들 중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키가 큰 사람이나 작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사실 연애는 거래가 아니기에 본인이 외모가 부족하다고 해서 외모를 덜 봐야 하는 것도 아니다. 친한 누나와 이런 류의 얘기를 할 때면 난 '거울을 볼 때마다 상대의 외모를 봐야겠단 생각이 들어. 인류가 진화를 해야지 퇴화할 수는 없잖아'라는 식으로 농담을 하고는 했는데, 그건 '통상적인 기준으로 외모가 부족하다고 해서 덜 봐야 되냐?'는 반박을 우회적으로 하는 말이었다.


내 경우를 돌아보면 20대 중반까지 내 연애를 망친 것은 외모가 아니라 나의 낮은 자존감이었다. 사람들이 외모를 보는 기준은 다 다르다는 것을 난 그때까지도 잘 인지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갖는 것이더라. 물론 다른 조건이 다 같다면 남자들의 경우 키 180에 정말 잘생긴 사람이 더 매력적으로 보일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조건이 같을 수가 없다'는데 있다. 그래서 연애를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 장점과 약점을 다 알고 있는 것이다. '나는 000한 면에서는 매력이 덜하지만 000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나한테 매력을 느낄 거야'라는 자존감 말이다.


사실 그런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그 마음이 외모에도 드러나게 되어있고, 외모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굉장히 많기 때문에 타고난 이목구비나 키가 덜 선호되는 요소를 갖고 있다고 해서 외모가 회복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본인이 정말 스스로 외모에 자신이 없다면 외모가 아닌 다른 요소로 승부(?)를 보면 된다. 본인이 타고난 모습에서 최대한 깔끔하고 상대에게 거부감이 생기지 않을 수 있도록 외모를 가꾸면서 말이다. 예를 들면 내가 예전에 만났던 한 친구는 나에 대해서 '특별히 잘생기지도, 못 생기지도 않았지만 보수적이고 신뢰가 가는 외모를 가졌고, 목소리가 저음이고 여자들이 좋아하는 말을 너무 잘 알아서 하나님을 몰랐다면 제비가 됐을지도 모르겠다'라고 말을 했는데, 그때 나는 '세상에 내 외모에 제비라니!'라면서 환호성을 질렀던 기억이... 있다.


그 말을 이 시점에 언급하는 이유는 외모가 중요하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며, 외모가 아닌 본인이 가진 다른 매력에 호감을 느끼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그 정도의 자존감이 있는지 여부는 상대방도 느낄 것이기에 이목구비보다도 자존감의 수준이 상대방이 본인에게 느끼는 매력의 수준에 더 영향을 많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애는 어차피 한 사람을 찾아서 만나는 과정 아닌가? 우리는 우리가 가진 매력에 호감을 느낄 한 사람만 찾을 수 있으면 된다. 그러니 본인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해서 위축되지 말고, 가진 것을 근거로 높은 자존감을 유지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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