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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Jun 17. 2020

회의에서의 대화

대화의 원리 20화.

회의에서의 대화는 일상에서의 대화와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 이는 일상에서의 대화는 그 사람과의 관계에만 영향을 미치지만 회의에서의 대화는 자칫 잘못하면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회사는 물론이고 상대의 사업이나 일을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의는 항상 철저하게 준비된 상태로 들어가야 하고 효율적이고 효과적이어야 한다. 모든 회의는 전쟁터다.


혹자는 조직이나 회사 내부 회의는 전쟁터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 내부 회의는 개인에게 가장 큰 전쟁터다. 이는 내부 회의에서 얼마나 준비된 모습을 보였느냐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평판이 갈리고 그 평판에 따라 그 사람에게 주어지는 업무의 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회의가 아닌 그 밖에서 사적인 관계로 내부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는데 그런 노력이 개인의 입지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매우 제한적이다. 단기적으로는 그런 노력으로 몇 명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럴 경우 조직적으로는 불신이 더 커지게 되어 있다. 내부 회의는 그 안에서 개인의 역량을 드러내는 장이다. 


자신이 속한 회사 또는 조직이 다른 회사 또는 조직과 하는 회의는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조직과 회사의 실력을 드러내는 자리다. 그래서 외부 회의는 조금 더 큰 규모의 전투라고 할 수 있다. 외부 회의에서 실수를 하면 그건 개인을 넘어서 조직과 회사에 속한 사람들 모두에게 피해를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조직 또는 회사와의 회의에는 더더욱 철저한 준비를 해서 나가야 한다. 


뻔한 얘기를 이렇게 길고 지루하게 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회의를 '항상 있는 일과 중 하나'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내부 회의에서 계속 실수를 하고 부족한 모습을 보이면 그런 모습들이 쌓여서 그 사람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키고, 외부 회의에서의 실수는 본인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데 그걸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 회의록에 몇 줄 대충 써내고 메모할 다이어리를 들고 들어가서 대충 말하고 듣고 나오기를 반복하면서 본인이 조직 내에서 왜 인정받지 못하는 지를 원망하는 사람들은 꽤나 많다. 이는 단순히 성과를 내는지 여부의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다. 


회의는 들어가기 전, 회의 중, 그리고 회의 후에 취하는 조치가 모두 필요하다. 회의 전에는 들어가기 전에 그 회의에서 자신이 관련된 내용을 거의 완벽하게 준비해서 파악하고 그에 대해 들어올 수 있는 질문들에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회의에서 이뤄지는 대화는 사실 이러한 준비에서 시작된다. 


그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회의 중에 대화는 꼬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회의에서의 대화에 대한 내용은 준비가 잘 되어 있는 상황을 전제로 하기로 하자.


회의를 위해서 아무리 준비가 잘 되어 있어도 회의에서 대화를 잘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본인이 준비한 것의 십 분의 일도 보여주지 못하고 회의를 마쳐야 할 수도 있다. 회의에서, 특히 주니어일수록 많이 하는 실수는 자신이 준비한 것을 최대한 많이 보여주려 하면서 발생한다. 모든 일의 디테일은 주니어들만 알면 되고, 주니어들은 그런 디테일이 아니라 큰 그림 안에서 핵심을 정리해서 '말하고' 그 이후 회의에서 다른 사람들의 질문에나 코멘트를 '듣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회의에서도 핵심은 말하기가 아니라 듣기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은 이 지점을 놓친다.


회의에서도 듣기가 핵심인 것은 어느 누구도 본인의 업무에 대한 모든 것을 회의에서 말할 수도 없고, 모든 것을 말하면 오히려 핵심이 파악이 안 되고, 진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회의에서 질문을 통해 물어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의에서는 상대가 어떤 면에서 어떤 질문을 하는 것인지를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혹자는 그 질문에 대해 어떻게 답하는지가 더 주요하지 않냐고 물을 수 있는데, 사실 본인이 준비가 잘 되어있고 상대의 질문을 잘 들었다면 그에 대한 답은 제대로 나가게 되어 있다. 


물론, 그렇지 못하고 답변을 제대로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의에서도 '듣기'가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서 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회의 후에 그 부분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내부 회의였다면 질문을 한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외부 회의였는데 조금 중요한 문제였다면 이메일 등의 형식으로 필요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상대의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 이마저도 불가능해진다. 


회사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주니어들이 하는 가장 큰 착각 중에 하나는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해서 본인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상대의 질문을 받고 '아니 본인이 이 일에 대해 뭐를 안다고 저렇게 묻지?'라고 생각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비슷한 업계에 더 오래 있었던 시니어 중에 제대로 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그와 유사한 케이스를 경험해 봤기 때문에 조금 다른 성격의 일이어도 그 일의 핵심과 구성요소들을 온몸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일을 직접 챙기지 않아도 핵심적인 부분들을 구석구석 체크할 줄 안다. 아 물론, 이는 제대로 된 능력 있는 시니어일 경우의 얘기긴 하다. 그렇지 않은 시니어들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회의에서의 대화가 일상생활에서의 대화와 다른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본인이 회의에서 논의된 사안을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는데 있다. 만약 내부 회의에서 본인이 이해하지 못한 게 있는데 어떤 이유로든 그에 대한 질문을 하지 못했다면 조금 혼나더라도 그 부분은 메모를 해놨다가 회의가 끝난 후에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라도 물어봐서 사안을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외부 회의의 내용을 완전히 소화하지 못했다면 그 자리가 아니라 회의가 끝난 후에 내부 사람들에게 질문을 해서 사안을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회의에서는 [질문]이 또 다른 축을 구성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질문하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완전히 소화하지 못한 사항에 대해서도 질문을 하지 못하고 본인이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대로 일을 처리했다가 사고를 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마지막으로 회의가 끝났으면 그 회의에서 이뤄진 논의를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는 업계나 회의한 사람들의 관계에 따라 다르겠지만 회의 마지막에 구두로 종합적인 정리를 할 수 있고, 회의록을 통해 할 수도 있고, 때로는 회의 후에 회의에 참석한 당사자들에게 메일로 회의 내용을 정리해서 공유하는 형태로 이뤄지기도 한다. 이런 정리도 사실은 회의에서 '대화'의 일종인데 이러한 근거는 가능하면 활자로 남겨 놓는 게 안전하다. 그래야 그 회의에서 논의가 이뤄진 내용과 관련해서 문제가 일어나면 책임의 소재를 명확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회의 문화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이런 후속작업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이런 후속작업이 이뤄진 경우에도 시니어나 갑님들이 그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넘어가서 나중에 사고가 난 후에 을이나 주니어들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경우에는 사실 그 사람들의 '듣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외국인들과 일할 때는 이런 문제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물론, 외국인들 중에서도 꼰대질을 하거나 갑질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꼰대질이나 갑질을 하는 사람들도 경험해 봤다. 하지만 외국인들의 경우 그렇게 꼰대질과 갑질을 하다가도 문서로 남은 근거를 들이대면 그에 대해서는 반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외국회사들은 회의록을 장황하게 쓰기보다 이메일로 전체 회신을 계속하면서 논의를 진행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일하는 것은 [대화의 흔적]을 남김으로써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책임을 명확히 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기업문화는 사실 이 지점에서 가장 명확하게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에서 회의가 회의답지 않게, 윗사람이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굳이 질문을 하지 않을까? 군대문화와 위계질서. 위계를 통해 무조건 찍어 누르는 문화. 그런 문화 속에서 소위 말하는 윗사람들은 '듣기'를 할 리가 없고, 뭔가가 잘못되면 일이 크게 터지지 않는 이상 어차피 모든 게 더 열위에 있는 을이나 주니어의 잘못으로 돌아올 것을 알기 때문에 회의에서 누구도 제대로 대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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