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mon de Cyrene Jun 10. 2020

일상에서의 대화

대화의 원리 19화.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가장 많은 대화를 하는 상황이나 환경은 언제일까? 그건 '일상'이 아닐까? 앞으로 회의, 면접, 인터뷰, 강연 등에서의 대화의 특징과 그 과정에서 대화를 잘하는 법에 대해서도 글을 쓰겠지만 사실 그 모든 대화의 기본인 내가 지난주에 쓴 '잘 말하고 잘 듣기'를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그러한 '잘 말하고 잘 듣기'를 가장 잘 못하는 영역은 보통 '일상'이다. 회의, 면접, 인터뷰, 강연 등은 명확한 목적 또는 어젠다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통 어느 정도 긴장을 하고 잘 말하고, 잘 듣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일상에서 우린 보통 특정한 목적이나 어젠다 없이 대화를 하고, 그에 따라 사람들은 긴장이 풀려 있다. 그러다 보니 대화적인 측면에서 그 사람의 성향은 사실 일상에서의 대화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렇다 보니 자신이 대화에서 어떤 경향성이 있고, 어떤 면을 보충해야 하는 지를 파악하는 데는 본인과 가장 자주 만나고 직언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의 피드백을 듣는 게 가장 큰 도움이 된다. 그때는 '친한 사람'보다 '직언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피드백을 받는 게 좋은데, 이는 친한 사람들은 상대의 언어 습관에 덜 예민할 수 있게 때문이다. 그런 피드백을 한 번쯤은 받아보는 게 필요한데, 이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언어습관들이 공적인 자리에서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회사들 중에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이런 점을 고려해서 면접전형을 다르게 디자인한 회사들도 있었다. 몇 시간 동안 진행되는 토론형 면접, 1박 2일 동안 이뤄지는 다양한 면접은 사실 면접자들의 지식이나 능력을 평가하는 면도 있지만 그걸 넘어서 면접자들이 긴장이 풀어졌을 때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를 확인하는 것을 평가하기 위해 그렇게까지 면접을 진행하기도 한다.


내가 다녔던 회사의 경우 신입사원 면접을 1박 2일로 봤는데, 퇴사할 때 HR에 있는 선배에게 면접전형에서 나에 대해서 부정적인 게 있었던 게 있으면 이제는 얘기해 줄 수 있지 않냐고 했더니 한참을 빼다가 '네가 갑작스러운 상황이 닥치면 조금 독단적이 된다는 평가가 있긴 했어'라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그게 어느 순간인지도 기억이 났다. 급박한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는 지를 보기 위해 과제가 갑자기 주어지자 난 그 과제까지 시간 안에 토론으로 풀어야 한단 생각에 갑자기 일어나서 회의를 끌고 나갔었다. 그리고 2년 차 때 면접 진행요원으로 갔을 때 진행요원으로 간 주니어들에게는 면접장 밖에서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 면접장 안에서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면접자들이 있으면 그 행동과 말을 구체적으로 적도록 요구받았다. 


회사들이 이런 점들까지 평가를 하는 것은 회사는 그 구성원들의 일상이 되고, 그 일상에서는 그 사람의 능력과 함께 인성과 성향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의 대화가 다른 영역이나 상황에서의 대화와 가장 분명하게 구분되는 지점은 '이성'과 '분석' 그리고 '합리성'보다 '감정'과 '감성'이 더 중요하다는 데 있다. 생각해 보자, 우리가 일상에서 가족, 친구나 지인들과 뭔가를 해 내고 분석하기 위해서 대화를 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나? 사람들에게 일상은 '쉼'이어야 한다. 그리고 일상에서 우리의 대화는 우리가 다른 관계와 영역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쏟아내는 정화작용을 해줘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에서의 대화는 상대의 말을 듣고 분석하는 것보다 공감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한다. 


물론, 이 역시 상대의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정말로 이성적인 조언을 구하는 일상의 대화도 있다. 그런데 그런 경우 사람들은 보통 '아니 그래서 뭐를 어떻게 해야 해?'라고 구체적인 행동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 그런 식이 아니라 '이게 말이 되니?'처럼 상대의 생각이나 의견을 묻는 질문은 보통 '자, 이제 공감해줘'를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뤄지는 대화에서 이 두 가지를 잘 구분해야 하고, 본인이 좋아하거나 아끼는 사람이 후자의 방식으로 질문을 해온다면, 본인의 실제 생각과는 무관하게 일단 공감하고 상대의 편이 되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에 대한 다른 측면을 말하고 싶다면, 그건 적절한 타이밍과 시간을 기다린 후에 말하는 게 낫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상에서 이뤄지는 대화에서 공감해주거나 상대에게 필요한 조언을 하기보다 잘 듣지 않고 본인의 말만 하려는 경향이 매우, 매우 강하다. 그리고 친한 사이일수록 '내가 이렇게 말해도 제대로 이해할 거야'를 전제하거나 편하다는 이유로 인격적으로 모독적인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그뿐인가? 그런 경향성이 있는 사람들은 남의 말을 들을 때는 상대가 한 말을 나의 경험과 이해에 기반해서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그렇게 반응하는 것은 본인 생각이 너무 확고하고, 작은 것에도 본인이 틀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다름은 꼭 틀림이 아닐 수 있는데, 그렇게 말하고 듣는 사람들은 다름을 틀림으로 여기곤 한다. 


우리는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상대의 말을 들을 때는 상대가 어떤 성장환경에서 자라왔고, 어떤 감정적인 변화가 있었으며, 어떤 맥락과 상황에서 특정한 얘기를 하는 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는 같은 말도 A가 하는 것과 B가 하는 것은 맥락과 두 사람의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를 담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일상에서 어떻게 모든 대화를 그렇게 피곤하게 하냐?'라고 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노력을 하는 건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지도 않고, 그렇게 듣는 습관이 들면 그런 방식으로 상대의 말을 듣는데 익숙해진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듣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아서 듣는 근육이 생성되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게 엄청나게 힘든 일이기 때문이 아니다. 한 박자만 늦추고 반응하면 된다. 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면 상대에게 '이러저러한 의미냐?'라고 물어보면 된다. 


우리가 그렇게 들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들어야 상대도 나의 말을 조금이나마 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본인이 상대에게 말을 하나 가득 던져 놨으면 상대가 그걸 다 들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지 않은 사람의 말은 절대로 귀담아듣지 않는다. 자신은 분명히 한 말인데 사람들이 잘 기억하지 못한다면, 상대 탓을 하기 전에 본인은 상대의 말을 얼마나 잘 들어줬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자신의 말을 상대가 들어줄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상대가 일방적으로 들어주고만 있는 관계는 건강하지도 않으며, 그런 관계는 절대로 지속되지 못한다. 본인 인생도 피곤한데 상대의 말을 계속 들어주기만 해야 하는 사람과 굳이 일상에서 시간을 내서 만나겠나?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보니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말을 평균 이상으로 잘 들어주는 사람들에게 쉽게 호감을 느끼고 그에게 자신의 귀와 마음도 연다. 


 일상에서 대화할 때 나보다 상대를 더 생각하고, 의식하기 위한 노력을 해보자. 인간이란 존재는 참으로 묘해서 우리가 그런 노력을 해도 우린 대화에서 부지불식 간에 자신 중심으로 대화를 끌어가려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상대를 더 생각하고 의식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그나마 그런 노력을 해야 자신이 그러지 못하고 있을 때 이를 깨닫고 상대방에게 조금이라도 더 맞춰줄 수 있고, 상대도 그런 노력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모두 그렇게 노력할 때야 비로소 일상에서도 대화다운 대화가 이뤄질 수 있다. 


피곤하고 어렵다고? 본인이 그게 피곤하고 어려우면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일 텐데, 본인이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은 결국 상대가 전적으로 본인에게 맞추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보다 더 이기적인 생각과 마음도 찾기 힘들지 않을까? 대화는, 관계는 두 사람이 서로 한 발씩 물러나고 내밀면서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어느 일방의 희생으로 이뤄지는 대화와 관계는 건강하지도 못하고,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종의 신분으로 태어나지 않은 이상 누구도 그렇게 살 수 없다. 아니, 종의 신분으로 태어나도 그건 도저히 하지 못하겠어서 세계 곳곳에서 각종 혁명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 


상대도 나만큼 소중하고 의미 있는 존재다. 일상에서 대화할 때도 그걸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자.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0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이전 18화 잘 듣고 잘 말하는 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