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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Jun 03. 2020

잘 듣고 잘 말하는 법

대화의 원리. 18화

이 글의 제목이 [잘 듣고] 잘 말하는 법인 이유는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우선 잘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잘 듣는 것은 상대방이 말하고 있을 때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는 척하고 있거나 그 말이 끝나면 내 말을 하기 위해 기다려주고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듣기란 '상대방이 어떤 맥락에서 왜 저런 말을 하고 있는 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듣기는 쉽지 않다. 특히 새로 만난 사람과의 대화에서 그렇게 듣는 것은 쉽지 않다. 이는 우리가 상대를 모르는 상황에서는 상대가 무슨 맥락에서 특정한 얘기를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잘 모르는 상대와의 대화에서 상대방의 말을 잘 듣기 위해서는 상대가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질문들을, 본인이 이해한 게 맞는지를 확인하는 질문들을 해야 한다. 그런 질문은 두 가지 효과를 낸다. 상대에게는 '이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있고, 내가 말한 내용에 진짜 관심이 있구나'란 느낌을 심어줄 수 있고, 본인은 상대에 대해 더 알아가게 되면서 상대가 어떤 맥락에서 특정한 말을 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게 될 수 있다.


같은 표현도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잘 듣기의 시작은 상대를 알아가는데서 시작된다. 상대를 모르는 상황에서 본인의 언어습관이나 본인이 생각하기에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의미로 상대가 특정한 단어나 표현을 사용했다고 전제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오해는 생각보다 많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경험하고 아는 것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말하기 때문에 상대의 성장환경이나 이력, 배경을 아는 것은 상대의 말을 잘 이해하는데 엄청난 도움이 된다. 이는 같은 표현도 그러한 요소에 따라 다른 것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들은 후에 우리가 말을 할 때, 말을 잘한다는 것은 어떤 말하기를 의미할까? 우리가 누군가에게 말을 하는 것은 상대방이 그 말의 내용을 받아들이고 소화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말을 '잘'한다는 것은,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잘' 표현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그 말을 듣고 이해해서 소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에 대한 정보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말을 그렇게 들은 후에 상대에게 자신의 말을 할 때도 그 정보에 맞게 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말을 잘 들은 후에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상황, 배경, 이력, 성장환경 등을 고려해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으로 말해야 한다. 상대의 상황, 배경, 이력, 성장환경을 모르는 상황에서 조심스러운 말을 할 때는 말하는 내용의 맥락과 의미를 설명하면서 말하는 것이 상호 간에 오해가 생기지 않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런 노력 없이 말을 했다면, 상대가 자신은 말을 소화하거나 이해하지 못했다고 불평해서도 안된다.


대학원에서 수업을 들을 때, 개인적으로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던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서 내가 그분을 완전히 폄하하지는 않을 수 있게 해 준 말이 한 마디 있다. 그분은 '너희는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와도 대화를 할 수 있고, 대통령과도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 한마디에는 많은 것이 담겨있다. 그 말은 아주 평범한 일상을 사는 분들과 공감하며 대화를 할 줄도 알아야 하고, 정말 높은 수준의 지적인 대화에도 참여할 수 있을 정도로 지식도 쌓아야 한단 것을 의미했다.


다만, 그것을 머리로 아는 것과 그런 삶을 살아내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그 말을 하셨던 교수님 본인도 사실 남의 말을 그렇게 잘 듣는 편은 아니셨고, 그로 인해 작지 않은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무려 18주째 '대화의 원리'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고 있지만, 이제야 고백하건대 사실 이 시리즈는 대화가 아니라 '관계'에 대한 글이다. 이는 모든 대화는 관계에서 시작되고, 대화는 또 관계를 형성하는데 중요하고 유용한 매개체가 되기 때문이다.


모든 대화는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이뤄지는데, 두 사람의 관계가 수평적이고 깊을수록 두 사람 간의 대화는 편하게, 오해 없이 이뤄질 수 있다. 이는 두 사람의 관계가 수평적이라는 것은 두 사람 모두 서로를 존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 관계에서는 절대로 온전한, 오해 없는 대화가 이뤄질 수 없다. 권력관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대화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런 권력관계가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권력관계에서 상위에 있는 사람의 역할, 행동과 말이 항상 모든 것을 결정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은 사회적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가 깊으면 두 사람 모두 상대가 어떤 맥락에서 특정한 얘기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오해가 생길 가능성이 적다. 그런 관계들이 있지 않나? 말투가 엄청 거칠고 세서 다른 사람들은 다 오해하는데, 그 맥락이 그렇지 않은 것을 잘 아는 사이.


그렇게 편한 상대와의 대화가 아니라면, 대화를 할 때는 항상 상대와 내가 어떤 관계에 있는 지를 염두에 두고 대화를 해야 한다. 상대에 대해,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고 알아가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자. 그게 잘 듣고, 잘 말하는 것의 첫걸음이고, 그러기를 멈추는 순간 대화다운 대화는 이뤄질 수 없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0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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