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싱글이 되어보니

결혼과 가족에의 이유. 2편

by Simon de Cyrene

그렇다. 앞의 글에서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뻔뻔스럽게 밝혔듯이 나는 결혼을 '못'한 남자다. 그렇다면 나는 왜 마흔이 되도록 결혼을 안 한 게 아니라 못하게 되었을까? 결혼을 해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을 하려면, 그리고 이 시리즈가 내가 4년 반 동안 브런치에서 써온 연애, 결혼과 사랑의 글과 다르려면 그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브런치의 나의 또 다른 시리즈인 [나의 30대 회상]에서도 설명했지만 나의 30대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힘들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연애는 했다. 많이는 아니지만 인스턴트처럼 짧은 연애도, 서로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불타 올라서 2달 만에 결혼 얘기를 하는 연애도 했다. 그러기 전에 20대에도 결혼을 생각하고 만난 사람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사실 그래서 바빠서, 돈이 없어서 연애를 못한단 말에 동의하진 못한다. 하루에 평균 10시간씩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돈도 없는 상황에서도 연애는 할 수 있었다.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더라.


어쨌든, 내가 결혼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그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혼을 못한 이유를 진지하게 얘기하는 자리가 있을 때면 나는 항상 '내가 만났던 다른 엑스들 생각은 나지 않는데, 두 명은 내가 놓친 게 분명하다'라고 말한다. 한 명은 20대 후반, 한 명은 30대 초반에 놓쳤다. 자세한 얘기를 할 수 없지만 둘 모두 내가 이별통보를 했고, 그때는 몰랐는데 돌아보니 내가 이기적이었고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랬더라. 두 사람은 모두 내 상황과 무관하게 내 옆자리를 지켜주려고 했던 사람들이었고, 실제로 헤어진 후에도 내가 그녀들을 다시 잡을 수 있는 상황들도 있었지만 어리석은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걸 30대 중후반이 되어서 후회했다.


그 후에 만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사실 굉장히 희미한 편이다. 더 최근에 가까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더 희미한 건 왜일까? 그건 아마도 그 사람들 잘못이 아니라 내가 그런 상태였기 때문일 것이다. 힘드니까, 외로워서 누군가가 내 옆에 있어줬으면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 사람보다 당장 내 앞에 있는 것들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난 이기적이었고, 내가 만난 사람들에게 마음을 충분히 주지 못했다. 그래서 사실 그때 만난 분들에 대한 기억은 뚜렷하게 없다. 말로는 연애하고 싶고, 결혼하고 싶다고 했지만 사실은 내 상황과 일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내가 그런 패턴을 처음 보인 것은 아니었다. 난 20대 초중반에도 그랬다. 병장 때 지인의 소개로 채팅을 하고, 휴가 때 나가서 데이트를 하면서 만났던 여자 친구와 제대한 후 헤어진 후로 나는 항상 연애를 하고 싶다고 마은 했지만 상당기간 동안 싱글로 지냈다. 그런 나를 보면서 친한 후배 몇이 술자리에서 진지하게 본인들끼리 내가 왜 그러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내린 결론은 '연애가 우선이 아니다'란 것이었다. 그때는 완강하게 부인했지만, 얼마 지나서 돌아보니 그때도 난 내 현재와 미래를 중심에 놓고 내가 외롭고 힘든 부분만 채워줄 수 있는 부속품 같은 존재가 되어줄 사람을 만나고 싶어 했더라. 그런 사람이 세상에 어디에 있나? 지금 돌아보면 그때도 난 내가 너무 중요했기 때문에 싱글로 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결혼은 서른에 하고 싶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결혼이 갖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다는 것의 의미와 무게를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결혼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실제로 그런 상태로 결혼을 한다. 좋은 남편, 좋은 아내가 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물론, 그런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서 결혼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의미를 머리로라도 알고 결혼을 하면 조금 덜 싸우고, 결혼에 대해 조금은 덜 부정적일 텐데 그런 개념 없이 결혼을 하다 보니 그저 결혼은 하지 말라는 얘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결혼을 하지 않거나 이혼을 했다고 해서 모두 그걸 알게 되는 것도 아니다. 결혼의 사회적 의미와 인간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결혼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지금만큼 부정적일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사람들의 그러한 시선은 인간과 결혼에 대한 몇 가지 잘못된 전제조건을 깔고 있다.


그 첫 번째 전제조건은 '더 많이 갖고, 누릴 수 있으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더 많이 갖고 있는 게 최소한 덜 불행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갖고, 할 수 있단 것이 주는 효용은 제한적이다. 생각해보자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만 원, 십만 원, 백만 원이 어마어마하게 큰돈인 것으로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금액은 한 번 만져보면 그에 대한 효용이 금방 떨어져서 그 정도 금액은 돈 같지도 않게 여겨지기 시작하지 않나?


두 번째 전제조건은 '누군가에게 맞춰주는 것이 피곤하고 소모적이다'라는 것이다. 맞다. 누군가에게 맞춰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누구랑 결혼하든 비슷해'란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이 다 다른데 어떻게 누구랑 결혼하든지 비슷하단 말인가?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놀랍게도 본인은 결혼을 많아야 두 번 해보고 그렇게 말을 한다. 보통은 한 번, 많아야 두세 번 한 사람이 그걸 어떻게 안단 말인가?


이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이 시리즈 중반 정도에서 할 테니 일단 이 수준에서 언급하고 넘어가자.


일단 위의 두 전제가 다 맞다고 치자. 인간은, 그리고 당신도 그런 사람이고 혼자 있으면서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누리는 게 훨씬 행복하다고 치자. 그런 사람들이 없진 않으니 그 전제가 이상하거나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니 그렇다고 쳐보자.


그게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을까? 그리고 당신은 정. 말. 괜찮고 아무렇지도 않은가?


이 부분에서 조금 예민할 수 있고, 아플 수 있는 얘기를 꺼내려고 한다. '노처녀 히스테리' 개인적으로 그 표현만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 표현의 짝꿍으로 '노총각 히스테리'란 표현도 같이 써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이 지점에 남녀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기 때문이다.


어렸을 땐 그런 표현을 들으면 과하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많이 먹은 싱글이란 이유로 그런 프레임에 사람을 넣는 것에 반사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이곤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노총각' '노처녀'라는 표현이 갖는 부정적인 뉘앙스 때문에 그런 표현을 이제는 잘 쓰지 않지만 사람들이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생각하는 나이의 싱글이 되어갈수록 그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지점에서 이미 한 번 펄쩍 뛴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 글을 닫아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이 말을 할 수 있는 건 내가 그 나이 정도가 된 노총각이고, 주위에서 내 또래의 싱글 남녀들의 삶을 직접 보고 듣거나 SNS에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본인들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쉽게 인정하지 않겠지만, 아니 본인은 본인이 그런 상태라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하겠지만 나이가 든 싱글들은 예민하고 외롭다. 안 외롭다고? 외롭지 않은데 왜 어느 정도 이상 나이의 싱글들의 SNS 스토리나 피드는 매우, 매우 활성화되어있는 것일까? 그것도 본인의 일상과 관련된 것으로. 나이가 어린 친구들의 SNS는 일상으로 채워져 있지 않다. 그들의 SNS는 다른 사람에게 본인을 어떻게 보이고, 포장할지를 의식하면서 만들어진다. 이와 달리 어느 정도 이상된 싱글들의 피드나 스토리는 일상으로 채워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건 누군가에게 본인의 일상을 공유하고, 그에 대한 공감을 받고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 아닐까? 그게 외로운 게 아니라면 뭘까?


어떤 이들은 본인은 일상을 공유하지 않고 운동이나 맛집 중심으로 채우나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운동과 맛집은 우리의 일상과 굉장히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분야다. 그리고 그것이 본인의 취미이며 삶의 큰 부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데, 잠시 한 발자국만 물러나서 생각해보자. 우린 어쩌면 외롭기 때문에 그것을 잊고, 생각하지 않기 위해 그런 것들에 더 몰입하는 것은 아닐까? 반사적으로 아니라고 하지 말고 한 발자국 물러나서 본인의 피드와 일상의 패턴을 생각해보자. 정말 본인의 외로움 때문이 아닌지.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아닌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그렇다면 이걸 물어보자. 그게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 가능할까? 지금 하는 게 언제까지 지금처럼 설레이고, 재미있고, 몰입하게 해 줄까? 혹시 그런 아이템을 몇 개째 돌려가면서 하고 있지 않나? 그건 어쩌면 한 아이템에서 생긴 익숙함으로 인해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사이에 빈틈이 생기면 외로움이 엄습하니까. 그 패턴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고 치자. 아닐 수도 있으니까. 이제는 본인의 일상을 한 번 돌아보고, 다른 사람들이 본인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지 떠올려보자. 아니면 친한 친구에게 본인이 혹시 예민하게 반응할 때가 있었는지도 생각해 보자.


내 나이대에 잘 나가는 사람들은 성별을 불문하고 최소한 중간관리자 이상의 자리에 있다. 또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의 패턴에 대해서 쉽게 평가한 것을 입 밖에 내서 말하거나 전해주지 않아서 본인의 패턴을 모를 때가 많다. 혹시 본인이 일하다가 누군가에게 화나 짜증을 낸 빈도가 과거보다 늘어났나? 주위에서 누군가가 섬세하거나 예민하다고 한 적이 있나? 짜증 난 상태로 며칠씩 있었던 적이 있나? 아닐 수도 있지만, 그건 본인이 외롭고 감정적으로 의지할 곳이 없어져서 예민해진 것일 수도 있다.


인간에겐 일을 통한 성취도 중요하지만 정서적인 영역은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이건 심리학과 정신의학적으로 이미 밝혀진 얘기다. 그런데 나이 든 싱글은 정서적으로 의지하고, 수용받을 영역이 거의 없다. 마흔 전후가 되면 부모님은 대부분 60-70 이상이 되신 상태여서 그분들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에게 버팀목이 되어드려야 하고, 삼십 대 중반에서 오십까지는 대부분 사람들이 일을 가장 많이 할 나이라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과 직접 관련되어 있지 않은 다른 사람을 수용해 줄 만한 여유가 없으며, 다른 길을 가는 친구들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친구의 얘기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거기에 더해서 결혼한 친구들의 삶은 싱글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대화가 더더욱 안 통한다. 아이까지 가졌다면 그 사람과는 더 이상 대화가 통할 수가 없다. 부모의 삶과 싱글의 삶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마흔 전후 싱글들의 환경은 이렇다 보니 사람들이 '노처녀'나 '노총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의지할 수 있거나 마음을 치유받을 수 있는 곳이 없는 경우가 많다. '연애만 계속하면 되잖아!'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이 든 싱글들은 모두 알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연애도 대부분 얕아지고 짧아진다. 이는 그 연령대의 사람을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바쁘고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요즘과 같이 결혼을 하지 않는 게 낫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강한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를 통해서 잠시 호르몬 작용을 되살리고, 스킨십을 통한 성적인 만족을 얻을 수는 있어도 정서적 공감과 교감까지 나가는 관계를 형성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어느 정도 이상 나이 든 싱글들은,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망가져간다. 이상하거나 괴물이 되는 수준은 아니지만 정서적으로 불안해지거나, 예민해지거나, 작은 것에 집착하거나, 무엇인가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경향을 보인다. 어느 정도 이상 나이가 되면 '괜찮은'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아 지는 것도 사실은 이와 관련되어 있다. 그게 그 사람들이 이상하거나 괴물이어서 그런 게 아니라, 인간은 원래 정서적 교감과 수용을 받으면서 치열한 현실에서 생기는 상처도 치유하고 정서적 안정을 회복해야 하는데 나이가 든 싱글일수록 그게 어렵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가는 것이다. 거기다 사람들이 '노총각'이나 '노처녀'라고 부르는 나이대가 사회적으로는 가장 스트레스도, 일도 많은 중간에 낀 나이대가 아닌가? '노총각 히스테리'나 '노처녀 히스테리' 같은 표현이 나온 것은 그런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센 얘기들을 글로 써 내려가는 나는 안 그렇냐고? 나도 그런 면들이 있다. 그로 인해 길지 않은 연애에서 이별통보를 받은 적도 있고,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적도 있다. 그런 내 모습을 발견한 후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그런 부분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스스로 그런 영역들을 고치면서 버티고 있고, 그 덕분에 30대 후반보다는 마흔인 지금 그런 면들에 있어서 조금은 나아진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난 여전히 매일 그런 부분들이 생기는 것을 느끼고, 발견한다. 그래서 내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을 게을리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나이 들어서도 싱글로 사는 게 나쁘단 게 아니다. 일단 결혼은 하고 보자는 것도 아니다. 완벽한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얻으면 다른 건 잃는게 인생이니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보통의 인간이라면 나이가 들어 싱글이 되면 현실적으로 그렇게 될 확률이 높다는 건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가잔 것이다. 최소한 자신에게는 솔직한 필요가 있으니까.


이에 대해 '결혼한다고 그게 다 되냐?'는 반론을 할 수 있다. 아니다. 결혼한다고 그게 다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면 그 환경이 어느 정도는 그런 것들을 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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