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가족에의 이유. 3편
나이 든 싱글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을 꼽으라면 '너 눈 너무 높아'가 아닐까 싶다. 예전에는 그 말이 듣기 싫었다. 높지 않다고 했다. 아니, 솔직히 지금도 눈이 높은 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연예인 외모를 가진 사람이나 돈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건 아니니까.
그러다 어느 순간서부턴가 지인들이 약아지기 시작했다. 눈이 높다고 하지 않고 '까다롭다'라고 하더라. 그런데 그 표현에는 그다지 반감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난 정말 까다롭더라. 엄청난 미인을 만나고 싶은 것도, 좋은 집안이나 학벌을 반드시 바라는 것도 아니지만 모든 면에서 내가 생각하는 하한선 같은 느낌의 기준은 은근히 갖고 있더라. 조금 더 어렸을 때는 그게 '객관적인 사회적 기준'이었다면, 나이가 들수록 그 기준도 유연해지고 '내가 품을 수 있는 한도'로 표현되기 시작했지만 내가 까다로운 편인 것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듣기 시작한 후부터는 뻔뻔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나 까다로워'라고 대놓고 선언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글에서도 밝히겠다. 그렇다. 난 까다롭다. 아니, 사실 난 눈도 좀 높은 편이다. 약간은 손이 오그라들지만 지인들이 해준 고마운 말을 빌려서 표현하자면 '너처럼 괜찮은 애가 왜 아직까지 싱글인지 모르겠다'면서 열심히 사람을 소개해주려 했던 사람들이 모두 나가떨어졌는데 어떻게 그 사실을 부정하겠나? 그래서 그렇게 대놓고 말한다. 제정신이냐고? 돈도 별로 없는 노총각이 소개팅을 한 번이라도 더 받아야 하는데 그런 말을 하면 누가 소개를 시켜주냐고?
그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소개팅을 '무조건' 많이 한다고 나와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더라. 더군다나 나처럼 희한하게 까다로운 사람은.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소개팅 한 번 하는데 소요되는 시간과 에너지, 비용이 부담이 되기 시작하더라. 그래서 많이 받는 것보다 주위 사람들이 고민해주고 소개시켜주는 사람과 진정성 있는 만남을 갖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눈이 높지 않다고, 까다롭지 않다고 할 유일한 이유는 소개팅을 '많이' 받기 위한 것 밖에 없더라. 그래서 그냥 까다롭다고 인정하고 다닌다. 그리고 그렇게 말해야 상대가 날 더 이상 괴롭히지 않는단 것도 학습효과로 알게 되었다. 내가 반박을 하면 상대는 날 가르치려 들려하고 잔소리만 하더라.
여기에 한 걸음 더 나가서 생각해보니 만약에, 언젠가 기적적으로 나처럼 까다로운 사람이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에겐 내가 까다롭고 눈 높은 사람인 게 낫겠단 생각이 들더라. 상상하고 싶지 않겠지만, 당신이 나와 만남을 갖기 시작했다고 생각해보자. 아, 당신이 남자라면 다른 이성을 떠올리고 상상하시길 추천한다. 어쨌든, 당신이 만나는 사람의 지인들이 당신에게 그 사람에 대해 말하면서 '얘는 진짜 눈도 안 높고 사람 잘 만나요.'라고 하는 게 기분이 좋을까? 아니면 '얘가 까다롭고 눈이 높아서 어떤 사람을 만날지 너무 궁금했어요.'라고 하는 게 좋을까?
당연히 후자가 좋다. 누가 들어도 후자가 나를 조금 더 특별한, 상대가 고르고 고른 소중한 사람으로 느껴지게 만들지 않나? 눈이 낮다는 말은 그냥 대충 아무나 만날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했을 때 난 내가 소개를 쉽게 받지 못하더라도, 기적적으로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의 마음과 자존감을 위해서는 내가 까다롭고 눈이 높은 사람인 게 낫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렇게 얘기하고 다닌다. 실제로 지인들은 내가 결혼을 한다면 어떤 사람과 식장에 걸어 들어갈지를 엄청나게 궁금해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우리가 까다롭지 않을 이유가 있나? 연애를 할 때는 조금 다를 수 있다. 연애는 일단 감정에 충실한 게 우선이고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결혼은 조금 다르다. 결혼은 어찌 생각하면 별게 아닐 수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꾸리고 그 공동체를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겠단 약속을 한다는 면에서 그 무게감은 분명 다르다. 그런 약속을 쉽게, 적당히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게 아닐까? 결혼 상대를 결정하는데 왜, 까다롭지 않아야 할까?
이런 생각에 대해 항상 돌아오는 피드백은 결혼해서 살아도 서로 모른단 것이다. 맞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은 리스크를 수반한다. 우리는 결혼 전에 아무리 머리로 따져봐도 그 사람이 결혼 후에 어떤 모습일지를 완전히, 100% 알 수는 없다.
어떤 이들은 그렇게 때문에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선택에는 아무 리스크가 없을까?
물론, 결혼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도 있다. 결혼하지 않아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면 그렇지 않은 것보다는 덜 외롭고 덜 힘들 수 있다. 그런 관계는 함께 살고, 실질적인 이해관계까지 공유할 정도로 신뢰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전통적인 '가정'은 아닐 수도 있지만 가족일 수 있다. 그런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면 결혼은 분명,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런 공동체를 꾸릴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온전히, 100%에 가깝게, 실질적인 이해관계를 공유할 수 있을 정도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인간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정도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사람들도 많다. 아니, 우린 대부분 그럴지도 모른다.
결혼은 뭐가 다르냐고? 상호 간의 감정, 사랑한다는 감정이 다르다. 우리가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 평상시에, 혹은 다른 사람에게 하지 않을 행동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하지 않나? 그런 감정들이 연애와 결혼의 전부는 아니지만 연인과 부부에게 중요한 부분인 건 그런 감정들이 인간이 갖는 한계를 뛰어넘게 해 주기 때문이다. 결혼해서도 그 관계에 새로움을 불어넣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도 새로움이 있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감정들이 있어야 두 사람이 인간이 갖고 있는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해 준다.
그런 관계가 없는 사람의 삶은 어떤가? 사람마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은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을 전하자면 난 인간은 결국 관계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수용받으면서 사랑을 주고받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고, 조금 단순화해서 말하면 결국은 사랑하기 위해 산다고 생각한다.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돈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 먹고살기 위해서, 조금 더 여유롭고 다양한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 필요한 '수단'이고, 권력과 명예는 사실 사회적인 구조 안에서만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것 자체가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준다고 할 수는 없다. '사회'는 '국가'란 틀 안에만 존재하고, 심지어 신자유주의자들 중에서는 사회란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니까. 그러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사랑밖에 없는 듯하다.
그런 면에서 사랑은 사람을 가깝게 만들어주는 수단이자, 인간이 살 수 있게 해 주는, 그래서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핵심적인 가치,라고 나는 생각한다. 진짜 사랑을 할 때 행복하고, 행복해야 살아지니까 사랑이 수단이자 목적이 되는 것이다. 사랑받지 못한 사람들이 망가지고, 그랬던 사람도 사랑을 받으면 안정되는 것은 그걸 증명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사랑이 꼭 이성 간의 사랑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게 꼭 가정이라는 공동체의 틀 안에 있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계속 얘기하지만 인간은 자기중심적이고, 다른 사람을 쉽게 신뢰하지 못한다. 그건 아마도 생존하기 위해서 우리 안에 생겨난 습성일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말했듯이 그런 것을 넘어서게 해주는 것은 결국 '사랑' 밖에는 없는 듯하다. 그게 꼭 에로스적인 것이 아니어도, 스토르게, 필아, 아가페 어떤 것이어도 된다. 여기에서 '확률'을 따져보자. 이성적인 호감 없이, 감정의 도움 없이 누군가를 그 정도로 신뢰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사람들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고민도, 고려도 하지 않고 너무 쉽게 결혼은 부담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감정의 영역은 배제하고, 금전적이고 물질적인 부분[만] 고려하면서. 정말 그런가? 일단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있어야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다고 말한다. 정말 그런가? 누군가를 정말 사랑했을 때 비싼 것을 먹고, 좋은 것을 해야만 행복했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진짜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다. 누군가를 진짜 사랑하면, 그저 그 사람과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진다. 그리고 그건 물질적인 풍요로움보다 사랑이 인간에게 더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돈과 물질의 중요성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돈과 물질은 중요하다. 하지만 우선순위라는 게 있지 않나? 사람들은 돈과 물질이 없으면 사랑할 수 없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힘과 노력을 들이게 되기도 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더 노력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도 왜 결혼을 하는 게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냐고? 그건... 감정이란 것은 변덕스러워서 인간은 서로를 구속하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그 안에서 노력하고,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이란 제도가 인간에게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사랑이 중요하긴 하지만 감정에는 기복이 있다 보니 서로의 '현실'과 '이해관계'를 공유해야 그 관계가 단단해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의 감정과 현실은 일방향으로 작용하지 않고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에겐 그래서 경제적, 사회적, 감정적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때로는 의존하는 가정이 필요하고 그 가정을 꾸리기 위한 결혼을 하는 게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문제를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기 위해서 결혼이, 가정이 왜 필요했는지에 대해 다음 글에서 살펴보려 한다. 결혼을 해도 왜 그런 가정이 꾸려지지 않는지 등의 얘기는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시리즈 초반인 이 글에서 다루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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