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가족에의 이유. 1편
마흔의 싱글이다. 그렇다. 어찌하다 보니 나는 '그 나이에는 차라리 한 번 갔다 온 사람이 낫다.'라고 하는 나이가, 싱글인 상태로 되었다.
내가 그런 나이가 된 것은 대화 속 미묘한 디테일들에서 느껴진다. 일단 30대 중반까지만 해도 친척과 지인들에게 '결혼해야지'란 말을 자주 들었는데 그 빈도가 어느 순간서부턴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렇다. 사람들은 안쓰러움과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이제 쟤는 장가를 못 가겠구나'를 전제하고 나를 대하다 보니 결혼해야 한단 얘기를 쉽게 꺼내지 못한다. 그게 더 싫은데. 물론, 그렇다고 '결혼해야지'란 말이 좋은 것도 아니지만.
어쩌다 결혼 얘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내가 결혼을 [안]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그 말을 바로잡아준다. [못]하고 있는 거라고. 그들은 나름 날 위해준다고, 내가 명확한 주관을 가지고 있으며, 결혼보다 중요시 여기는 것이 있기 때문에 결혼을 안 하고 있는 것이라 포장해주고 싶은 것이리라. 그들은 왜 그게 날 더 비참하게 만든단 것을 모를까. 난 결혼을 엄연히 [못]하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20대 때부터 서른 살에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물론, 지금은 그때 결혼을 했다면 나의 미성숙함과 날카로움으로 인해 내 인생이 더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임을 알기에 결혼을 [못] 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난 자의로 결혼을 [안]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조금 더 나가면 사람들은 나를 위로해주려 하기 시작한다. '남자들은 나이가 들어도 괜찮아'라고. 그렇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돈 있고,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남자들은 짝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여전히 있어'가 맞는 표현이다. 여자도 나이가 들면 만날 수 있는 사람의 폭이 좁아지듯이 남자도 그렇다. 물론, 남자들은 그 시기가 2-3년 정도 늦게 찾아오는 면은 있다. 하지만 여자들도 나이가 들수록 남자들의 나이를 의식하기 때문에 돈 있고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잇는 남자들도 나이가 든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의 풀이 유지되거나 확장되는 것은 아니다. 감소폭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경제력 있는 남자들도 만날 수 있는 사람의 폭도 좁아진다.
그런데 나는 사회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돈 있고,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나이 먹은 남자'는 아니다. 스스로는 나이를 아직 먹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사회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나이 먹은 것이라 평가받을 나이가 되었음을 나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인생에 대한 투자'네, '내가 하고 싶고 가치를 느끼는 일을 하겠네'하면서 경제적인 성취는 '한국에서 남자를 금전적으로 평가하는 기준'에서는 충분히 이루지 못했다. 당연히 그런 기준에 합당한 자산도 없고, 따라서 그에 합당한 대출도 받기는 힘들다. 프리랜서니까. 그렇기 때문에 내게는 '남자들은 나이가 들어도 괜찮아'란 기준이 적용되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 나이 또래의 경제적으로 안정된 남자들이 부러운 것은 아니다. 아니, 솔직히 부러울 때는 많지만 결혼과 가정을 꾸리는 영역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들을 부러워하진 않는다. 이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 나를 나 자체로 좋아해 주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가진 것들로 인해 나를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것인지가 구분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건 사실 당사자들도 모른다. 인간의 감정이란 게 여러 요소가 결합해서 작용하기 때문에. 그런데 상대의 금전적인 조건이 크게 작용해서 마음이 움직인 경우, 사람들은 그 풍요로움에 금방 익숙해지기 때문에 사귀거나 결혼한 후에 그 한계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잘 나가고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으면서 결혼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 사람들 중 싱글인 사람들이 적지 않은 건 그 때문이 아닐까?
반면에 나처럼 손에 쥐고 있는 카드도 많고, 일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당장 금전적인 메리트는 없는 사람은 누군가가 금전적인 부분을 보고 좋아할 가능성이 거의 0으로 수렴한다. 자기 합리화 맞다. 멘탈 승리 맞다. 뭐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그 안에 단 몇 % 의 진실도 담겨 있는 게 사실 아닌가?
이즈음 되면 사람들은 '그냥 혼자 살아도 되지 않아? 왜 굳이 결혼을 하려고 해?'라고 묻는 사람들이 나온다. 아니, 마흔 정도 되면 주위에 결혼하지 않거나 못한 사람들보다는 결혼한 것은 물론이고 애들도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위에서 얘기한 모든 단계를 생략하고 이런 얘기부터 들이미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네가 부럽다며,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하지 않냐며, 본인도 결혼하지 않았으면 나처럼 살았을 거라나?
다 거짓말 혹은 착각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았어도 지금 하고 있는 경제활동을 했을 것이다. 내 경험으로는 치고 나갈 사람들은 사십 년 이상 억지로 버티고 있지 못한다. 남녀불문, 내 나이 즈음된 지인들은 상당수가 본인의 상황에 대한 핑계를 어떻게든 본인이 결혼한 것에 돌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착각이다. 어떻게 확신하냐고? 첫 번째로, 본인이 정말 그렇게 치고 나갔을 성향과 성격의 사람이라면 어떤 환경에서든 그럴 방법을 찾았을 것이고 두 번째로, 그들은 본인의 현재 나이에 싱글로 지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혼을 했어도 본인 일이 무조건 우선인 사람은 이혼을 하거나, 주변 사람들과 자신이 갖고 있는 자산을 활용해서 아이가 있어도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시스템을 어떻게든 만들어낸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런 사람들이 실제로 있지 않은가? 그러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아이나 결혼을 핑계로 대겠지만 사실 결혼하거나 아이가 없어도 리스크를 하고 안정을 깨고 나가지 않을 이유는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그들은 결혼하지 않았어도 그런 이유로 지금과 비슷한 삶을 살았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 사람들은 내 나이에 싱글인 나를 부러워하는데, 그건 사실 그들이 내 나이에 싱글이 되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결혼해서 애까지 낳은 사람들은 본인이 어른이라며, 본인이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경향이 있다. 분명 일리 있는 말이고, 그 말이 맞는 면이 있다. 나도 안다. 하지만 어른이라고 해서 세상 모든 것을 아는 건 아니듯이, 그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키움으로 인해 나보다 성숙한 면이 있단 것이 그들이 경험해보지 않은 자신이 결혼한 나이 이후에 싱글의 삶을 아는 건 아니다.
결혼하지 말라는 사람들이 아는 싱글들의 삶은 '자신이 결혼한 나이'에 멈춰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결혼을 안 했으면 소개팅도 계속 들어오고, 자유롭게 연애하고 헤어지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결혼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여자는 30대 초반, 남자도 30대 중반 이후로는 소개팅을 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물리적으로 소개팅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뭔가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이 떠오르고 '괜히 헤어졌나? 내가 놓친 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는 빈도가 점점 높아진다. 이는 괜찮은 사람들은 일찍 결혼하는 경우가 많은 경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체력적인 이유든, 스트레슬 때문이든) 누군가에게 맞추는 걸 귀찮고, 힘들어하다 보니 괜찮았던 사람들도 이상해지는(?) 경향도 이런 흐름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자유... 이 부분은 나도 부인할 수 없다. 싱글인 게 훨씬 자유로운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놈의 자유가 조금 덜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 순간들이 생긴다. 에너지 레벨이 기본적으로 높은 30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사실 싱글로 살만하다. 다양한 취미도 할 수 있고, 재미있고 새로운 것들도 많으니까. 하지만 본인이 무엇인가에 엄청난 마니아여서 그 분야를 계속, 깊게 파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 것에서 느끼는 '새로움'과 '즐거움'은 점점 감소될 수밖에 없다. 익숙해지니까.
그런 상태가 될 즈음에 주위를 봤을 때 친구들이 대부분 결혼한 상태라면, 아니 그렇지 않다고 해도 30대 후반을 넘어가면 사실 친구들과 공감하면서 대화할 소재가 현저히 줄어든 상태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나이대가 되면 대부분 사람들이 본인을 챙기는 것이 1순위이기 때문에 친구들과의 만남과 대화에 어렸을 때만큼의 공감대가 형성되진 못한다. 각자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물론, 정말로 결혼하지 않은 것이 더 행복했을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 본인이 그 정도로 자유가 최고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게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결혼생활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시 싱글이 되었을 것이다. 그게 아예 맞지 않았다면 그걸 몇 년 동안 버티고 있을 수가 없다.
물론, 결혼생활은 쉽지 않고 힘든 점들은 분명 있을 것이다. 그것까지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싱글의 삶이라고 해서 완벽한 것도 아니다. 세상은 아이러니한 방면으로 공평해서, 우리는 뭔가를 얻으면 반드시 뭔가를 잃게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싱글로서의 삶을 불평할 생각은 없다. 또 사실 개인적으로는 싱글로 산 덕분에 지금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고집스럽게 내 길을 올 수 있었기에 결혼을 [못] 한 것은 그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결혼을 못한 것에 대해서 징징댈 생각은 없다.
이는 결혼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본인이 결혼하지 않았다면 뭔가 다르고 훨씬 좋아졌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착각이다. 본인이 결혼하지 않았다면 그 나름대로 힘든 부분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때는 '결혼했으면 이런 게 없었을 텐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때는 또 결혼한 친구들이 말하겠지. '니가 결혼을 안 해 봐서 그래'라고. 그래서 나는 결혼한 친구들이 내게 결혼을 안 했다면 달랐을 것이라고 하면 똑같이 답해준다. '니가 나이 먹은 싱글의 삶을 몰라서 그래'라고.
이 즈음되면 결혼하지 않고 쿨하게 살기로 마음먹을 법도 하지 않냐고? 그 생각, 왜 안 해 봤겠나? 한 때는 진지하게 결혼 안 해도 괜찮을 것 같단 생각을 갖고 있을 때도 있었다. 그 생각이 바뀌게 된 이유에 대해서 다음 글에서 풀어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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