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관계에는 답이 있다. 7편
6학년부터 10학년, 한국 학제로 5학년 2학기부터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때까지 중국에 있는 외국인 학교에 다녔다. 가장 예민한 시기를 미국학교 시스템 안에서 보내고, 미국 선생님들과 대화하고 배우다 보니 사고방식이 한국 교육 시스템에서 자란 아이들과 많이 달랐다. 지금도 그런 면들이 있음을 스스로 느끼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나라 학제를 기준으로 고등학교 1학년 2학기에 홀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부모님이 가라고 하면 가야 하는 줄 알았으니까.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에 가지 않겠다고 버틴 사람도 있고, 그렇게 한국에 들어왔다가 못 견디겠다며 다시 나가겠다고 우긴 사람들도 있었던데 나는 꽤나 순종적인 편이었다. 아버지께서는 고등학교 친구가 평생 가기 때문에 고등학교는 한국에서 졸업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순진하게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거짓말이었다. 나이가 조금 더 든 후에 어머니께서 말씀해 주시더라. 미국으로는 대학을 보내고 생활비까지 지원해 줄 상황이 안되어서 한국으로 보내셨다고. 조금 정확하게 말하면 부모님은 나를 한국에 보내서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게 하기 위해 재외국민 특별전형 대상자가 되는 기준을 맞춰서 나를 한국으로 보내셨다.
그렇다면 고등학교 친구들만 평생 간다는 아버지의 얘기도 진실이었을까? 우리 아버지의 삶을 보면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다. 아버지는 여전히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고등학교 선후배와 동기들 뿐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 경우를 보면 그건 사실이 아니다. 물론, 고등학교 동기들 중에 편하게 속을 터놓고 지내는 친구들도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정말 친하게,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사람들 중에는 회사 동기로 만난 사람, 대학교 동아리에서 만난 동기와 선후배, 심지어는 30대가 되어서 만난 사람들도 절친처럼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아버지 연배의 다른 분들 중에서도 나이가 들어 만난 사람들 중에 매우 친한 친구가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아버지는 개인적인 성향과 성장배경, 업무환경으로 인해 친구가 그렇게 형성된 것이지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졸업한 모교에 보내지고, 다닌 것을 감사한다. 한국에서 대학교와 대학원까지 졸업한 것도. 이는 가장 예민한 시기를 미국 시스템 안에서 보내고, 그 뒤에 한국에서 살면서 나는 조금 더 두 문화권의 여러 요소를 내 안에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과정은 매우 고통스러웠다. 두 문화권을 어렸을 때 오가면서 적응해야 했던 경험이 없었던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는 혼란과 고통이 그 과정에 있었고, 내 지인들 중에는 그 과정을 버텨내지 못해서 방황하거나 일탈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나는 다행히 그 과정을 잘 버티고, 적응해 냈고 그래보니 지난 모든 과정이 감사하더라.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나는 친구와 관련된 아버지의 말씀이 틀렸다는 것을 내 경험과 아버지의 주위를 보면서 더 확실하게 알게 됐다. 아버지는 여전히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와 선후배들을 주로 만나시는데 옆에서 그분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대화의 상당 부분은 과거와 자녀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그분들은 본인의 사적인 감정과 현재에 대한 대화를 많이, 깊게 나누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분들은 그 관계에서도 우열을 따지며 자신의 자랑할 건 내놓고, 흠으로 느끼는 건 숨기신다는 걸 얼핏 들어보는 아버지의 이야기에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친구'란 무엇인가? 친구의 사전적 정의는 [가깝게 오래 사귀어 정이 두터운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속에 있는 모습까지, 힘들고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모습까지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친구들은 그런 대화는 나누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그분들은 그저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연대감으로 뭉쳐서 과거에 빠져서 현재를 회피하시는 느낌이 개인적으로 들었다. 그런 생각을 갖게 하는 일들이 아버지의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여러 번 느껴졌다.
내 친구들은 어떨까? 나도 고등학교 시절에 절친이 있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다닐 때까지도 우리는 꽤 친했다. 내가 교회를 옮겨야 할 상황에 처하자 같은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자고 친구가 말했을 정도니까. 그리고 지금도 허물없이 연락하고, 오랜만에 만나도 좋은 고등학교 친구들이 지금도 있다.
그런데 그런 친구들 중 한 명이 연락도 없이 이민을 갔다. 처음에는 섭섭했다. 그런데 '본인도 상황이 있겠지' 싶은 마음이 들더라. 그러고 나서 생각해 보니, 나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옮기면서 친구한테 얘기를 안 했더라. 당시에 너무 힘들고,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그랬지만 우리가 얼마나 친했는지를 생각하면 나 역시도 그랬으면 안 됐다.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자기 삶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고, 그렇다 보니 본인의 삶의 변화에 따라 친구들도 멀어지는 경우는 굉장히 많다. 둘 사이에 특별한 일이 없더라도 두 사람의 삶의 궤적이 완전히 달라지면 두 사람은 서로 공감하면서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줄어들어서 멀어지고, 또 반대로 비슷한 삶의 궤적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 기간 동안에라도 친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친구'라고 부르는 사람들 중에 '평생'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속까지 터놓고 지내는 사람은 많지 않을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본인 중심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리고 아무리 친한 사람이었어도 한 사람이 갑자기 잘 나가거나, 한 사람의 상황이 급격하게 힘들어지면 두 사람은 또 멀어지기 마련이다. 서로 사는 세상이 너무 달라지면, 두 사람이 과거에 아무리 친했어도 공감할 수 있는 현재가 없기 때문에. 그게 나쁜 것도 아니고, 비난이나 비판 받을 일도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자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친한 사람들과는 친하게 지내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을 필요는 없다. 나는 내 친한 친구가 내가 좋아했던 사람과 사귀고 나서 헤어진 뒤에, 내 친구의 전 여자친구와 연락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내 안에 여전히 호감이 있음을 느끼고 고백을 할지 고민하다 친구 생각이 나서 포기한 적이 있다. 연인은 언제 헤어질지 모르지만, 우정은 평생 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우정도 평생 가진 못하더라. 그리고 내 친구의 전 여자친구는 우리 셋이 모두 아는 다른 친구와 결혼까지 했다. 그 뒤로 난 우정보단 사랑을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우정은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바뀌면 약해질 수 있는데 사랑은 쉽게 찾아오지 않기 때문에. 우정보단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