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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TC

나는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써왔을까

by Simon de Cyrene

이 공간에 글을 남긴 지가 벌써 2달이 다 되어간다. 너무 바빴다. 일주일이 세 번의 강의. 그중에 화목으로 나눠서 하는 강의는 이번 학기에 처음이었던. 그리고 아직 학문적으로 완전히 정립되어 있지는 않기 때문에 여러 자료를 엮어가며 내가 그 내용을 구성해야 했던 과목이었다. 그렇다 보니 월요일 오후부터 화요일 오전, 수요일 오후부터 목요일 오전까지는 강의안을 만들고 숙지하는데 집중해야만 했고, 금요일엔 다른 지역에서 6시간 동안 강의를 하다 보니 토요일은 거의 시체가 되곤 했다. 이런 사이클에선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더라.


그 사이 글이 나오지 않는 계정의 구독자는 줄어들었지만, 이젠 그 또한 괜찮다. 브런치에서 구독자 한 명, 조회수 한 개가 늘어가는데 집착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 수년간 글을 써오는 과정에서, 나는 숫자의 크고 작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단 한 사람이라도 내 글을 소중하게, 잘, 읽어주면 그것만으로도 내 글들이 이 세상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숫자에 대한 집착이 사라진 건 아니다. 2-3년 전에 처음 그 생각을 했고, 그 뒤로 시간이 흘러가며 숫자에 대한 나의 집착은 조금씩 희석되어 가고 있다.


지금 돌아보면 내겐 그 휴지기가 반드시 필요했더라. 글을 아예 쓰지 않은 두 달, 계엄 얘기를 제외하면 거의 3-4달 정도는 글을 쓰지 못하게 되면서 내가 이 공간에서 글을 써온 패턴을 돌아보게 됐다. 그런 적이 있었다. 지금도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나를 아는 지인 중에 한 명이 악플러가 되어 내 글에 비난에 가까운 비판을 쓴 적이. 처음엔 내 지인이라는 걸 몰랐는데, 비공개인 내 인스타 스토리에 올린 '악플러'란 표현이 들어간 문장을 댓글에 그대로 붙여놨더라. 내가 본인을 특정할 수 있을지 몰랐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댓글이 달린 시점에 내 스토리를 확인한 지인은 몇 명 되지 않았고, 그중에 그나마 악플을 와서 달 사람은 한 명 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었다. 나와 친하지도 않았고, 수년간 만난 적도 없었던 그 사람이 왜 그런 댓글을 썼는지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도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사람에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머리로는 이해가 된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에 나는 정서적으로도, 현실의 삶에서도 불안정했었다. 그리고 당시 나는 이 공간에서 글의 소재를 급격하게 확장하고 있었다. 뭐를 해서라도 빨리 성취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과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렇다 보니 내가 잘 모르는 영역으로까지 일단 어떻게든 픽업되고 싶단 마음에 내가 다룰 깜냥이 되지 않는 소재에까지 손을 대려고 했더라. 그 사람은, 그게 꼴 보기 싫었고 내가 오만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랬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 시기에 이 공간에서 쓴 나의 글들 중 상당수는 자의식이 과잉된 상태였다. 내가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다. 사실 그래서 당시에 내가 이 공간에 썼던 글들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중 상당수는 비공개 처리한 상태이고, 남아있는 글들 중에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글들을 삭제하지는 않고, 일부는 공개로 유지하는 건 내가 그런 모습이었던 것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공개해 놓은 글들은 그렇게 부족한 글 안에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지점들이 있었다는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었던 글들이다.


논문도 쓸 여력이 되지 않고, 브런치에도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던 시간이 아이러니하게도 내 글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빨리, 뭔가를 이루기 위한 글은 이제 최대한 쓰지 말자고. 그리고 한 땀 한 땀, 내가 쓰는 문장들을 곱씹어가며 글을 써보자고. 그래야 나다운, 내가 조금이라도 덜 부끄러운 글을 쓸 수 있을 테니까.


글이 나의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글 자체가 목적이 되도록 노력하면서 글을 지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아마 이 공간에 내가 지난 수년간 했던 것처럼 글을 쏟아내진 못하겠지만, 한 과목은 종강을 했고 두 과목도 수업이 한 번씩만 남았으며, 다음 학기에는 수업을 두 개만 할 듯하니 한 땀 한 땀 쓰는 훈련을 이제 시작해 보려 한다. 그래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이야기들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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