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는 고맙게도 나를 '가족 분야 크리에이터'로 정리해 줬다. 하지만 내가 이 공간에서 쓴 글들의 대부분은 연애, 사랑, 결혼을 소재로 한 것이었다. 그중에 결혼은 곧 가족과 연결고리가 생기니 그 분류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봤을 때 나는 연애와 사랑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춘 글들을 많이 썼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또 그 포커스는 단기간의 연애나 사랑은 아니었으니, 이런 지점까지 고려해서 나를 분류했다면 브런치팀의 세심함에 매우 놀랄 것이다.
오랫동안, 이 주제에 대해 많은 글들을 썼다. 그런데 썰이 아니라 진리를, 진실을 이해하고 있다면 그 내용은 한 문장이나 글 하나 정도로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글은 그 생각이 든 순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난데없는 자신감이 들어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이 글에 대한 나의 목표는 최대한 짧게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결혼이 반드시 필요한가? 세상에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뭔가를 먹긴 해야 하고, 물도 마셔야만 하지만 그 정도를 제외하면 우리 삶에서 꼭,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은 없다. 운동도 반드시 하지 않아도 되고, 다양한 영양소도 챙겨 먹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반드시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 우리가 꼭 살아야만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나는 가장 힘든 시기에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고,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 이 순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문제까지 들어가면 모든 게 너무 복잡해지니, 일단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을 전제로 하자. 우리가 죽지 않고 심장이 뛰고, 생명을 유지하며 이 땅에서 살고 있단 것을 전제로 할 때 무엇을 먹거나 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다양한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는 것은 우리가 조금 더 건강하게, 덜 고통스럽게, 조금 더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하는 건 그런 의미를 갖는단 것이다. 적절한 운동 역시 우리가 조금 더 다양한 활동을, 잘할 수 있게 해 준다.
좋은 학교를 졸업해야만 경제활동을 할 수 있거나 잘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주위를 보면 좋은 학교를 나오는 것이 새로운 단계로 넘어갈 때 상대를 설득할 때 약간의 힘을 보태주는 기능과 역할은 해주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상대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상대를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한데 출신학교나 이력, 경력은 은그런 신뢰를 형성할 때 한 층 정도를 더해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처럼 우리 인생에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움이 되고 유익이 되는 것들이 있다. 물론, 다양한 영양소를 챙겨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하고도 단명하는 사람이나 암이 걸리는 사람들도 있다. 또 좋은 학교를 나온 모든 사람들이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니며, 그것이 곧 성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봤을 때 그러한 요소들은 조금 더 긍정적인 것들을 선물해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결혼 역시 마찬가지다. 결혼을 해서 불행해지는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아니 잠깐, 그 사람이 불행해진 건 결혼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사람은 결혼하지 않았다면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인해 불행해졌을까? 후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결혼여부와 무관하게 우리네 삶은 힘들게 하는 것들이 주위에 널려있기 때문이다. '너만 없었더라면'이나 '결혼하지 않았다면' 더 행복했을 것이란 말은 사실이 아니다.
결혼한 뒤에, 결혼으로 인해 찾아오는 요소들이 누군가를 힘들게 할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이란 기대는 사실이 아니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하지 않은 대로 그 사람을 힘들 게 하는 것은 따로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이 '확률' 싸움의 변수인 것은, 사람은 누구나 필연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으로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친구들이 평생 갈 것 같고, 일하다 마음이 잘 맞는 사람과 함께 하면 모든 게 수월하게 될 것 같았을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친구들과 내 삶의 궤적이 달라지면서 각자의 영역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지고, 같은 일을 할 때도 이해관계가 달라지면 사람관계는 결국 멀어지게 되더라.
인간은 감정을 갖고 있는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매우, 극히 예외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는 대부분 의존적이지는 않더라도 의지할 수 있는, 나의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서로를 잘 알고 있어야 하고, 현실적으로는 이해관계를 공유해야 한다. 서로를 잘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상대에게 공감해 줄 수 없고, 이해관계가 공유되지 않으면 두 사람의 이해관계가 달라질 때 갈라서게 된다.
그러한 공감과 이해관계가 형성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상대의 특정한 면모, 그게 외모이든 성격이든 자신의 경향성과 취향에 따라 한 사람에 꽂히고, 그걸 사람들은 '사랑에 빠진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빠진 것은 사랑이 아니다. 상대의 매력적인 모습을 보고 내 것으로 '소유'하고 싶어 졌을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소유욕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러한 인간이 누군가와의 관계가 시작되기 위해서는 결국은 상대의 특정한 면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단 생각이 들어야 한다.
다만, 그 소유욕이 상대를 내 것으로 만든 뒤에 내 마음대로 이용하고 싶은 마음인지, 아니면 내 것을 소중하게 다루고 싶은 것인지에는 큰 차이가 있다. 가방을 하나 샀다고 생각해 보자. 가방에 뚜껑을 헐겁게 닫은 텀블러나 먹다 만 과자 봉투를 쑤셔 넣고, 아무 곳에나 던지는 식으로 가방을 사용하면 그 가방은 처음 샀을 때의 모습이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것이다. 반면에 물건 하나를 넣을 때도 신중하게, 바닥에 놓지 않고 거의 모시듯이 조심스럽게 다룬다면 그 가방은 오랫동안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서 더 아름답게 길들여질 수도 있다.
관계가 소유욕에서 시작되는 것이 나쁜 게 아니다. 나의 소유물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그 물건이 달라지듯이, 내가 사랑한다고 부르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 지에 따라 상대가 망가질 수도 있고, 더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연애나 결혼의 영향을 어떻게 받는 지를 아는 경우가 많지 않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그 사람이 좋은 연애나 결혼을 하고 있는 지를 어렵지 않게 느낀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도 좋은 사람이 되지만 나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이기적이 되거나 망가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서로를 소중하게 다루다 보면, 상대가 나를 소중하게 다뤄지는 것이 고마워지고, 나도 자연스럽게 상대를 더 소중하게 여기고 싶어진다. 그 과정에서 어느 순간서부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타심이 소유욕을 넘어서게 되는데 우리는 그때야 비로소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것이다.
즉, 내가 상대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정말 싫고 귀찮은 것이지만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상대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단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내가 똑같은 행동도 상대를 갖기 위해 할 수도 있다는 것. 겉으로 봤을 때 두 가지는 같아 보이지만 그 뿌리도, 결과도 다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그 차이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전자는 상대가 행복해하는 것만으로도 만족이 되지만, 후자는 언젠가는 상대에게 자신의 희생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게 된다.
처음부터 상대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무엇을 해주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 초기에는 누구나,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상대에게 무엇인가를 바라면서 이타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두 사람이 공유하는 경험, 추억과 신뢰가 쌓이면서 이기적인 이타심은 순수한 이타심으로 전환되어 간다. 그 과정이 연애고, 사랑은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연애, 사랑과 결혼이 가장 힘든 부분은 사랑이 만들어졌다고, 결혼을 했다고 해서 그게 그냥 유지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좋은 몸을 만들었어도 운동을 1년 동안 안 하고 과식하면 몸이 망가지듯이, 사랑도 서로를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희석되고 사라질 수 있다. 결혼을 했다는 사실이 두 사람 관계에 어떤 것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결혼은 결국 제도에 불과하지 않은가?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고, 같은 곳을 바라보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과 자신의 경험, 감정을 솔직하게 상대에게 나눌 수 있어야 하며, 두 사람은 상대의 말을 잘 경청해 주고 공감해 줘야만 한다. 두 사람은 굿 리스너가 됨과 동시에 굿 스피커가 되어야 한단 것이다. 그리고 이게 유지되고, 두 사람이 서로의 말을 주고받는 게 가장 재미있어야 두 사람의 관계가 계속될 수 있다.
그래서 사실 연애와 결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력'이다. 이성적인 호감을 느끼고 푹 빠질 수는 있지만, 새로운 옷을 살 때는 그게 엄청나게 소중하게 여겨지지만 시간이 흐르면 시큰둥해지듯이 연인이나 배우자에게도 두 사람이 그 관계에 노력을 붓지 않으면 그 관계는 망가지게 되어 있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연인과 배우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덕목은 '서로에게 느껴지는 매력'과 '노력하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노력도 재능이니까.
연애에도 노력이 필요하단 말인가. 그렇다. 그런데 이 노력은, 두 사람이 같이 하고 있으면 노력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도 자기중심적이고 상대도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상대가 노력을 하고 내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않으면 상대에게 무엇인가를 주고 싶어 지기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