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할 이유

by Simon de Cyrene

사춘기를 해외에서 보냈다. 그리고 미국은 아니지만 '미국인학교'라는 이름이 붙은, 미국의 교육시스템이 적용되고 선생님들이 대분 미국인인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고등학교는 한국에서 기숙사 학교를 다녔다.


그렇다 보니 연애를 하지 말라는 말을 선생님들께 들은 적이 별로, 아니 거의 없다. 초등학교 때야 선생님들이 그런 이야기를 할 나이가 아니고, 보통 중고등학교 때 연애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을텐데 내가 자란 환경은 그와 완전히 달랐다.


미국인학교에서는 발렌타인데이 때면 학생회에서 자신이 호감이 있는 사람에게 편지와 장미를 보내는 이벤트를 했고,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진행되는 댄스파티에서는 빠른 음악에 춤도 췄지만 남녀가 함께 slow dance도 추는 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학교에서는 연애하며 손잡고 다니는 사람들이 넘쳐났고 선생님들은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선생님의 아들도 학교에서 연애를 하고, 그 아들의 여자친구가 그 분의 수업을 듣기도 했다.


한국에서 다닌 고등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한 번쯤은 연애하지 말라는 말을 할 법도 했다. 지금 나의 모교는 자사고이고, 내가 다닐 때도 시험을 봐서 들어오는 학교였으니까. 하지만 어느 선생님도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없다. 기숙사가 있고, 학생들이 전국에서 온 학교다 보니 학생들은 학기 중엔 거의 주말까지 학교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학생들이 만나는 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한 학년에 학생이 많지 않다 보니 누가 누구와 사귀는 지는 거의 전교생이 다 알았고, 이는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에 대해 한 번씩 연애질한다고 공부에 소홀하면 안된다고 하는 선생님들은 계셨지만, 헤어지라고 윽박지르시는 분은 없었다.


그런 환경에 있었다고 해서 내가 연애를 자유롭게, 많이 한 것은 아니다. 위축되어 있고, 스스로의 외모에 자신이 없었던 나는 이성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법을 몰랐다. 그리고 나중에 들어보니 내가 덩치는 큰데 워낙 무표정하다 보니 다가오기가 힘들었다고도 하더라. 무엇보다 나는 항상 '이 안에서 사귀었다가 헤어지면 어떻게 하지?'란 생각이 앞서다 보니 이성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지 못했고, 그런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고백을 하다 보니 거절을 당하기만 했다. 그런데 또 거절을 당하고 나면 상대를 불편하게 하면 안된단 생각에 더 다가갈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나마 마음을 표현한 경우에도 나는 거의 항상 상대에 대한 호감을 혼자 안에 꾹 눌러 담고 있다 그 감정을 혼자 감당하지 못하겠다 싶을 때야 비로소 때 말 그대로 고백공격을 하는 방식으로 고백을 하곤 했다.


연애가 자연스럽고 남녀가 항상 공존하는 환경에 있어도 그랬다. 이 글을 쓰면서도 몇 번씩 '이걸 굳이 공개적으로 밝혀야 할까'란 생각에 멈칫 거리고 지웠다 다시 썼을 정도로 나는 당시에 남녀관계에 미숙했다. 여사친과 편하게 지내는 법은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호감이 생기면 상대에게 다가가고 표현하는 방법은 알지 못했다.


그게 180도 바뀌는 계기가 있었다. 학부시절 오랫동안 호감은 있었지만 같은 교회에 다녔던 친구에게 호감이 있었지만 마음을 표현하진 못했다. 교회 안에서 사귀던 사람들이 헤어지면 보통 여자가 떠나는 모습들을 봤고, 나에 대한 상대의 마음도 모르겠어서 항상 그랬던 것처럼 마음을 누르고 누르고 눌렀다. 그러던 중 여러 상황 속에서 내가 교회를 옮기게 되었고, 그제서야 마음을 표현했는데 상대가 나에게 오랫동안 호감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누군가가 나를 이성적인 호감을 갖고 볼 수 있단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친구와 만나면서야 비로소 내 안에 있던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와 낮은 자존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누군가 나를 오랫동안 호감을 갖고 지켜봐 줄 수 있다는 건 내가 부족하고 모자라기만 한 사람은 아니란 걸 의미했고, 그래서 그 친구에게 고마웠고, 나의 자존감도 회복이 됐다. 나의 미숙함과 이기심으로 인해 그 만남이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곧 20년 전 이야기가 될 그때의 만남을 지금도 기억하고 고마운 마음이 있는 건 내가 준 것보다 받은 게 훨씬 많고, 그 만남이 내겐 여러가지 측면에서 전환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연애를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나의 모습이었다. 그 이후 몇 번의 연애와 이별을 하는 과정은 물론이고 썸으로 끝난 더 많은 만남의 과정에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됐다. 내 안에 있는 좋은 점들은 물론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모습들까지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조금씩 내 자신을 깎고, 조정하고, 다듬는 시간을 가졌고 그 덕분에 나는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지만 과거보다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연애는 단순히 남녀가 감정을 표현하고 서로를 소유하는 관계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실제로 '알아가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우리는 착하고 순하기만 한 줄 알았던 사람의 그렇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전해 듣기도 하고, 무뚝뚝한 줄 알았던 사람이 사실은 낯을 가릴 뿐이었고 굉장히 섬세하다는 걸 지인으로 지낸 지 몇 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되기도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아주, 매우 친밀해지고 상대가 나를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기 전에는 사회적으로 무난하고 모나지 않은 '착한' 모습들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극악무도한 범죄자들도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 안에서는 대부분 무난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사람들의 '진짜' 모습은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과 있을 때, 또는 자신이 무엇인가를 욕구하고 욕망할 때 드러난다. 순하디 순하게 생긴 사람이 게임을 할 때 엄청난 승부욕을 보이고, 가족과 함께 있을 때의 모습과 다른 사람들 속에 있을 때의 모습이 다른 경우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는 신뢰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긴장할 필요가 없기에 편해서, 무엇인가를 욕망할 때는 그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에 이끌려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 연애는, 인간의 그러한 모습이 드러나는 몇 안되는 경로다.


연인이 되고, 결혼을 하는 것도 그러한 흐름과 과정 안에 있다. 두 사람이 연애를 하기로 하면 서로를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고, 상대가 자신이 원하는대로 반응하지 않기 시작하면 그 사람 안에 있는 또 다른 자아들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연애기간이 길어질수록 연애 초반에 보여줬던 것과 다른 모습을 상대에게 보이는 것은 자신에 대한 상대의 평가가 그로 인해 달라지지 않을 것을 신뢰함과 동시에 상대를 일종의 잡은 물고기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처럼 연애는 가족 외에 그 어떤 관계도 수면 위로 끌어올리지 못하는 자신과 상대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낸다. 연인의 공통된 지인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상대의 모습이 두 사람이 있을 때만 드러나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연애를 하는 과정에서 연인은 현재의 관점에서 상대에게 나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의지하기도 하고, 상대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깨를 대주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도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기도 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며, 자신이 편안함을 느끼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알게 된다. 물론, 두 사람이 건강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연애를 할 때 그렇다.


이처럼 연애는 현재의 관점에서는 기댈만한 신뢰할 수 있는 '내 편'을 선물해 주고, 내 자신을 발견함으로써 자신에게 더 맞는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이룰 것을 어느 정도는 이룬 상태에서 연애를 시작하게 되면, 연애는 이미 1순위가 될 수 없고 사람은 자신을 돌아볼 물리적인 여유가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 상태에서의 연애는 이기적이 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사람을 자신의 도구와 소유의 존재로 여기게 될 위험이 있다. 그건 그 사람이 악하고 나빠서가 아니라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몰라서 그러는 것이지만, 상대가 그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된단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이라도 현실에서 절대 양보해서는 안되는 요소들이 삶에 자리잡기 전에 연애를 시작해야 한다. 순수하게 감정만 보고 연애를 하고, 실수하고, 마음을 다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게 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사람을 보는 눈도 자연스럽게 길러진다. 그리고 그러한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도 더 다듬어지고, 자신과 더 잘 맞는 자신의 편이 되어 줄 사람도 더 잘 알아볼 수 있게 된다. 그러한 시행착오를 전혀 겪지 않고 처음부터 능수능란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연애는 나중에 하면 되고, 성취부터 이루라는 말을 여전히 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다. 성취는 언제, 어떻게 이뤄질 지 모르고 내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그 성취는 영원히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교육학적인 관점에서도 인간은 어렸을 때 더 많은 것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익히고 성장한다. 연애를 시작해도 되는 나이 같은 건 없다. 사람은 어렸을 때 상대적으로 더 순수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연애는 오히려 어릴 때 시작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연애야말로 조기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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