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잠
엄마는 원래 잠귀가 밝은 줄 알았다. 어린 시절, 바쁜 엄마가 주말에 낮잠을 주부실 때 잠이 깨기라도 할까 도둑고양이 발로 살금살금 지나 만가도 엄마는 어디가? 하며 맞아? 주었다. 여행 가는 차 안에서 삼 남매인 우리는 차 안에서 자는 잠이 좋았다. 차만 타면 잔다는 우리가 잠에 곯아떨어져도 운전하는 아빠 옆에 앉은 엄마는 항상 깨어 계셨다. 두런두런 아빠와 이야기를 하며 운전 내내 주무시질 않았다. 엄마는 잠이 안 오는 줄 알았다. 엄마는 잠귀가 정말 밝은 줄 알았다.
처음 마주한 아가는 아주 많이 잔다. 음 아주 흐뭇한 말이다. 헌데, 단지 밤에 길게 못 잔다. 아주 피곤이 밀려오는 말이다. 신생아 아가는 잠은 많이 자는데 밤을 모른다. 그래서 밤새도록 울 때가 있었다. 소위 낮과 밤이 바뀐 때. 우리 두찌에겐 이틀이 딱 그랬다.
아가, 네가 버텨봤자
이 엄마 체력이 더 강하지 않겠니
첫째 날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않았다. 새벽 두 시가 되지 잦아드는 울음에 새벽 세시에 잠에 들 수 있었다. 뭐,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안고 달래며 버텼다. 둘째 날, 설마 또 새벽까지 못 잘까? 새벽 세시가 지나고 네시가 되면서 동이 트는데 안 잔다. 이건 내 체력을 오버했다. 너무 힘들다는 생각에 지친 얼굴을 드니 후광이 비치는 남편의 모습이 보인다. 남편이 안고 조금 지나니 잔다. 나는 이미 그전에 잠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쾡해진 새벽의 얼굴은 별아이 등원 후 낮잠으로 생기를 되찾았다. 차츰 밤을 아는 건지 두찌도 길게 잠을 자 주었다.
내게 밤은 별이 깃든 새까만 남색이었다. 잠이 한번 들면 아침에 눈을 떴고 노는 거 빼고 새벽까지 공부하기가 힘들어 밤 12시까지만 공부하고 집중해서 잘하자는 나름의 철칙이 있었다. 대학교 4학년까지의 이 공부 법칙이 새벽 수유 앞에서는 잠에 대해서 논할 여지없이 무너졌다. 별아이가 태어나고 큰 침대를 사용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자다 행여나 뒤집을까 싶어 잠자다가도 더듬더듬 아이를 체크했고, 가끔 자다 열이 날 때가 있어 자면서 손이나 발을 꼭 체크하는 습관이 생겼다. 아이가 뒤척이기만 해도 잠이 깨는 건 당연해졌다. 그러면서 나의 밤은 옅은 군청색이 되었다. 언제든 깊은 잠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옅은 밤의 색.
백일이 지났는데 요즘에 다시 두 시간마다 깬다. 왜 깨는지 묻고 싶다. 근데 깨서 생글생글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같이 웃는다. 너무 졸려 눈이 뻑뻑해도 깊이 잠든 나의 자아를 한방에 꺼내어 잠에서 깨는 요령도 생겼다.
낮잠을 잘 때 별아이가 움직이기라도 하면 계속 깬다. 두찌의 움직임에도 말할 것도 없다. 잠을 든 건 맞는데 아이들의 모든 소리가 들리고 반응한다. 엄마, 어떻게 알았어요?? 세상 가장 밝은 잠귀는 엄마 귀다. 어느덧 내가 그렇게 되었다.
언젠가, 다 큰 성인이 되고 나서 조수석에서 머리가 흔들흔들 주무시는 엄마를 봤고, 깊은 낮잠에 내가 온 줄도 몰랐다는 엄마의 모습을 봤다. 처음엔 신기해서 물었다.
엄마, 엄마도 잠이 많아졌나 봐~
예전엔 조는 모습도 못 봤는데
엄마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다 했다. 아마 이젠 우리 삼 남매가 다 컸고 자면서 신경 써야 할 아이들이 더 이상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자 엄마의 흰머리가 눈에 더 띄고, 조금 많이 걸으면 힘들다는 소리가, 그리고 아이들의 할머니-!!라는 소리가 귓가에 더 속속 박힌다. 마음이 촉촉하다.
아이를 낳으면 삶의 가장 큰 변화는 잠이다. 다른 변화도 쌍벽을 이룰 만큼 크지만 가장 큰 변화는 잠으로 꼽고 싶다. 지금 많이 자두라고 혹은 지금의 통잠에 감사하라고 출산 전인 친구들에게 말한 적이 있다. 처음엔 너무너무 힘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몸에서 땀이 삐질삐질 흐른다. 하지만 엄마는 젖을 먹이기 위해, 아이를 체크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킨다. 참으로 신기하고 고마운 모습이다.
고요 속 잠든 아이들의 숨소리를 듣고 듣고 있노라면 피식 웃음이 난다. 이 짜식들아, 엄마가 너네를 이렇게 키우고 있어. 그니까 나중에 자라서 엄마한테 잘해라!?
나는 나의 딸들에게 생색을 내고 싶다.
엄마, 이렇게 힘들게 키운 거였으면
힘들었다고 생색을 좀 내지 그랬어!
우리 엄마는 안 그랬지만 난 생색내고 있다. 엄마도 힘들 수 있는 사람이고 오늘 아침은 너무 잠이 온다고 잠시만 쉬고 나가겠다 꼭 얘기해 준다. 그리고 한 번씩 엄마의 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네가 잠든 밤은 새까만 검은색이겠지만 엄마의 밤은 옅은 군청색이야.
새까만 밤이면 네가 열이 나는 건 아닌지 이불은 잘 덮고 있는 건지 이불에 지도를 그린 건 아닌 건지 알 수 없어 옅은 군청색이란다. 그래서 다 알 수 있지.
그러니 너는 그냥 푹 자면 돼.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고.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꿈을 꾸면서 그냥 여행하면 된단다. 그냥 그렇게 깊은 잠을 타고 무럭무럭 쑥쑥 자라렴.
이쁘고 깊은 미소를 짓는 별아이. 비록 내 밤은 오늘도 옅은 군청색의 밤이지만 아이들의 숨소리로 밤의 깊이는 더해진다. 오늘도 내일도 새벽을 깨는 엄마들에게 토닥토닥 고생한다 속삭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