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치는 마음'의 내시경적 소견

죽은 남편을 미워하며 사는 법

by 키튼

명치 통증은 외래에서 가장 흔한 주증상 중 하나다. 대개는 위염이나 식도염, 간혹 담석이나 췌장의 문제고 아주 드물게 위암이 발견되기도 한다. 반복되는 진료 속에서 환자를 하나의 패턴으로 대하게 되는 매너리즘을 경계하려 애쓰지만, 때로는 기계적인 검사로는 도저히 읽어낼 수 없는 마음의 병들을 마주하곤 한다.


몇 개월 전 만난 60대 여성 환자가 그랬다.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찾아온 그녀는 6개월 전에 내시경을 했음에도 재검사를 강력히 원했다. 의학적으로는 짧은 주기였으나, 본인의 간절함에 못 이겨 다시 내시경을 진행했다.화면에 비친 위벽은 예상보다 황폐했다. 울퉁불퉁하게 돋아난 미란성 위염과 하얗게 변성된 장상피화생.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기록이 무색할 만큼 그녀의 속은 짓물러 있었다.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으신가요? 술도 안 드시는데 염증이 너무 심하네요."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녀는 곁에 없는 남편의 험담을 쏟아냈다. 술만 마시고 속만 썩이던 양반이라며, 살아있는 사람을 흉보듯 생생하고 거칠게 말을 이어갔다. 당연히 남편이 집에 계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던 원망 끝에, 그녀는 툭 하고 한마디를 던졌다.


"그런데 그 양반, 얼마 전에 위암으로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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