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여행기- 3
나는 인간이 그린 그림과 인간이 지은 책과 음악, 건축물을 사랑했다. 자연? 보고 있으면 머릿속이 텅 비어버리는 것 같아요. 아무 생각도 안 난다고요. 한 선배 시인이 나를 향해 이렇게 일갈했던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이봐, 그런 말, 너무 부도덕하잖아.” 무슨 소린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 <오래 준비해 온 대답>, 김영하 지음 -
자연을 좋아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는 오랜 시간 대도시를 동경해 왔던 사람이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자연을 좋아할 거라는 것은 큰 착각이다. 도시에 백화점이 없고 영화관이 없으면 오히려 크고 좋은 문화시설이 있는 그곳을 더 선망하는 법이다.
처음 와이프가 로키에 가보고 싶다고 했을 때, 덜컥 겁부터 났다. 서울에서 잠깐 캠핑을 해봤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산속에 마련된 캠프장이었는데 밤에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로 인해 한숨도 못 잤다. 관리하시는 분께 여쭤보니 한 여름에도 전기장판은 원래 필수라고 하였다. 어떤 분은 텐트 내로 들어오는 이름 모를 벌레로 인해 고생하셨다고 하고, 캠프장에 밀려오는 엄청난 인파와 차량들로 인해 몸살 했던 기억이 있다.
나에게 자연은 통제가 불가능한 어떤 것이었다.
로키를 보기 전까지
로키 산맥은 캐나다와 미국을 걸쳐 형성되어 있는 거대한 산맥의 이름이고 내가 갔던 곳은 밴프와 재스퍼 국립공원이었다.(이하 로키) 렌터카를 해서 돌아다니기로 했는데. 밴프와 재스퍼 국립공원을 잇는 아이스필드라고 하는 도로가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국립공원이라고는 지리산 정도를 생각했던 나는 캐나다의 어마어마한 국립공원의 크기에 놀라버렸다. 아이스필드라는 도로는 길이만 300km 정도 대략 서울과 부산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렇게 긴 거리가 정말 입이 떡 벌어지는 풍경들로 빼곡하다. 처음에는 4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생각했던 여정이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고 산등성이에 올라가 보고 하는 과정에서 8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나중에는 너무 아름다운 풍경인데도 무감각해질 지경이었다.
그런데 하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점은, 내 기억 속에 로키의 풍경이 아주 오래오래 기억될 거라는 것이다. 자연이 주는 장엄함과 꾸밈없는 아름다움은 인간이 창조한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웠다.
조금 과장해서 아름다움에 대해 처음 배우는 것 같았다.
어떤 풍경은 그대로 한 인간의 가슴으로 들어와 맹장이나 발가락처럼 몸의 일부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가볍게 전해줄 수 없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다. 그런 풍경을 다시 보게 될 때, 우리 몸의 일부가 갑자기 격렬히 반응한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 <오래 준비해 온 대답>, 김영하 지음 -
가장 기억에 남는 풍경은 ‘모레인 호수’였다. 아마도 가장 많은 사람이 아름답다고 꼽는 로키의 절경이다. 산 위에서 올라가서 내려다본 호수의 빛깔은 에메랄드 그 자체였다. 사실 에메랄드 보다도 아름다웠다. 나는 앞으로 어떤 아름다운 것을 만날 때마다 모레인 호수를 떠올릴 것 같다. 자연을 좋아하는 것은 어떤 경외감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나보다 더 큰 존재에 대한 존경심 같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