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병원과 한국병원의 차이점
벌써 15년 전쯤 이야기이다.
어느 날 학교 선배님 중에 한 분이 특별강의로 학교를 방문했었다. 그분은 이번에 미국병원으로 레지던트를 하러 가시는 분이었는데 미국에서 레지던트를 하려면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는 강의였다. 사실 자세한 것은 기억나지 않고, 그분의 어떤 에너지 같은 것만 기억난다.
참 당당하고 멋졌다.
당시 나는 한국어로 된 의대강의를 따라가는 것도 버거웠던 터라 미국레지던트는 머나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분의 어떤 에너지가 마음 한켠 어딘가에 있었던 것 같았다. 한국에서 인턴, 레지던트, 군의관, 펠로우, 봉직의까지 할 동안 그 궁금증은 계속되었다. 미국 의사들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식으로 일을 할까?
그 시간 동안 나는 USMLE라고 하는 미국의사시험에 응시하였고, 감사하게도 미국병원을 1달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흔히 옵서버쉽이라고 하는 프로그램인데, 한 달간 병원 의국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서 그들이 하는 술기, 차팅 하는 것, 컨설트를 보는 것 등을 곁에서 지켜보고 관찰할 수 있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건대, 여행을 제외하고 공부를 목적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한국에서 처음 의대생이 되어서 병원에서 실습할 때도 뒤숭숭함에 잠 못 이루었는데, 미국에 병원을 방문하는 전날 긴장이 돼서 한숨도 못 잤다.
<한국과 미국 병원의 차이점>
첫 번째 놀라왔던 점은 호칭의 문제였다. 처음에 펠로우 삼 년 차라고 소개한 크리스틴이 자기를 소개하고 주변 사람들을 소개하였다.
한국에서는 서로 이름보다는 직급을 부르거나 ‘선생님’이라고 서로 부른다. 어떨 때는 서로 이름을 안 불러서 그 사람 이름이 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전공의끼리도 친하지 않은 사이는 ‘선생님’이라고 서로 부르고 같이 일 관련된 이야기만 할 때가 대부분이니까. 이 부분이 좀 힘들었다. 이름을 알고 싶다면 명찰을 유심히 보면 된다. (아주 큼지막하게 프린팅 되어 있다) 하지만 내가 발음하는 것이 맞는지 확신이 없을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나에게 병원 여러 가지를 설명해 주셨던 Syed 교수 같은 경우, 처음에 ‘시드’ 교수님이라고 잘못 이야기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창피하다) 알고 보니 ”싸이에드“라고 부르는 게 맞았고, 내가 당황할까 봐 아무 내색 안 하고 모두 받아주셨던 천사 같은 교수님이셨다. 아무튼 1달 동안 레지던트, 교수님 이름에 조금 익숙해질 때가 되니 벌써 작별할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서로 이름을 불러주는 문화는 참 멋진 것 같다. 처음에 진입장벽이 높아서 힘들었는데, 사실 일종의 우정테스트 같다고 해야 하나?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자신의 이름을 잘 발음하기 위해 연습해 주고 발을 걸어주는 행위는 매우 중요한 의식 같았다.
두 번째로 놀라운 점은 수평한 문화였다. 사실 자신을 누구라고 소개하지 않으면 그냥 모두 ‘닥터들’이었고, 서로 스스럼없이 환자에 대해 토론하고 의견을 교환했다. 물론 우리나라도 환자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지만, 그 과정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전공의가 교수님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거의 없고 대부분 교수님의 의견을 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의대생도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곤 한다. 하나 또 놀란 것은 의대생이 술기하고 있는 교수님께 궁금한 게 무언지 질문하는 것이었는데, 이것도 한국과 상당히 다른 장면이었다. 사실 나는 실습 때 교수님께 질문을 한 게 손에 꼽는다. 교수님들은 너무너무 바쁘실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의대생의 질문에 상당히 자세히 설명해 주시고 반기는 분위기이다.
세 번째는 철저하게 각자의 역할이 나눠져 있는 것. 이것도 참 부러운 부분 중에 하나였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위대장 내시경을 하려고 하면 마취과 선생님들과 협업하기보다는 의사가 마취약도 주고 내시경간호사가 내시경도 보조하고 보조 후 수면관리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서는 마취를 하는 간호사 혹은 의사, 마취 기록을 하는 간호사, 내시경만 전문적으로 보조하는 테크니션, 내시경을 보조하는 간호사, 시술하는 의사, 마취가 끝난 다음에는 잠에서 깰 때까지 그것을 지켜보는 간호사가 붙는다. 한 명의 환자에게 6명 정도의 의료인 붙게 되니 왜 의료비가 그렇게 비쌀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실제로 한 환자가 자신이 위내시경을 받는데 2000불(300만 원 정도) 정도 지불 하였다고 하였더니, 여기서 또 사회복지사를 연결해 준다고 해서 놀라웠다.
네 번째는 첨단을 달리는 전자차팅(EMR) 시스템이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겠지만, 미국의사들은 차팅을 정말 열심히 한다. 소송의 나라여서 그런지, 정말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차팅을 하는데 쏟아붓는 것 같았다. 특히 이곳의 EMR은 epic이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이었는데, 핸드폰을 비롯한 모든 IT 기기에서 접근이 가능했고, 핸드폰에 연동하고 목소리를 녹음하면 그대로 타이핑이 돼서 입력된다. 또 하나 궁금했던 것은 위내시경을 어떻게 차팅 하냐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대부분 장문의 글로 입력한다. 가령 ”위 전정부 소만에 타원형의 깨끗한 경계의 궤양 흔적“ 이런 식으로 기술하는데 미국 병원에서는 거의 타이핑은 하지 않고, 자신이 실제로 관찰한 병변의 부위를 그림에 클릭해서 입력한다. 그 외에도 모두 클릭이다. 폴립의 유무 ‘클릭’, 폴립이 있으면 어떤 형태인지 ‘클릭’. 폴립이 몇 mm 정도였는지 ‘클릭’. 몇 개월 있다 다시 볼건지 ‘클릭’ 이렇게 클릭해서 입력하면 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이송을 갔어도 의사들끼리 소통이 훨씬 원활할 것만 같았다. EMR을 표준화하고 접근성을 높이고 어떻게 쉽게 공유할게 할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들이 엿보였다. (우리나라는 작은 병원까지도 모두 전자차팅이 되어 있으나, 그렇지 않은 나라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인도에서 온 옵서버는 자신의 병원에서는 아직 전자차팅이 안 돼서 모두 수기 차팅을 하는 데, 전자 차팅을 보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하다고 했다.)
다섯 번째는 확연히 차이나는 질병군의 차이였다. 한국에서는 헬리코박터균의 유병률은 상당해서 위내시경을 하고 있으면 헬리코박터 위염을 상당히 많이 관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위암의 유병률도 상당한 반면 미국은 위암보다는 대장암과 지방간염으로 인한 간암의 유병률이 높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희귀 질환인 염증성대장염도 미국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어서 담당하는 교수님이 따로 존재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간이식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기증받는 형식(living donor)으로 하는 게 많은 반면 미국은 사체이식(deceased donor)도 활발하게 진행된다고 설명을 들었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