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소스와 마음가짐
아쉽게도, 책을 받아쓰는 것만으로는 UWorld 문제(USMLE 문제은행)를 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책 속의 개념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로베이스의 학생들에게는 그대로 따라 써보는 방식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저처럼 시간이 충분히 많은 상황이라면 말이죠.)
어떤 분야든, 저는 그 분야에서 자주 쓰는 어휘를 익히는 것이 가장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필사를 통해 깊은 이해를 얻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공부해야 할 분량의 범위와 집중해야 할 개념들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함정 군의관으로 1년을 보내고 나서, 드디어 육상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함정 군의관의 근무 환경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육상 근무와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가능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사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는 시점도 이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제가 저질렀던 큰 실수 하나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USMLE를 한국어로 공부할 생각은 하지 마세요.
미국 의사 시험을 한국어로 준비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황당해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시작할 때 저는 한국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었답니다. 학교 다닐 때 쓰던 교과서들을 꺼내 뒤적이며 공부를 했었죠. 하지만 그 교과서들조차 대부분 원서를 번역한 것이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현재는 쓰이지 않는 개념들로 가득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국어로 공부했던 그 모든 시간은 헛수고에 가까웠습니다.
사실 USMLE 관련 영어 강의들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듣기라곤 수능 영어 듣기 연습밖에 안 해본 저도 어렵지 않게 알아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만약 강의를 듣기 어려우시다면, YouTube에서 제공하는 영어 자동 자막 기능을 활용해 보세요. 자막과 함께 본다면 훨씬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USMLE 공부의 첫 단계는 ‘영어 강의와 친해지기’입니다.
언어 공부에서 아웃풋(말하기, 쓰기) 못지않게 인풋(읽기, 듣기)도 중요합니다. 억지로 인풋 양을 늘리려고 하기보다는 강의에서부터 시작해 보세요. USMLE 강의에서 사용되는 영어는 대부분 표준 영어에 가깝고, 어휘 역시 의과대학에서 배웠던 의학 용어가 많기 때문에 약 80-90%는 대충 어떤 내용을 말하는지 유추할 수 있을 겁니다. (영화에서 등장인물 간의 대화처럼 복잡하고 비격식적인 영어와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가능하다면 Step 시험 준비 단계부터 전화 영어를 시작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이는 OET 스피킹 시험에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영어 강의를 망설였던 이유는 저의 영어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완전히 극복한 것은 아니지만요. 미국 의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영어 강의를 듣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죠.(이 영어 콤플렉스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도움이 되었던 사이트들을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1. 스케치(Sketchy)[https://www.sketchy.com/]
기억의 방이라는 암기법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암기력 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는 고수들은 자신만의 기억의 방에서 정보를 인출하는 방식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의대 공부의 양은 실로 방대해서 암기력 대회와 비교해도 결코 만만치 않은 수준입니다. 특히 미생물학과 병리학의 암기 분량은 상상을 초월하는데요.
이때 제가 정말 큰 도움을 받았던 것이 바로 Sketchy라는 사이트였습니다.
기억의 방이라는 게 별다른 것은 아닙니다. 의미가 없는 단어들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방식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포도알균(Staphylococcus aureus)**을 외운다고 하면, 그람 양성 균, catalase 양성, coagulase 양성이라는 특징을 암기해야 하는데요. Sketchy에서는 이를 돕기 위해 파란 바탕에 붉은 강 위의 고양이가 있는 그림을 제공합니다.
파란색은 그람 양성, 고양이는 ‘cat’alase, 붉은 강은 Coagulase를 상징합니다. 이렇게 단순히 외우기 어려운 개념들을 시각적으로 연결해 주는 암기 자료를 무궁무진하게 제공하는 사이트입니다.
이런 자료들 덕분에 시험을 본 지 거의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암기에 대한 스트레스를 현저히 낮춰줍니다. 정말 억지스러운 이야기와 말도 안 되는 설정에 헛웃음이 나다가도, 중요한 내용들이 자연스럽게 외워져 있더군요. 강력 추천합니다.
2. 앙키(https://apps.ankiweb.net/)
**앙키(Anki)**는 일본인 개발자가 만든 어플로, 원래는 어학 공부용으로 제작된 암기 어플입니다. 이름에서 눈치채셨겠지만, 암기의 일본어 발음이 바로 앙키입니다. 이 어플은 화면에 암기해야 할 개념이 뜨고, 사용자가 그 개념을 알고 있는지 아닌지를 체크하면, 일정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리마인드를 시켜주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특히 앙키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USMLE 카테고리가 따로 있고, 방대한 양의 카드들이 이미 생성되어 있어서, 이 카드들만 잘 활용해도 엄청난 양을 암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효용이 크지 않았던 이유는, 제 백그라운드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카드를 보니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답답하고 괴로워서 손이 잘 가지 않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의대에서는 교수님의 수업을 듣지 않고 앙키 카드만 보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을 정도로, 앙키는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도구입니다. 실제로, USMLE에서 470점 이상의 고득점자가 하루 종일 앙키로 공부했다는 인터뷰 영상도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미 생성된 카드가 부담스럽다면, 직접 카드를 만들어 사용하는 방법도 추천드립니다. 출퇴근 시간이나 잠깐의 빈 시간에 리마인드 하고 공부하기에 이만큼 좋은 어플은 없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3. Divine intervention podcast
말 그대로 그냥 팟캐스트입니다. 그리고 100% 무료입니다. 제가 왜 이 소스를 Step 2 CK 시험 중간에야 알았을까 후회될 정도로 정말 훌륭한 자료입니다.
이 팟캐스트의 호스트는 존스홉킨스를 졸업하고 현재 영상의학과 전문의로 활동 중인 Divine Igwike라는 분입니다. CK 때 큰 도움을 받았지만, Step 1 시험 때부터 이용했더라면 훨씬 좋았겠다 싶더군요. 미국에서는 자가용을 타고 이동해야 하는 시간이 길어서 유튜브보다 팟캐스트 시장이 더 발달했다고 하죠. 팟캐스트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강의들은 수준이 너무 높아서 돈을 내지 않는 것이 미안할 정도입니다.
이 호스트분께서 따로 교재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열정적인 추종자들이 강연 내용을 정리한 강연록을 만들어 배포할 정도로 팬덤이 대단합니다. 저 역시 기회가 된다면 꼭 만나서 사인이라도 받고 싶을 정도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미국 의대생들은 앙키(Anki), Divine Intervention Podcast, 그리고 문제은행 UWorld 정도로 USMLE를 가볍게 준비하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4.Uworld
First Aid와 함께, UWorld는 USMLE 준비의 영원한 동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UWorld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소개했던 사이트와 공부 도구들은 모두 이 UWorld 문제와 답안 해설을 원활하게 이해하기 위한 기반을 다지는 도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UWorld 문제는 쉽지 않습니다. 체감상 실제 시험보다 조금 더 어렵거나 비슷한 수준으로 느껴집니다. 문제를 풀 때는 시간을 꼭 정해놓고 푸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저는 하루에 풀 문제 수를 미리 정하고, 시간을 제한하여 문제를 푼 뒤, 일을 하는 중간중간에 답안을 다시 보고 리마인드하는 방식으로 공부했습니다.
5. 결국, First Aid
공부법에는 여러 가지 차이가 있겠지만, 시험이 가까워질수록 문제를 더 많이 풀기보다는 First Aid를 주의 깊게 보고 여러 번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분들이 그렇겠지만, 저도 함정 근무 중에 뜻도 모르고 필사했던 내용들이 2독 때는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관계성과 의미가 보이기 시작했죠.
이런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며 무작정 밀어 넣었던 어휘들이, 그제서야 서로의 관계 속에서 생생하게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의과대학에서는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지나치게 많은 양의 시험과 압박감 속에서 항상 스스로를 무능하다 자책하기 바빴으니까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생화학이 진심 재미있게 느껴지고, 약과 질병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HIV 바이러스가 증식하는 방식을 공부하면서 이를 타깃으로 하는 약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게 된다든지, gluconeogenesis를 배우며 각 단계에서 파생되는 유전병들을 이해하는 과정 같은 것이었죠.
시험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앞으로 임상의로서 지속적으로 공부하며 살아가야 할 텐데, 그 새로운 지식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만들어진 느낌이었습니다.
**First Aid는 Step 1에서만 자세히 보시길 권합니다.
Step 2 CK에서는 First Aid가 그다지 좋은 교재가 되지 못합니다. 이유는 Step 2 CK에서 실제로 풀어야 할 문제와 First Aid에 소개된 기본 개념 사이의 간극이 크기 때문입니다. Step 1에서는 First Aid가 훌륭한 지침서 역할을 하지만, Step 2 CK 준비에서는 다른 자료를 활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6. 사설 유료 강의
Step 1 시험 준비를 시작하면서 NBME 모의고사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한없이 절망에 빠졌습니다. UWorld와 First Aid를 열심히 공부했다고 생각했지만, NBME의 문제들은 또다시 새롭고 어렵게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NBME 점수가 실제 점수와 유사하다는 것이 암암리에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물론 NBME의 문제 수가 훨씬 적지만, 시험을 출제하는 기관이 같고 출제 경향도 비슷하기 때문이죠.
이때 점수가 썩 좋지 않았던 저는 유튜브에서 한 사설 강의를 듣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NBME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아 고민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제가 들은 강의는 Amir Mullick이라는 인도계 미국인이 진행하는 것으로, NBME 모의고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해 주는 내용이었습니다. Step 1 강의는 무료로 제공되어 참 좋았는데, 현재는 유료로 전환되었습니다. Step 1 강의는 매우 유익했지만, 솔직히 CK 강의는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Amir의 NBME 모의고사 해설 정도는 결제해서 들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점수가 잘 나오지 않는 분들에 한해서요.) 혹시 이분과 연락을 원하시는 분들은 usmle.live2018@gmail.com으로 메일을 보내시면 답변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7. Medicosis Perfectionalis (YouTube) [https://www.youtube.com/@MedicosisPerfectionalis]
그 외에도 정말 많은 소스들이 존재합니다. 앞서 언급한 것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USMLE 준비에는 YouTube에서 질병별로 잘 정리된 비디오들이 큰 도움이 됩니다. Osmosis 같은 채널도 보기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유익했던 비디오는 Medicosis Perfectionalis라는 유튜브 채널입니다.
이 채널의 호스트는 약간 악센트 있는 영어를 구사하시지만, 듣는 데 큰 무리는 없습니다. (알아보니 이집트 분이신 것 같더군요.) 이 분은 아이패드를 사용해 직접 그림을 그리며 강의하는데, 설명이 매우 쉽게 이해되고 그림도 훌륭합니다. USMLE를 준비하며 "세상에 이렇게 다재다능한 의사들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 채널은 각각 system별로 강의를 올려놓았기 때문에 쭉 따라 들으셔도 좋지만, 저는 특히 First Aid에서 이해가 잘 안 되는 개념이나 UWorld 문제를 리뷰할 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을 때 참고하기를 추천드립니다.
8. 그 외 소소한 팁들
1) Step 1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지 마세요
본의 아니게 저는 Step 1 시험을 군의관 시절 내내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변명을 하자면, USMLE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업무와 동료 군의관들과의 친목도 어느 정도 필요했으니까요. (친목이라고 해봤자 술 모임이 대부분이었지만요.) 반면, 미국으로 가겠다는 명확한 동기를 가진 선생님들은 1년에 하나씩 시험을 패스하여 군의관 3년 차쯤 되면 인터뷰 요청을 받고 취직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지금은 2022년부터 Step 1 시험이 Pass/Fail로 바뀌었죠. 저는 2019년에 시험을 봤던 터라, Step 1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던 시기에 준비를 했습니다. 또한, 과거에는 미국에 가서 봐야 했던 Step 2 CS 시험이 이제는 OET로 대체되어 미국 레지던트 지원이 훨씬 용이해졌습니다.
다만, Step 1과 Step 2 CS라는 두 관문이 낮아지면서, **USCE(미국 임상 경험)**와 미국 의사의 추천서가 더욱 중요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IMG(국제 의과대학 졸업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환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결론적으로, 지나고 보니 Step 1 시험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았던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Step 1을 빠르게 합격하고 CK 준비와 더불어 USCE를 쌓을 준비를 시작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2) First Aid의 뒷면에 나오는 소스들도 놓치지 마세요
First Aid 뒷면에는 유용한 어플, 사이트, 책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런 자료들을 보면 미국 사회가 얼마나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의과대학에 다닐 때는 대학 앞 복사집이 정보의 중심지였습니다. 족보나 요약 자료를 통해 시험에 필요한 최소한의 내용을 외우는 식으로 공부했죠. 적은 자료로 최대한 효율을 내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USMLE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 시험은 무한에 가까운 자료를 제공합니다. 공부할 기회와 도구는 충분히 주지만, 철저히 스스로 이해하고 기본기를 다져야만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족보를 암기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USMLE는 방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깊이 있는 학습을 요구하는 시험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