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와 마늘 한 상자

종양 내과 의사의 업(業)

by 키튼

혈액종양내과를 돌던 전공의 시절, 유독 기억에 남는 은사님이 있다. 그분은 교수이기 이전에, 한때 위암을 겪었던 사람이었다.

위전절제술을 받아 위가 없는 탓인지, 늘 깡마른 체구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 듯한 날카로운 인상이셨다. 레지던트들 사이에서도 악명이 높았다. 환자에게 불필요한 피검사를 하거나 소변줄이라도 함부로 끼우는 날에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누가 피 뽑으랬어? 이 검사, 꼭 필요한 근거가 있나? "


어쩌면 본인이 암 환자로서 겪은 고통이 있었기에, 환자의 불편함을 당신의 일처럼 예민하게 받아들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환자에게는 더없이 인간적인 의사였지만, 배우는 우리 입장에서는 숨 막히게 까다로운 스승이었다. 하지만 그 깐깐함 뒤에 숨겨진 진정성 때문에, 나는 가슴 한편으로 그분을 깊이 존경하고 있었다.




그 교수님께는 20년 지기 환자가 한 분 계셨다.

교수님이 위암 수술을 받을 때, 같은 교수에게 수술을 받았던, 말하자면 ‘환자 동기’ 같은 할머니였다. 그 인연으로 할머니는 20년 동안이나 굳이 먼 대학병원까지 찾아와 교수님께 진료를 보셨다. 사실 혈액종양내과에서 당뇨약을 처방받는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 집 근처 내과를 가셔도 될 법한데, 할머니는 "나는 교수님만 믿는다"며 그 먼 길을 오가셨던 것이다. 교수님 역시 그런 할머니를 마다하지 않고 20년을 한결같이 살피셨다.

그러던 어느 날, 사단이 났다.


할머니의 당뇨 조절이 안 되고 살이 계속 빠지기 시작했다. 평소 불필요한 검사를 극도로 싫어하시던 교수님은, 이번에도 환자가 힘들까 봐 침습적인 검사를 미루고 경과를 지켜보셨던 것 같다. 하지만 그 판단은 뼈아픈 실책이 되었다. 검사 결과는 췌장암. 이미 수술 시기를 놓쳤고, 주변 장기로 전이까지 된 상태였다. 20년 전 위암을 이겨낸 분에게 또다시 찾아온 암, 그리고 그걸 가장 믿었던 주치의가 놓쳤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할머니는 입원하셨고, 상태는 빠르게 나빠졌다.


내가 선생님을 얼마나 믿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할머니와 보호자들의 원망은 거셌다.

지금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때 교수님은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의학적 판단의 근거도 있었고, 결과만 놓고 책임을 전부 떠안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변명이라 불릴지언정 설명은 가능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은 환자와 보호자들의 비난을 묵묵히 들었다. 특별히 자신을 변호하지도, 구차하게 반복해서 사과하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듣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할머니의 힐난이 유독 거세던 날이었다. 회진을 마치고 교수님이 교수실로 향하시다, 나를 불러 함께 들어갔다. 말없는 방 안에서 교수님은 주섬주섬 LP 한 장을 꺼내 오디오에 올리셨고,

잠시 뒤, 판이 돌아가며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말러였다.


우리는 말 한마디 없이 30분 동안 그 음악을 들었다. 웅장하면서도 비가 섞인 선율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마치 산 자를 위한 '레퀴엠'처럼 들렸다.

음악과 함께 시간을 견디는 교수님의 뒷모습은 유난히 고독해 보였다.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감정을 설명하지도 않은 채 침잠하는 모습.

그것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태도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허용한 유일한 애도의 방식 같았다.




시간이 흘러 할머니는 끝내 세상을 떠나셨다.

장례 절차가 모두 끝난 뒤, 보호자분이 병동으로 찾아왔다. 짐짓 덤덤한 표정의 보호자는 나에게 마늘 한 상자를 건네셨다.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묵직한 마늘 상자를 받아 드는데, 그제야 비로소 모든 것이 끝났다는 실감이 났다. 그 마늘은 뒤늦은 용서였을까, 아니면 슬픔을 갈무리하는 그들만의 방식이었을까.


그 교수님은 '의사'라는 직업을 수행(修行)의 영역에 가깝게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같은 의사라 해도 각자의 방식이 있다. 어떤 이는 기술자로, 어떤 이는 사업가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분은 적어도 내가 만났던 의사들 중에서 가장 수행자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인상 깊게 남았다.

능숙해서가 아니라, 설명을 잘해서가 아니라, 묵묵하게 책임을 견디는 그 방식 때문에.


말러의 선율 속에 침묵으로 삭히던 그 무거운 등을, 나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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