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까미노 27. 아르까데 ~ 바로스
• 구간 : #아르까데 Arcade ~ #바로스 Barros ~
• 거리 : 22.8km
• 난이도 : ★★★☆☆
• 숙소 : Albergue de A Portela (8유로)
+ 0km, @Arcade 아르까데
전날 저녁 #까미노루트 와 다른 방향에 있는 사설 알베르게에서 잔 터라 배낭 메고 문을 나서며 잠시 고민한다.
길을 거슬러 내려가 원래 분기점까지 갈 건가, 아님 이 길로 국도를 따라 산으로 걷다가 까미노와 만나는 지점으로 합류할 건가.
다시 돌아가는 건 왠지 싫고... 결국 알베르게에서 산으로 곧장 가기로 결정.
가뜩이나 높은 곳에 자리잡은 동네였으니 산으로 향해갈수록 동네 전체 풍경이 시야 가득 들어온다.
그러다 세메터리가 나오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어느덧 마을 경계에 도착했다는걸.
세메터리를 뒤로하고 국도를 따라 직진하다 보면
익숙한 #까미노표지 가 다시 등장하고, 눈앞에 이렇게 산이 펼쳐지면 역시 자연스레 짐작하게 된다.
'곧 또 저 산을 넘겠구나.'
지금껏 국도 따라 직진만 하다가 산기슭으로 난 좁은 길로 진로 급변경.
순례자가 늘어나며 점점 지방 재정이 살찌고 있는 #갈리시아 아니랄까봐, 길폭은 좁으나 입구부터 예쁜 박석이 조밀하게 깔려 있다.
박석이 깔린 길을 따라 기슭으로 채 100미터도 내려가지 않아
전형적으로 예쁜 갈리시아 숲길.
자연스럽게 낀 이끼와 담쟁이덩굴마저 갈리시아스럽게 예쁘다.
숲이 깊고 예쁘지만 비가 잦은 갈리시아.
진득한 진흙을 밟을 세라 마른 바위 곳곳을 딛으며 올라가는데 조용하던 숲길에서 작은 소란이 인다.
돌아보니
세상에. 이 바윗길로 자전거를 끌고 올라오는 영국 아줌마들.
자전거 순례자와 도보 순례자의 길은 엄연히 다르다. 마을길, 국도변, 들길은 대부분 함께 걷지만 산 언저리에서 자전거 루트는 거의 국도를 따라가게 된다.
근데 입구에 깔린 박석이 편해서였을까. 대체 무슨 용기로 깊은 곳까지 자전거를 끌고 올라온 걸까.
낑낑대며 올라오는 통에 앞에 서 있던 나는 젤 앞 아줌마 자전거를 끌어 당기고, 뒤에 있던 사람들 역시 손 닿는 대로 밀고 땡기며 도와준다.
사람들 도움으로 겨우 올라와 놓고서 제대로 인사도 않고 사라지는 아줌마들.
뜬금없이 이런 스페인 산골짝에서 영국 국격에 대해 생각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며칠 뒤 산티아고에서 벤을 만나 이날 에피소드를 얘기했더니 겸연쩍어하며 벤이 대신 사과했다. ㅋ
그렇게 한참 산기슭 바윗길을 따라 오르면
시야가 확 트이는 능선에 닿는다.
갈리시아 전통 코스튬(아마도 개량했을)을 차려입고 산 중턱에서 과일과 음료, 빵 등 주전부리 파는 아주머니.
아마 앞으로 이런 곳은 점점 늘 것이다.
능선을 따라 정상 언저리에 닿으면 자전거 순례자와 도보 순례자가 함께 걷는 길.
그리 높진 않으나 정상에 닿았으니 남은 건 다시 내리막.
아침이 밝고,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이 많다.
먼 거리를 걸어왔을 순례자들. 혹은 #포르투갈 #포르토 에서부터 여정을 시작했을 순례자들. 더러는 #포르투갈국경 지나 #스페인 첫마을 #뚜이 에서부터 걸었을 순례자, 그리고 배낭 없이 피크닉 차림으로 가뿐하게 걷는 스페인 사람들.
산티아고에 가까울 수록 많은 사람들과 걷게 되는 길에서 새삼 깨닫는다. #리스본 에서 포르투갈길을 처음 시작할 땐 서른 명이 넘는 포르투갈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걸었고, 그들과 헤어지고서도 배경처럼 존재했던 많은 사람들 덕에 항상 익숙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수다떨며 걸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며칠째 혼자 걷고 있었다.
예쁜 길을 오롯이 즐기지 못한 채 아침부터 터덜터덜했던 건 며칠째 익숙한 사람들에게서 고립된 소외감, 아니면 외로움류 때문이었을까. 혼자 걷는 시간이 많아질 수록 당연히 잡생각은 깊어지고, 이런저런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다 어느 순간 뇌가 멈추자 그제서야 어느새 다시 텅 비어버린 길이 보인다.
"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알아버렸네
이미 그대 떠난 후라는 걸
나는 혼자 걷고 있던 거지
갑자기 바람이 차가워 지네.
"
흥얼흥얼. 찬바람 부는 계절은 아니었지만, 일차원적으로 일치하는 노랫말을 혼자 흥얼흥얼.
그러다 문득 또 생각한다.
김창완 아저씨가 노래했던 그 길이. 어쩌면 그냥 길이 아니라 그의 삶일 수도 있겠다.
이십날이 지나도록 터벅거리며 걷고 있는 길. 이베리아 반도 서쪽을 관통하며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연결하는 그냥 땅덩이 말고, 그 땅을 밟고 걷는 나와 그리고 이순간 #포르투갈루트 를 걷고 있는 모두들의 삶일 수도 있겠다 싶다.
점점 뜨거워지는 초여름 스페인 땅에서, 늦가을 한국 감성을 깨닫는 아이러니.
지금껏 예사로 흘려듣던 노랫말이 왜 갑자기 묵직하게 누르는 걸까.
10시도 되지 않은 이른 아침치고는 감정이 많이 나갔다.
혼자 외롭다 외롭다 몸서리치던 참이어서 그런 걸까.
부쩍 가까워진 산티아고를 알리는 길바닥 낙서보다 저어기 멀리 어렴풋 보이는 두사람 실루엣이 더 반갑다.
그러다 그들과 거리가 바짝 좁혀지자 왠지 낯익은 듯한 뒷모습...
조심스레 불러본다.
"신시아?"
그녀가 돌아본다...
돌아본다.
돌아보곤 웃는다.
웃는다 활짝.
신시아와 마르티나.
포르투갈에서, 아마도 #포르토 지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을까. 끓는 태양을 고스란히 쬐며 산을 오르다 만난 이태리 사람들.
익숙한 얼굴 가득 웃음지으며 돌아보는 모습에 오전 내내 궁시렁거렸던 외로움 내지 소외감이랄까 그런 류의 맘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걷는다.
길이 다시 예뻐보이고,
왠지 발걸음도 가벼워진 듯 하고,
이날 처음 만난 바bar 표지 앞에서 깨발랄도 떨며 함께 걷는다.
어쩌면 나는, 내 생각만큼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닐 지도 모르겠다, 싶다.
세상 모르는 게 많은 나는 스스로에 대해서도 그리 잘 알지는 못 하나보다, 깨닫는다.
드디어 #첫바 에서 #브런치
20여분 앉아 수다떨다 나와 다시 걷는다.
+ 8.8km, @Opción río Gafos 오피시온 리오 가포스
바에서 얼마 걷지 않아 곧 갈림길이다.
이날따라 유독 지도 없이 화살표만 곁눈질하며 걷던 나는 신시아와 마르티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융통성 없이 그냥 국도를 따라 직진했을 것이다.
하지만 둘을 만난 덕에 #얼터너티브루트 로.
#폰테베드라 라는 대도시가 다음 기점인데 얼터너티브 코스가 1km쯤 더 길지만 둘을 따라간다.
시작부터 길바닥에 누운 나뭇가지 아래를 림보하듯 지나고,
나무가 햇빛을 충분히 가려주는 기분좋은 길.
바로 옆이 국도변이란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나무가 많다.
수량 풍부한 물길(동네 이름에 나온 그 리오 가포스, 가포스 강이다.)을 따라가며
학교에서 배웠던 이태리가곡도 함께 부르며 제대로 힐링.
이때쯤 내게는 사람이 절실했던 게 맞았나보다.
한시간여 가볍게 산책하듯 기분좋게 숲길을 걷다가 강이 끝나는 지점 가까이쯤 왔을 때,
팔자좋게 물에 발 담그고 앉은 사람들.
더운 날 이렇게 예쁜 곳에서 쉬어가는 여유를 누리려고 일부러 3개월 가득 채워 유럽에 있기로 했는데 왜 내게는 이런 여유가 생기지 않았던 걸까. 무슨 강박처럼 걷는 내내 '여유'를 생각했지만, 막상 걷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걸음이 빨라졌다. 누가 빨리 걸으라 떠민양, 마치 속도를 갱신해야하는 사람마냥 잠시 앉아 쉴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배낭 내려두고, 아예 신발과 양말까지 벗어제끼고 발 담그고 앉은 사람들을 부럽게 쳐다보며 다시 걷는다.
하지만 이전 보다는 조금 느린 속도로.
그리고 인근 바에서 잠시 쉬어가겠다는 신시아와 마르티나와는 다시 손흔들어 인사하곤 헤어졌다.
*
추석 연휴 전, 페이스북 개인 포스팅에 신시아가 댓글을 달았는데 12월에 딸을 낳는다고.
축하와 더불어 놀라하며 결혼한 줄 몰랐다고 했더니, 우리가 까미노에서 만났을 땐 남친과 썸타던 시기라 아무 것도 확실하지 않았다고. 그러면서 자기'도' 결혼했으니 세상 모든 여자들이 연애를 포기해선 안 된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이모티콘으로. ㅋ
신시아, 마르티나와 헤어질 때쯤 가까이 다가온 노커플.
영국에 살면서 1년에 한두어차례 걸으러 온다는 스페인 할배-영국 할매 커플과 잠시 얘기하며 천천히 걷다보니 곧 도시 언저리.
4km나 이어진다는 #얼터너티브구간 숲길이 벌써 끝났다.
사진 돌벽 왼쪽 끝에 얼핏 보이는 붉은 지붕이 #폰테베드라 #공식알베르게 건물이다.
#폰테베드라알베르게 담벼락.
도시 시작 지점에 있어서 순례자가 접근하기에 딱 좋은 위치지만 벌써 들어가기엔 너무 이른 시각.
그리고 걸은 거리가 고작 12km 남짓.
역시 멈추기엔 너무 일러 지나치기로 한다.
불과 열흘쯤 뒤,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이 알베르게에서 자게 될 줄은 까맣게 모르고.
알베르게 바로 옆건물이 #폰테베드라기차역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에 부쩍 가깝고, 큰 도시여서 역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제법 많지만 쏟아지는 햇볕에 지레 지쳐 역시 슬쩍 보고만 지나친다.
이렇게 큰길을 두고
바로 한블럭 아래 골목길로 이어지는 #노란화살표 .
공식알베르게가 도시 초입에 들어선 터라 도심에서 가까운 곳으로 사립 알베르게들이 많이 들어섰다.
구도심 가까운 곳에는 호텔이나 호스텔, 값비싼 사설 알베르게가 많은데 반해 이 골목 알베르게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대부분 신설이어서 시설도 깨끗한 편.
신도심을 지나, 구도심을 향해 걷는다.
공사중인 골목을 지나 직진에 직진,
구도심을 향해 다시 직진.
#폰테베드라 는 정말 큰 도시다.
드디어 구도심 광장에 접근.
광장 가장 좋은 곳에 자리한 듯한 프란치스코 수도원.
너무 큰 도시여서 그냥 지나치기엔 아쉬워 잠시 속도를 멈췄다.
도시 곳곳을 어슬렁거리며 차를 마시고, 거리에서 혼자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의 음악을 들으며 한참 앉아 있었더니 어느덧 점심시간을 나 해가 정면에서 내리쬐는 시각.
이런 더위에서 다시 걷기는 힘들 것 같아 이곳에서 멈출까, 생각했으나 구도심 알베르게와 호스텔은 모두 Full.
그렇다고 공립 알베르게로 가려면 왔던 길을 2km나 되돌아가야하니 그것도 못할 노릇...
다시 걷기로 한다.
도심 중간을 흐르는 레레즈 강 Río Lérez 으로 안내하는 화살표.
강을 가로지르는 부르고 다리를 지나
외곽으로 빠져나간다.
이곳이 중요하다.
왼쪽으로 가면 #스피리추얼웨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포르투갈길 #센트럴루트 가 곧장 이어진다.
내 선택은 오른쪽.
#센트럴코스 를 연결해서 걷는다.
아침부터 산을 하나 넘어 폰테베드라에 도착했지만, 폰테베드라를 벗어나 북쪽으로 가려면 다시 산을 올라야 한다. 오후 3시경 등산이라니.
오후 3시면 이미 웬만한 순례자들은 알베르게에 자리잡고 샤워까지 끝낸 다음 한바탕 낮잠을 자거나, 동네 구경 나올 시간. 참 어중간하다.
당연히 시작부터 오르막.
초여름 스페인 태양은 물론 뜨겁지만,
종일 걷다가 오후쯤 태양이 무르익는 시간이면 다 포기하고, 그냥... 무념무상 걷게 되는 경지에 닿는다.
덤덤하게 오르막.
덤덤하게 내리막.
기차가 달려오고 있는 철도 아래 굴다리를 통과해 걷다보면
도시의 흔적은 어느 샌가 사라지고 완연한 시골길.
놀랄만큼 길폭이 좁아져 가급적 들판 쪽으로 몸을 바짝 기울여야 한다.
사람 없이 음료, 과자 등 자동판매기기만 있는 무인 카페.
나름 화장실도 있고 깨끗하다.
오후 6시쯤.
순례자들은 모두 알베르게를 찾아 들어가고, 나만 혼자 걷나보다... 하며 고요한 숲을 즐기는 와중에 소리 없이 휘릭 나타나 빠르게 사라지는 자전거 순례자.
숲길 중간에, 말도 안 되게 맑은 물이 깨나 큰 폭으로 흐른다.
이런 기습 시냇물이 몇 번이나 흐르고, 나무가 빼곡해 기분 좋은 숲길을 호젓이 걷는데
갑자기 나타난 기찻길.
잠시 기다리려니 숲 저끝에서부터 나무 사이를 헤치고 기차가 달려온다.
한껏 속도를 줄이고 운행하겠지만,
고요한 숲길에서 갑자기 만나는 기차라니.
어쩐지 비현실적이고 묘한 풍경.
드디어 동네가 나타나고...
알베르게 표지도 버젓이 있는데 당시엔 영업을 안 했었다.
이미 시간도 늦었고, 종일 걸었는데 그 낭패감이라니.
어쩌나 하는데 마침 빵을 배달하던 차량이 막 출발한다.
알베르게가 있는 다음 마을까지 1.5km 남짓.
차량을 운전하던 아주머니 배려로 차에 올라탔다.
내리막이고 조용해 충분히 혼자 갈만한 길이지만
그러기엔 이미 너무 피곤... ;
다음 마을에 내리긴 했으나... 알베르게는 저기 정면에 보이는 산 중턱.
500미터는 걸어올라가야 한다.
지금 서 있는 국도변이 #까미노루트 이니 알베르게가 길에서 먼 편이다. 여느 때 같았음 지체없이 스킵하고 다음 마을 알베르게까지 갔겠지만 그럴 만한 체력이나 컨디션이 아니었다. 걸을 때마다 통증 이는 발뒤꿈치를 살살 달래가며 다시 산을 오른다.
알베르게 진입로 앞에 서서 #파노라마컷 .
들어가니 이미 오후 8시를 훌쩍 넘겨 젤 늦은 도착. 이미 디너도 끝났고... 사실 너무 피곤하니 뭘 먹고 싶은 욕구도 없다. 얼른 씻고 겨우 하나 남은 매트리스를 차지하고 잘 준비를 하려니 초반에 함께 걸었던 벤에게서 왓츠앱 메세지가 도착했다.
- 나 오늘 산티아고 도착했어! 알렌카랑 루이지도 봤어! 언제 와?
- 진짜? 축하해. 아마 3일쯤 걸릴까? 얼마나 있을거야? 입성 소감은?
- 소감.. 모르겠고. 토요일까지 있을 거야. 너 오면 볼 수 있겠다. 사흘 남았음 가장 어려운 파트는 끝났네. 홧팅하숑
함께 걸었던 벤이 벌써 도착했다니, 정말 끝이 보이는 기분.
앉아 구글을 열어본다.
깔고 앉은 매트리스로부터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까지 46km. 바짝 걸어도 10시간.
아마 직선으로 연결되는 국도 기준일 테고, 다리 길고 보폭 넓은 서양인들 기준일 것이다.
그래도 46km라니. 정말 끝이 바짝 다가온 듯해 뭔가 설레는 한편 아쉬운 기분...
#아르까데알베르게 #공식알베르게 #알베르게 #포르투갈산티아고 #산티아고순례길 #까미노산티아고 #포르투갈순례길 #알베르게 #산울림 #회상 #김창완 #산울림회상 #장범준회상 #포르투갈까미노 #포르투갈길 #포르투갈순례 #포르투갈센트럴 #공영알베르게 #폰테베드라알베르게 #폰테베드라호스텔 #갈리시아 #스페인폰테베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