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꽃보직'도 괴롭다
나는 NGO에서 9년 정도 근무하다가 서른다섯의 나이에 대기업에 입사했다. 대기업 근무는 나에게 어느 정도 배움과 경험 기회가 되었지만, 동시에 불행의 씨앗이었다.
내가 최근에 다니던 회사는 대기업 집단의 지주회사로 높은 영업이익을 자랑했다. 주변 사람들은 적잖은 연봉과 복지 시스템을 갖춘 그 회사에 근무하는 것에 대해 많이 부러워했다. 퇴근시간도 일정했고, 가정사 등에 나름 배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불행했다.
가장 큰 불행의 원인은 일에서 재미나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거였다. 나에게 “일의 재미가 없다”는 것은 새로움, 배움, 성장 이런 가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 “일의 의미가 없다”는 것은 기껏 일한 보람이 소수의 몇 명에게 집중된다는 것이다. 일소처럼 일하면 업무의 성과에 대해 나도 약간의 인센티브를 받기는 했다. 그러나 영혼까지 탈탈 털릴 정도인 그 수고에 비하면 보상과 칭찬은 형식적이었다.
정말 나는 피고용인으로서 나의 신분을 매일 자각하게 되었다. 퇴사 직전 3년간 내가 맡은 업무는 복합몰의 부동산 임대차 계약 및 상권 개발이었다. 나는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복합몰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브랜드 매장을 유치하고, 상권 활성화에 노력했다. 회사를 대리에서 임차인과 계약을 추진하다 보니 회사 측에 유리한 협상 결과를 얻기 위해 실랑이를 벌여야 하고, 또 본의 아니게 갑질 해야 할 때도 있었다. 업무시간에 집중하고 긴장하다 보니 퇴근 후 기진맥진이었다. 학위를 하고 싶었지만 스트레스로 인해 논문 한 편 읽을 마음에 여유를 찾지 못했다.
좋은 점이라면 타인에게 “어디 어디에 다녀요.” 말하기가 좋다는 것이다. 회사 건물이 이름만 대면 다아는 랜드마크 건물이라서 누가 ‘ 어디 근무하느냐?’고 물을 때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되는 거랄까?
일은 끝도 없이 몰아쳤고, 나는 그 일을 해냈고, 시간이 갈수록 나에 대한 회사의 인정과 기대는 점점 커갔다. 그러나 그 기대는 책임감보다는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잘한다, 잘한다”하는 취임 새에 지치고, 상처 입는 것은 모른 채 계속 재주넘기를 하였다. 무능력하다는 평가가 싫어서, 아니 “여자지만 더 잘한다”는 인정 욕심에 무리했다. 사실 우리 회사에서 매출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던 보직에 여성을 임명했던 것은 처음이었다. 기존 남성 선호 대기업 문화에서 나의 실적과 능력으로 여성에 대해 뭔가 다른 메시지를 주고 싶었었던 것 같다. “여성은 비즈니스의 주체이며 남자들만 하는 일(주요 보직, 권한과 돈이 따르는)도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임대 상권 개발 업무를 하기 전에는 문화홍보팀에서 새로운 문화 공연시설을 오픈하고, 사업을 개시 성장시켜야 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맡겨진 일을 잘해보겠다고 ‘애’를 쓰고, 밤마다 공연 티켓을 파는 꿈을 꿨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전국적으로 문화예술시설 재정자립도가 낮은 가운데 나는 회사의 지원을 최대한 줄이고 재정자립도를 높이면서 공연 전시시설을 활성화시켜나갔던 것 같다.
업적과 성과에 스스로 집착하며 살다 보니, 회사생활 8년 동안 우울증과 번아웃 증상을 교대로 겪었다. 퇴근 후 술 한잔에 의존하는 날이 많아졌고, 쉬는 날엔 소비로 스트레스를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