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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장 Jun 02. 2020

내가 정말 여기에 다녀왔다구요?

1년 전 이때 이게 정말 있었던 일이냐구요.

포르투갈에서 대항해시대 때 유명했던 사람의 동상이라고 했는데...누구였더라...


작년 이맘 때는 뭐하고 지냈더라? 6월을 맞아 나이먹은 사람답게 예전 일을 떠올려 봤다. 이것저것 했는데 그 중 하나는 휴가 준비였다.


작년에는 여름 휴가를 일찍 갔다. 출발한 2019년 6월 6일은 목요일이자 현충일 휴일이었고, 7일 금요일에 연차를 내고, 그 다음주 월화수목금은 휴가를 써서 휴일과 주말 포함 장장 11일간의 휴가였다. 인천공항에서 터키 항공을 타고 이스탄불 공항에서 환승해서 포르투갈의 포르투에 갔다. 돌아올 때는 이 반대였다.


다녀온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그 때 사진을 보니 이게 정말 있었던 일인가 싶다.

진짜? 여기를? 여기 내가 있었다고? 정말? 와 좋아보이네!


시간을 아주 잘게 쪼개서 그 아주 짧은 순간마다 내가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의 나는 이 시간에 여기있고, 그때의 나는 그시간에 거기 있었으니, 실제 지금 여기 있는 나는 거기에 다녀오지 않았다고 얘기할 수도 있으려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고, 지금의 나는 거기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인가.

헛소리였고, 너무 생경해서 하는 이야기다.


그 때만 해도 휴가는 돈과 시간이 있으면 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인생에서 운좋게 돈과 시간이 계속 있어서 매년 해외로 휴가를 갈 수 있길 바랐다. 하지만 그때는 미처 생각을 못했다. 평화(예를 들면 전세계적인 유행병같은 이슈가 없는 것)가 가장 기본이 돼야 한다는 것을. 전 세계적인 안정과 안전이 가장 기본 전제 조건임을 잊고 나 개인이 갖춰야 할 조건으로만 시야를 좁혀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 중요한 것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서 잊고 살 때가 있다. 


언제쯤 되면 사람들이 다시 예전처럼 자유롭게 해외를 여행할 수 있을까. 누구도 확답을 못할 것이다. 내가 본 뉴스들을 토대로 나만의 예측을 해보자면 전세계적으로 아주 운이 좋고 서로 돕고 백신도 보급됐다고 가정 했을 때 아무리 빨라도 내년 하반기가 아닐까 싶다. 아쉽다. 국내여행도 물론 좋지만 "에라 모르겠다 알아서들 잘들 해보슈 나는 갑니다" 하고 훌훌 털고 떠나버리는 느낌은 해외여행이 제맛이다. 며칠뒤면 다시 돌아와서 도시의 노동자로 살게 된다는건 어쩔 수 없긴 하지만, 그래도 잠깐이라도 대탈출의 기분을 낼 수 있어서 좋다.


다시 해외로 휴가를 갈 수 있게 된다면 나는 제일 먼저 태국의 방콕에 가겠다. 실향민 고향 그리워 하듯 언제나 그리워하는 내 마음 속 올 타임 넘버원 방콕. R을 만난 곳이라서 더 소중해진 방콕.


가서...가기만 하면... 뭘 할거냐하면...

그냥 별거 안하고 싶다. 

후텁지근한 공기를 마시고, 느긋하게 수영장에서 시간보내고, 밤에는 라이브 바 가고, 루프탑바 가고, 레오맥주 싱하맥주 창맥주를 마시고,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호텔 조식먹고, 길거리도 걸어다니고, 카페도 가고, 관광지도 가보고, 골목에 있는 식당도 가보고, BTS도 타고, 그랩도 불러서 타고, 야시장도 가고, 쇼핑몰 가서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방콕을 기억할 만한 물건을 하나 사서 나오곤 하면서 그냥 그 도시의 바이브를 느끼고 싶다. R과 함께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곳에 같이 가서 "벌써 1년이 됐네" 같은 말도 하고 싶다.


이럴 때보면 인생이 참 심플해보인다.

나는 예전의 즐거웠던 기억을 곱씹으며 버티고, 나중에 올 기쁨을 기대하며, 현재를 산다.


R을 만난 Adhere The 13th Blues bar


나는 항상 아속역 근처에 숙소를 잡곤 했다. 왜냐? 편하거든. 여기는 아속역 사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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