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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숙정 Aug 24. 2021

아파트 미화에 밥까지 해 달라고요?

60대 청소 아줌마 이야기

어떻게든 1년을 채우려던 아파트 청소는 10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때는 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까지 무작정 쉬고 있자니 슬슬 불안한 맘이 들었다.


사람은 돈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하루 24시간을 돈을 쓰며 산다. 화장실에 가서 물 내리고, 물도 마셔야 하고, 따뜻한 물로 샤워하려면 보일러도 켜야 한다. 그뿐인가. 여름에는 에어컨을, 겨울에는 전기 매트까지 켜야 하지 않나.

그러니 놀 수가 있을까. 생활정보지를 암만 뒤져봐도 입맛에 맞는 일자리는 찾기 어렵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일자리를 원하는가? 사람이라면 지긋지긋해서 나 혼자서만 청소할 수 있는 일자리다.


가끔 자리가 나오는데 이번에는 정형외과다. 시간도 짧고, 일단 점심을 사람들이랑 같이 안 먹을 만한 데였다. 무엇보다 혼자 일을 하는 곳이었다. 전화를 했더니 다른 건 다 괜찮은데 걸리는 게 하나 있다. 병실은 많지 않지만 입원 환자가 있어서 식사를 제공하는데, 조리사가 따로 있긴 해도 주 5일 근무라 토요일 식사는 청소 아줌마가 만들어야 한다.


“조리사가 밥은 다 해 놓고 퇴근하니까요.
간단히 국 끓여서 배식만 해주시면 됩니다.”


청소 월급에 식사 만들기까지? 여기가 무슨 마트도 아니고 ‘끼워 팔기’란 말인가. 어떻게 저렇게 뻔뻔한 요구를 할 수가 있을까. 내가 아무리 사정이 좋지 않아도 ‘끼워 팔기’는 못하겠다고 거절하고 더 알아보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던 중에 생활정보지에 일자리 하나가 또 올라왔다.

두 동짜리 아파트에 나 혼자 일할 수 있을 만한 데로. 점심시간이 없는 대신 아침 9시부터 1시까지만 일을 하고, 주 6일에 급여는 70만 원. 이거다 싶었다.


아파트 청소 경력이 생겼다고 그래도 이번에는 면접 보기 전 아파트 환경을 둘러보는 여유까지 부릴 수 있었다. 15층짜리 아파트 2개 동의 계단은 신주(미끄럼 방지용 놋쇠)가 박혔고 때가 꼬질꼬질하게 앉아 퍼런 상태로 있다.


교통비를 들여서 여기까지 왔으니 면접이나 보고 가자 싶어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마침 소장이 자리에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른 경비 아저씨도 이 아파트 사정을 잘 알듯해 찾아갔다. 급여나 근무 조건은 구인공고에 나온 것과 같을 테니 가장 궁금한 걸 물었다.


“오후 1시에 일이 끝나면 점심은 안 먹는 거 맞지요? 여기 오기 전에 계단을 보니까 신주가 있던데 광내기 작업을 하나요?”


그러자 구인공고에는 절대로 안 올릴 내용이 경비의 입에서 나왔다.


“아니죠. 점심은 먹어요. 밥은 내가 할 거니까 아줌마가 반찬만 만드시면 됩니다. 소장님이랑 나랑 아줌마, 이렇게 셋이 먹고 집에 가는 거예요.”


또 ‘끼워 팔기’다. 밖에 나와서까지 하고 싶지 않은 게 밥상 차리기인데 이게 말인지 막걸리인지. 반찬 만드는 일이 얼마나 쉬워 보이면 저러나 싶다. 거기에 신주 닦이는 물론이란다. 옛날식 계단에 미끄럼 방지용 놋쇠를 신주라 하는데, 이걸 약품을 써서 금빛이 나도록 박박 닦아 광을 내야 한다. 이게 또 노동력이 대단히 들어간다. 듣자 하니 전임자가 밥도 하고, 청소도 한 모양인데 신주까지는 못하겠어서 그만뒀다나.


그 말을 들은 순간 내가 그랬다.


“돈 70만 원에 청소도 하고. 반찬도 하고 신주도 닦으라고요? 4시간 동안 그 일만 해도 모자랄 텐데. 나, 이 일 못해요. 무조건 못해요.”


그 말만 내뱉듯 하고 쌩하니 나왔다.


“나도 소장한테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얘기했었는데….”


경비가 돌아서 나가는 내 뒤에 대고 말을 흐린다.




나이 든 아줌마들이 가방끈 짧고 사회경험이 적다고, 쉽게 보고 청소에 온갖 잡일 끼워 팔기를 하는 거다.

이미 많은 60~70대 늙은 엄마들이 그런 돼먹지 못한 곳에 고용되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노동을 이런 식으로 값싸게 팔고 있을 것이다.


내 또래 여자들은 평생을 그저 하라는 대로 순종적인 삶을 살아와서 일터에서도 순종적이다. 나이도 많고 경력도 없는 나를 써주는 것만도 그저 고맙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기업의 횡포인지도 모르고 부당함조차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60~70대 청소하는 아줌마들의 비극이라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사람은 말년이 좋아야 하는데 나에게 그런 복은 없을 것 같다. 나처럼 말년 복 없는 중간 늙다리들이 또 어디에서 지금도 옆 동료를 괴롭히고, 눈 뜨고 당하고, 헐값에 자기 노동을 팔고 있을지 답답하기도 하지만 걱정도 된다.


노인 숫자가 워낙 많아서 앞으로 더욱 당하고 살면 살았지. 좋아지지는 않을 듯한데. 이 청소 세계를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참 서글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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