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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달 모나 Monah thedal Apr 27. 2024

우연히 사이비 종교 신자가 된 어린 시절 친구를 만났다

<만조를 기다리며>, ‘책방 밀물’에서 우연히 만난

우연히 사이비 종교 신자가 된 어린 시절 친구를 만났다, <만조를 기다리며>, ‘책방 밀물’에서 우연히 만난


“내가 찾지 않으면 넌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거든.” (p.8)     

길을 잃은 혼들이 쉬어가는 곳이다. 이 해무로 뒤덮인 작은 섬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속해 산 자들은 헤매기 십상이다. (p.27)     

꽤 사랑했을지도 모르겠다. 감정이란 절묘한 상황이 만들어낸 착각이니까. (p.84)     

“두 번째로 같이 보는 일출이야. 너랑 보는 바다가 제일 예쁜 것 같아.” (p.129)     

- 조예은, <만조를 기다리며> 중 발췌


소설 <만조를 기다리며>은 정해가 친구 우영의 자살 소식을 들으며 시작합니다. 우영이 자살 직전 마지막으로 문자를 보내려 했던 사람이 정해였고, 그 사실 때문에 경찰은 정해에게 연락을 하게 되죠. 20대 중반 이후 오래도록 연락이 끊긴 친구가 죽음 직전 연락을 취하려 했던 사람이 나였다니, 당황스럽고 심장이 요동칠 듯하지만, 정해는 다만 이렇게 읊조립니다.     


20년 후의 그 역시 알았을 것이다.
이딴 식으로 사라지면 내가 자신을 찾아올 거라는 사실을.  


정해는 우영의 죽음을 하나의 신호로 받아들이고서, 그 즉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우영이 살던 ‘미아도’로 향합니다. 미아도는 ‘혼이 쉬어가는 섬’이라는 별칭이 있는 곳으로, 죽은 이를 기리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영산’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영은 그곳에서 한평생을 살았고, 정해 또한 그곳에서 우영을 처음 만났죠. 중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아이 시절의 일입니다.     


그 시절, 우영은 정해를 죽음으로부터 지탱해 주었습니다. 엄마가 자신을 외조부모의 손에 맡기고 어디론가 훌쩍 사라진 후, 정해는 부동산 투기를 위해 미아도로 향한 외할머니와 함께 섬에서 여름을 나게 되죠. 그 시절 정해를 살게 했던 건 우영이었습니다. 정략 결혼한 부모가 위태로웠던 결혼에 종지부를 찍을지도 모를 것만 같던 그때, 틀림없이 버려졌다는 분노와 복수심에 차서 영영 사라져 버리겠다고 다짐했던 그때, 정해의 곁을 끝까지 지킨 것 또한 우영이었죠.      


마침내 결심이 섰던 그 날, 정해는 바위틈으로 들어가 만조를 기다리게 됩니다. 바닷물이 한없이 밀려들기 시작하면서, 정해는 처음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을 하죠. 상상으로만 거듭했던 죽음이 실제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두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제 막 깨닫기 시작한 그때, 우영은 정해를 찾아냅니다. 밀려드는 파도에 자신마저 위험해질 걸 알면서도, 정해의 곁에서 묵묵하게 머무르죠. 그곳에 함께 존재함으로써 우영은 정해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합니다. 결국 정해는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죽어가는 우영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필사적으로 살아야 했죠. 죽고 싶었던 건 자신이었을 뿐, 우영은 죽어 마땅하지 않았으니까요.     


우영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바위처럼 언제나 우직하게 그곳에 있는 인물이었죠. 우영의 성품은 그의 가족에서 대물림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의 가족은 대대로 미아도의 하나뿐인 산, ‘영산’의 산지기로서 산을 관리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 왔거든요. 우영 또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산지기가 될 운명이었죠. 우영은 단 한 번도 자신에게 예정된 삶을 거부한 적이 없습니다. 영산의 산지기의 첫 번째 임무가 식물을 관리하는 것도, 동물을 살피는 것도 아닌, ‘산 곳곳에 걸린 죽은 이들의 물건을 정리하는 것’이었음에도 우영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산지기가 된다는 사실을 이견 없이 받아들입니다. ‘죽은 후에 한 줌의 가루가 되어 영산에 흩뿌려지는 것’을 소망으로 삼을 만큼, 영산과 미아도는 그에게 귀중한 세계였습니다.     


그래서 정해는 우영이 강남 한복판에서 만난 우영을 보며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아도에서 보낸 여름으로부터 약 십 년이 흐른 어느 날, 선릉역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우영은 사이비 종교인 ‘영산교’의 포교 활동을 하고 있었거든요. 영산교는 정해와 우영이 성장하는 시간 동안, 미아도에 생겨난 신흥 종교였습니다. 섬의 인구가 나날이 줄었고, 섬의 최대 유지였던 최씨 일가의 생계가 위태로워 시작된 사업이었죠. ‘혼이 머물다 가는 곳’이라는 설화는 이제 믿음을 기반으로 한 돈 놀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비상식적인 믿음을 열렬하게 앞장서서 설파하는 무리 중에는 우영이 있었습니다. 정해에게 그의 변화는 혼란스럽기만 했습니다. 사이비 종교와 우영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해도 도무지 연결되지가 않았으니까요.    

  

책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기 때문에 뒷 내용에 대한 말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뒷 내용이 궁금한 분은 책을 직접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어떻게든 책을 끊어 읽는 제가,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었다는 건 유의미한 일이니 분명 후회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만조를 기다리며>를 변해가는 시간의 무력함을 잘 표현한 소설입니다.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자라날 때, 우리는 성장에 대한 기쁨을 느끼기도 하지만, 동시에 생동하던 세상의 색깔들이 점차 잦아드는 걸 느끼죠. 음험하고 이중적인 세상의 본모습을 마주하며 어린 시절 활발하고 격동적이었던 에너지는 점차 침잠하게 됩니다.      

소설 속 우영은 그런 현실에 정면으로 노출된 인물입니다. 그가 바라는 건 다만 정적인 삶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나고 자란 산에서 변함없이 그곳을 지키며 살고자 하는 소망. 그 소박한 바람은 어린 우영의 모든 것이었죠. 하지만 자라나며 마주한 세상은 그런 그를 호락호락하게 두지 않았습니다. 미술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빛나는 삶을 사는 친구 정해, 섬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마주한 도시에서 목도한 화려한 세상. 그 안에서 우영은 어떠한 심적인 요동을 겪었을까요. 우직하게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던, 이미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꼈던 그가, 느닷없이 먼 곳으로 가려 했던 건, 그중에서도 유독 미국 땅을 밟고자 했던 건, 분명 우연 같은 충동은 아니었을 겁니다.     


책을 읽는 내내 행복 지수가 급락한 부탄이 떠올랐습니다. SNS가 발달하기 전, 국민 행복 지수 1위를 달성했던 국가의 순위는 이제 95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세상이 기민하게 연결됨에 따라 부탄 국민들이 자신을 빈곤하다고 여기게 되어 행복 지수가 현격하게 하락한 것이죠. 우영의 삶이 부탄의 국민들과 겹쳐 보이는 건 왜일까요. 지금의 자리에서 만족할 수 있는 시대는 이제 끝나버리고 만 걸까요. 누구라도 도무지 가만히 놔두질 않는 작금의 현실이, 어쩐지 씁쓸하게만 느껴집니다.      



이 책을 우연히 만날 수 있었던 이유


책방 밀물




< 우연히 만난 책들 >


책방 여행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방을 방문할 때마다 공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을 한 권씩 구매합니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책들을 그냥 묵혀 두기 아까워 책에 대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 우연히 만난 책들 >은 그렇게 탄생하게 된 글 모음집입니다.

글에서는 책방에서 책을 고른 이유와 책에 대한 소소한 감상을 담고 있습니다.





그달 모나 Monah the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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