릿터(Littor), ‘종이잡지클럽’에서 우연히 만난
문학은 인간의 기억에서 망각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들을 상기시킨다.
(p.33)
- 문학잡지 '릿터' 중
잡지는 고독하지 않은 장르입니다. 처음으로 잡지를 완독한 후에 그런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잡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가끔 잡지를 읽게 되는 일은 있었지만, 필요한 부분만 잠깐, 혹은 읽고 싶은 부분만 골라 읽다 보니 어떤 잡지를 손에 쥐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본 일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독서의 경험은 특별했죠. 잡지를 생에 처음으로 완독해 본 것이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서평보다는 ‘잡지’라는 장르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서평이 아닌 장르 리뷰로 방향을 잡은 건 오만방자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함입니다. 잡지를 처음으로 완독했으면서 갑자기 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의견을 내는 건 상당히 우스운 일일 테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책에 대한 의견을 적는 대신, 처음으로 잡지를 ‘제대로’ 읽어 본 만큼, 완독한 잡지를 간단히 설명하고, ‘잡지를 읽는다는 것’에 대한 간단한 소감을 적어보려 합니다.
제가 택한 잡지는 ‘릿터(Littor)’였습니다. 릿터는 민음사에서 발간하는 격월간 문학잡지로, ‘커버스토리(특집/기획), 산문(에세이), 인터뷰, 소설, 시, 리뷰(서평)’의 6개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죠. 문학잡지라 하여 모든 코너에서 문학만을 다룰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아트 큐레이터를 인터뷰하고, 번역의 방도를 논하는 등 문학에 거점을 두고서 예술 전반을 아우르죠.
하지만 명색이 ‘문학’ 잡지이기 때문에 결국 모든 글은 문학으로 되돌아옵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읽을 수 있는지, 더 잘 읽기 위해서는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 어떠한 사고와 관점으로 읽는 행위를 대해야 하는지 등을 다각도로 논하죠. 잡지를 구성하는 모든 조각 글의 저변에는 같은 고민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수십 명의 저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문학’이라는 거시적인 주제를 사유하고 풀어내죠.
그래서일까요. 잡지를 읽으면서 이상하게 누군가와 ‘함께’ 글을 읽는 것 같았습니다. 평소의 독서와 달리 좀처럼 고독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죠. 소설이나 시, 비문학 등의 서적을 넘길 때는 언제나 책과 나뿐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합니다. 저자 개인과 마주 앉아 그의 생각을 고요히, 하지만 낱낱이 듣고 있는 기분이죠. 공간으로 치자면 원테이블 카페에 와 있는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잡지는 그와 상당히 대조적이었습니다. 잡지를 읽는 내내 마치 거대한 연회장이나 발표장 혹은 토론장에 와 있는 듯했습니다. 수많은 지식인들로 가득 찬 어떤 연회장의 관객이 되어, 치열하게 오가는 그들의 대화를 관찰하고 있는 것 같았죠. 잡지는 여태 읽었던 어떤 책들보다 역동적이었고,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잡지를 읽으면서, 왜 무언가를 좋아하면 결국 잡지를 찾게 되는지를 알 것 같았습니다. 잡지는 혼자인 줄로만 알았던 열정이 결코 혼자가 아님을 상기시켜 주는 장르입니다. 마치 러닝메이트처럼,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감각을 잃지 않도록 곁에서 함께 달려 주는 장르죠. 그래서 잡지를 읽다 보면 꺼져 가던 마음이 샘솟습니다. 나만큼이나 혹은 나보다도 더 진심을 다해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리도 많은데, 여기서 함부로 멈추면 안되겠구나, 하는 경각심이 들게 되죠.
가끔 좋아하는 마음이 힘들어질 때면 잡지를 읽어야겠습니다. 무수한 이들의 열띤 애정과 섬세한 견해에 감탄하며, 사그라들었던 열정을 다시금 일으켜야겠습니다. 잡지라는 무궁무진한 세계를 이제라도 알 수 있어 다행입니다. 매번 다른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거지만, 책의 매력은 정말이지 끝이 없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