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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달 모나 Monah thedal Apr 20. 2024

삶의 지향점은, 다만 읽고 쓰고 사유하는 것

읽고 쓰는 사람을 위한 서점, ‘책방 밀물’

삶의 지향점은, 다만 읽고 쓰고 사유하는 것, 읽고 쓰는 사람을 위한 서점, ‘책방 밀물’


오늘의 서점

읽고 쓰는 사람을 위한 서점, ‘책방 밀물’     


책방 3줄 요약

1. 읽고 쓰는 모임으로부터 비롯된 서점   
  : 온라인 독서 모임 ‘책 벗’으로부터 시작한 서점이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공간으로 공간은 확장되었지만, 책방은 여전히 ‘읽고, 쓰고, 사유하는 삶’을 지향한다. 그래서 책방의 책장은 독특하다. 작은 서점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분류법으로 책을 구분한다.      

2. 읽는 마음을 북돋아 주는 서점
  : 책방의 책장에는 무수히 많은 메모가 붙어 있다. 전부 책방지기님이 손수 적은 메모들이다. 하지만 여러 메모 중 단연 눈에 띄는 건 책방의 ‘샘플북’이다. 책방의 손님들은 샘플북에 적힌 책방지기님의 메모를 즐겨 읽으며, 메모에 반해 책을 구매하기도 한다.      

3. 쓰는 마음을 마련해 주는 서점
  : 책방에는 쓰는 마음을 촉발시키는 아주 사소하지만, 효과적인 도구들이 마련되어 있다. 이를테면, 따뜻한 차 한 잔, 깎지 않은 매끈한 새 연필, 정갈한 편지지 같은 것들. 읽고 쓰는 사람이 운영하는 서점은 읽고 쓰는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다.      



오늘의 책방은 읽고 쓰는 사람을 위한 서점, ‘책방 밀물’이다.      


문장의 힘은 강력하다. 소설의 첫 문장은 수십만 자로 이루어진 책을 끝까지 읽게 하고, 시의 한 구절은 시집을 노랫말처럼 외게 하며, 카피라이트 한 줄은 수없이 많은 가치를 창출해 낸다. 몇 개 단어로 조합된 하나의 문장은, 종종 그 이상의 무엇이 된다.      


내 경우에는 서점이었다. 아주 오래전, 미국의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를 압도했던 어떤 문장은 책방지기를 매료시켰고, 몇 장의 사진을 통해 내게 다다랐다. 그 문장은 이렇게 시작되고 끝맺어진다.      


반드시 밀물 때는 온다. 바로 그날, 나는 바다로 나갈 것이다.   


서점의 대들보에 아로새겨진 문장이자, 서점을 대표하는 한 줄의 말. 나의 시간을 기다리겠다는 담담한 한 줄의 문장을 보는 순간, 나는 서점에 가고 싶어졌다. 밀물의 미학을 벽면에 아로새긴 이 서점을, 알고 싶어졌다. 간조의 시간에서 한 척의 배가 보내는 지난하고 거친 마음을 이해하는 서점이라면, 그곳에서만큼은 적절한 쉼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읽고 쓰는 모임으로부터 비롯된 서점      


서점을 방문하기로 결심한 이유가 하나의 문장 때문이라는 건, 의외로 유의미한 일이었다. ‘책방 밀물’은 읽고 쓰는 행위로부터 시작된 서점이다. 2021년 온라인 독서 모임 ‘책 벗’으로부터 시작된 ‘온라인 책방 밀물’은 ‘쓰는 하루’와 ‘하루 읽기’ 등 다양한 읽기와 쓰기 모임으로 저변을 확장해 나갔다. 그렇게 약 1년간 지속되었던 온라인 책방은 2022년 가을, 온라인을 벗어나 마침내 실체를 가진 서점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공간을 옮겨왔지만, 책방의 곳곳에는 여전히 초심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었다. 창가 외벽에는 ‘Read, Write and Think’라는 책방의 슬로건이 새겨져 있고, 책들 또한 ‘읽고, 쓰고, 사유한다’라는 책방의 가치관에 따라 분류되어 있었다. 책방 밀물의 책장에는 특히 작은 서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몇 가지 카테고리들이 있는데, 바로 ‘Reading(책 읽기)’과 ‘Writing(글 쓰기)’ 코너다.     



‘Reading(책 읽기)’과 ‘Writing(글 쓰기)’ 각각 읽는 마음과 쓰는 마음을 다루는 책들을 모아둔 책장이다. 어떻게 하면 독서를 유익하고 풍요롭게 할 수 있으며, 기록을 상세하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지를 논하는 책들이 책장 가득 빼곡하다.      


책방 밀물처럼 읽는 법과 쓰는 법을 논의하는 책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제시하는 작은 서점은 흔치 않다. 그것도 독서 논술과 같은 학업적인 이유가 아닌, 순수하게 읽고 쓰는 방법을 고민하기 위한 책들을 하나의 키워드로 제안하는 책방은 희귀하고 드물다. ‘읽기’와 ‘쓰기’는 작은 책방에서 흔히 발견할 수 없는 카테고리 이름이다. 그러나 책방 밀물은 그런 책들을 손님의 손과 눈이 가장 잘 닿는 서점의 입구에 비치해 두었다. ‘읽고, 쓰고, 사유하는’ 삶을 지향하는 책방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러한 독특한 책 분류 체계는 서점의 정체성이 엿보이는 미약한 일부일 뿐이다. 책방은 이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읽는 마음을 북돋아 주는 서점     


책방 밀물은 충만해지는 감각을 지향한다. 서점의 손님들이 읽고, 쓰고, 사유하는 과정을 통해 만조처럼 차오르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책방지기님은 서점 곳곳에 메모를 붙여 두었다. ‘시, 소설, 브랜딩, 예술과 인문, 삶, 걱정, 일과 나, 산책하는 이의 삶’ 등 책방만의 개성이 묻어 나는 책장의 이름 밑에는 어김없이 책에 대한 메모들이 걸려 있다. 빈번한 메모들은 책에서 필사한 매력적인 문장들로 채워져 있다. 몇몇에는 책을 소개하는 책방지기님의 소개 문구가 적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수많은 메모 중 손님의 사랑을 가장 듬뿍 받는 메모는 바로 서점의 중앙 매대에 놓인 ‘샘플북’이다. 샘플북은 이름처럼 판매가 아닌 단순 열람용으로 마련된 샘플용 책들로, 겉보기에는 다른 서점의 샘플북과 큰 차이가 없다.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표지에 붙어 있는 책방지기님의 추천글 정도, 그리고 옆면에 붙어 있는 몇 개의 인덱스 정도. 하지만 이마저도 그리 특별한 외형은 아니다. 책방 밀물만의 샘플북이 가진 진짜 묘미는 겉면에 있지 않다. 책의 매력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샘플북의 표지를 열어 보아야 한다.   



책방이 샘플북의 표지를 여는 순간, 낙서들이 펼쳐진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곧게 그어 내린 밑줄과 연필로 휘갈긴 짧은 글들이 눈에 띈다. 휙휙 넘기는 책장 사이에서도 메모들은 매번 손쉽게 포착된다. 정제된 형태의 인쇄보다 투박하고 자유로운 손글씨가 더 눈에 잘 들어오는 까닭이다. 책 곳곳에서 발견되는 책에 대한 사유들은 전부 책방지기님이 남겨 놓은 기록이다. 손님에게 책을 내놓기 전, 판매할 책을 미리 읽고 공부한 책방지기님의 흔적이다.      


하나의 필체로 이어 나가는 메모들은 언제부터인가 책방 밀물만의 독특한 재미가 되었다. 손님들은 어느 순간부터 책이 아닌, 책 곳곳에 남아 있는 책방지기님의 치열한 고민의 흔적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책의 여백과 가장자리에 깨알 같이 적힌 메모들, 책방지기님의 지극히 사적인 위로와 공감, 후회와 격려의 생각들이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흥미롭기 때문이다. 어쩌면 손글씨의 속삭임이 딱딱하게 인쇄된 문장들보다 더 손쉽게 마음으로 스며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정확한 이유가 무엇이든 샘플북은 이제 책방 밀물만의 독특한 특징이자 책방을 주기적으로 찾는 손님들이 종종 확인하는 인기 코너가 되었다. 그중 몇은 책에 적힌 메모에 반해 책을 구매하기도 한다. 메모를 읽으며 역으로 책을 되짚을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대체 어떤 내용을 담은 책이길래 책방지기님이 이러한 메모를 적었는지, 그 속사정이 궁금해 책을 읽어 보고 싶어진 것이다.      


이렇게 좋아해 주는 사람이 많다 보니, 최근 책방의 샘플북은 그 수가 나날이 늘어 가고 있다고 한다. 샘플북을 진열하던 책장의 경계를 넘어 바로 옆에 있는 신권 코너까지 침범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 사실을 설명하는 책방지기님의 얼굴은 어쩐지 기뻐 보였다. 책을 매개로 소통하는 새로운 방식을 발견한 사람처럼, 손님과 대화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터득한 사람처럼, 진심으로 뿌듯하고 행복해 보였다.     


읽고, 쓰고, 사유하는 서점은 이 사람에서부터 비롯된 거구나.

매일 성실하게 읽고, 쓰고, 사유하는 사람이 만든 공간은 이런 모습이구나.

책방지기님의 웃는 얼굴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쓰는 마음을 마련해 주는 서점     


책방 밀물에서는 읽는 행위만큼이나 쓰는 마음 또한 중요하다. 그렇기에 책방은 여러 형태로 ‘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책방의 정기 모임인 ‘쓰는 하루’와 ‘읽는 하루’다. ‘쓰는 하루’는 50일간 매일매일 무언가를 (짧게라도) 쓰고자 결성된 모임이며, ‘읽는 하루’는 한 달 동안 매일, 정한 분량만큼 책을 읽고서 간단한 감상을 적는 모임이다. 이들은 온라인에서만 책방이 존재했던 2021년부터 이어져 온 역사 있는 모임들로, 분량의 제한은 없으나 매일 써야 하는, 간결하지만 규칙적인 쓰기 모임이다.      


책방의 또 다른 쓰기로는 ‘마음 쓰는 시간’이 있는데, 이는 책을 선물하려는 사람을 위해 마련한 ‘편지’다. 책방은 선물 포장 서비스를 제공하며, 엽서도 별도로 판매하고 있지만, 책방지기님은 굳이 엽서를 사지 않아도 마음을 전할 수 있도록 편지지를 마련해 놓았다고 한다. 이 외에도 나만의 ‘퀘런시아(Querencia, 자아 회복의 장소, 안식처)’를 적을 수 있는 질문지 종이도 마련되어 있다. 책방은 이처럼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요소요소에 ‘쓸 것’들을 배치해 두어 책방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써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쓸 주제나 소재뿐만 아니라, 쓰고자 하는 마음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책방 밀물에는 ‘만조를 기다리며’라는 자리 예약 시스템이 있는데, 이는 책방의 창가 자리를 2시간 동안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책을 읽거나 글을 써도 괜찮으며, 그 외의 작업을 해도 무방하다. (단, 노트북 및 전자기기 사용은 금한다고 한다.) 책방 내에는 ‘만조를 기다리며’ 자리 외에도 여러 좌석이 있고, 책을 구매하면 책방 내의 자리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 굳이 웃돈을 주고 특정 좌석을 이용할 이유는 없지만, 그럼에도 이 자리를 추천하는 이유가 있다.


‘만조를 기다리며’ 자리를 예약하면 예약자의 이름으로 책방의 어메니티가 제공된다. 이곳의 어메니티는 ‘읽고 쓰는 행위를 지원하는’ 물건들로 채워져 있다. 따뜻한 차 한 잔과 독서를 돕는 페이퍼(질문지, 기록지), 책의 중요 부분을 표시할 수 있는 인덱스와 깎지 않은 연필 한 자루가 그것들이다.      


책방 밀물의 독서 어메니티는 익숙한 듯 낯설다. 여느 서점에나 있는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혼재되어 있다. 책을 읽는 시간을 따뜻하게 채우는 차 한 잔, 그리고 책에 대한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기록하는 필사 및 독서 기록 용지는 사실 어느 서점에서나 제공되는 기본적인 독서 필수품들이다. 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사뭇 생소하다.     



대표적인 게 인덱스. 몇몇 책방의 ‘좌석/공간 예약’ 시스템을 이용해 보았지만, 인덱스를 제공하는 서점은 이곳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인덱스를 보는 순간 이곳이 진정으로 ‘읽는 이’를 위한 곳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매우 사소한 포인트긴 하지만, 인덱스는 책을 읽는 이들에게 사실상 꼭 필요한 도구다. 책을 읽다가 특정 구절이나 문장, 페이지에 인덱스 한 번 붙여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토록 중요한 독서 물품이건만, 대부분의 공간에서는 인덱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 필요하다면 개인 인덱스를 가지고 다녀야 하는데, 책방 밀물은 그 중요한 필수품을 먼저 선뜻 제공해 준다. (틴케이스에 담긴 책방의 인덱스는 집에 가져갈 수는 없지만, 필요한 만큼 얼마든지 떼어서 사용할 수 있다.) 아주 사소하지만 섬세한 배려 포인트다.   

   

그리고 연필 한 자루. 그것도 깎지 않은 연필 한 자루. 아무도 손댄 적 없는 새하얀 연필은 은은한 파동이 되어 쓰려는 마음을 두드린다. 그저 연필 한 자루일 뿐인데 연필깎이를 잡고 슬근슬근 깎다 보면 무언가를 쓰고자 마음이 자꾸만 샘솟는다. 뾰족하게 드러난 흑심을 종이에 묻히며 무엇이라도 적어 보고 싶다. 아무래도 너무 오랜만에 연필을 손에 쥐어서 그런 듯하지만, 연필의 몽글거리는 감성에 감화되는 사람은 분명 나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인덱스가 읽는 마음을 헤아린 사소한 배려라면, 새 연필은 쓰는 마음을 점화하는 불씨와도 같다. 아주 작지만 한 번 옮겨붙으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가는 미세한 불꽃. 그래서 책방 밀물에서 새 연필을 받고 나면, 무엇이라도 적게 된다. 책에서 발견한 좋은 글귀, 그에서 파생되는 상념들, 혹은 책의 제목이나 출판사명이라도. 그렇게 시작된 쓰기는 곧 꼬리에 꼬리를 물며 퍼져 나간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쓰고’ 있다.      


책방 밀물은 이렇게나 읽고 쓰는 사람을 설레게 하는 지점들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매우 사소한 것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며, 섬세하게 배려한다. 그래서 책방 밀물의 ‘만조를 기다리며’는 한 번쯤 이용해 보라 권하고 싶다. 읽고 쓰는 행위를 다각도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받는 경험은 생각보다 짜릿하기 때문이다.      



책방 밀물을 권하고 싶은 사람은 너무 많다.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한 번쯤 들러봤으면 좋겠고, 가능하다면 책방의 독서 모임이나 쓰기 모임에도 참석해 보라 추천하고 싶다. 하지만 읽고 쓰는 걸 정말 좋아한다면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서점을 가 볼 것이기에, 이번에는 좀 다른 사람들에게 책방을 추천하고 싶다.     


책방 밀물을 진정으로 권하고픈 사람들은,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책을 읽는 분위기’를 좋아하는 이들이다. 책과 낯가림을 좀 하지만, 분위기만 조성되면 어색함 없이 책장을 넘길 수 있으며, 괜히 이것저것 끄적거려 보기도 하는 사람들. ‘책방 밀물’은 그런 이들을 위해 최적화된 책방이다. 차분한 듯 마음을 달뜨게 하는 책방의 인테리어와 분위기는 절로 책을 읽고 싶게 만들고, 곳곳에 붙은 메모들은 잊고 지냈던 ‘읽는 마음’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독서인이 되겠다는 원대한 꿈을 여태 마음 한구석에 품고만 지냈다면, ‘책방 밀물’에는 꼭 한 번 가 보길 바란다. 여태 이루지 못했던 독서라는 목표를 책방 밀물에서만큼은, ‘읽고 쓰며 사유하는 삶’을 일상처럼 살아내는 그곳에서만큼은, 분명 이뤄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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