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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달 모나 Monah thedal May 18. 2024

언젠가의 꿈을 파는 상점, 책장, 그리고 서점

국내에 몇 없는 희귀한 공유 책방, ‘썸데이북스’

언젠가의 꿈을 파는 상점, 책장, 그리고 서점, 국내에 몇 없는 희귀한 공유 책방, ‘썸데이북스’


오늘의 서점

언젠가의 꿈을 파는 상점, ‘썸데이북스’ 

    

책방 3줄 요약

1. 만화카페 안에 있는 공유 책방
  : 비밀스러운 만화카페 ‘페잇퍼’ 안에 있는 책방이다. 만화카페와 입구를 공유하지만, 건물은 다르니 잘 살펴서 들어가야 한다.

2. ‘언젠가’의 꿈이 실현되는 공간
  : 책장 한 칸마다 주인이 다른 ‘공유 서점’이다. 겉보기에 똑같이 보이는 책장은 한 칸, 한 칸마다 누군가의 취향과 색깔, 개성과 가치관으로 담뿍 채워져 있다.

3. 무형의 가치를 판매하는 상점
  : 썸데이북스에서는 책만 팔지 않는다. 디자인 문구나 실링 왁스, 뜨개 인형이나 목욕용품, 보드게임 등은 물론, 독서 모임이나 요가 클래스, 희곡 읽기 모임, 셀프 타로 리딩과 같은 무형의 가치도 판매한다. 가끔 특정 사람 눈에만 보이는, 가상의 상점이 등장하기도 하니 혹시 들르게 되면 상점들을 자세히 살펴보자. 나에게만 특별한 무언가가 보일지도 모르니. :)     



오늘의 책방은 언젠가의 꿈을 파는 상점, ‘썸데이북스’다.      


최근 들어 일본에서 ‘공유 서점’이 대두되고 있다. 공유형 서점은 공유형 서재와 흡사한 측면이 있는데, 공유형 서재가 독서실처럼 책상 하나를 빌려 작업실이나 사무실을 여는 방식이라면, 공유형 서점은 책장 한 칸을 빌려 ‘나만의 작은 서점 혹은 상점’을 여는 개념이다. 책장 한 칸이라는 부담 없는 공간과 비용으로 상상으로만 꿈꿔 왔던 서점 주인이 되어 보는 것이다.     


아직 국내에서는 공유 서점이 생소하지만, 바로 옆 나라 일본에서 공유 서점은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 도쿄 진보초에서 시작된 공유 서점의 유행은 현재 시부야 등 도쿄를 넘어 다른 도와 현에까지 번져나가고 있다. 서점마다 공유 서점을 운영하는 방식도 다양한데, 진보초의 헌책방들처럼 기존 서점의 책장 한 칸을 임대하여 샵인샵처럼 운영하기도 하고, 서점의 모든 책장을 공유 서점으로 임대하여 책장 한 칸마다 전부 주인이 다른 곳도 있다. 임대 방식과 비용, 기간도 서점마다 상이한데, 한 칸을 월마다 대여해 주는 곳도 있고, 한 번 임대하면 의무적으로 몇 달을 빌려야 하는 곳도 있다.     



방법이야 천차만별이지만, 모든 공유 서점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서가마다 주인의 고유한 취향과 개성으로 반짝인다는 것. 몇십 센티미터 공간이 저마다의 색깔로 찬란하다는 것. 작은 상자 모양의 공간에서 각자의 ‘나’를 내보이며 판매하고 있다는 것. 서점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책만 모아두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책으로 책장을 큐레이션하거나, 오래된 고서를 파는 등 기존 서점에 없는 형태의 책장이 빈번하게 눈에 띈다는 것.     


‘썸데이북스’를 가기로 결심했던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2024년 초에 문을 연 그곳은 현재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공유 서점 제도를 발 빠르게 반영한 책방이었다. 명색이 서점을 다니는 사람으로서, ‘국내에 몇 없는 공유 책방’이란 키워드는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만화카페 안에 있는 공유 책방      


썸데이북스는 연희동에 특색 있는 만화카페로 알려진 ‘페잇퍼(paperr)’와 입구를 공유하는 서점이다. 페잇퍼는 회원만 입장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만화카페’를 표방하는 곳으로, 매일 오전 11시에 입장을 위한 비밀번호가 발급된다. 그래서 페잇퍼와 썸데이북스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홈페이지에서 회원으로 가입하고, 비밀번호를 확인한 후, 무인 계기판에 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야 한다.     


※ 페잇퍼 회원이 되기 위한 홈페이지 (주소 : http://paperr.kr)


하지만 페잇퍼와 썸데이북스가 연결되는 건 여기까지다. 썸데이북스는 페잇퍼에서 운영하는 일종의 자회사 혹은 자서점(?)이지만, 둘은 입구와 건물 로비만 공유할 뿐, 그 외의 공간이나 체제는 독립적으로 나누어져 있다.      


누군가의 상상과 꿈으로 엮은 만화책이 가득한 곳에서, ‘언젠가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책장 한 칸을 대여한다라. 두 공간은 어쩐지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해 보였다. 동떨어져 있지만, 동시에 이상하리만치 닮아 있었다.



언젠가의 꿈이 실현되는 공간     


썸데이북스의 입구에는 ‘Someday is Today (언젠가는 바로 오늘)’이라는 서점의 이념이 적혀 있다. 서점은 자신들이 내세운 문구처럼, ‘언젠가 해 봐야지’라는 다짐들을 지금, 이 순간 실현해 볼 수 있도록 해 준다. 꿈의 실천을 위해 서점은 책장 한 칸을 10주 동안 빌려주는데, 책장을 임대한 사람은 10주 동안 ‘한 칸’의 상점 주인이 되어 자신이 원하던 바를 마음껏 펼쳐볼 수 있다. 서점 주인은 물론, 문구 상점과 소품 상점을 비롯해 브랜드 쇼룸까지, 상상의 나래로만 펼쳐보았던 막연한 꿈을 작게나마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페잇퍼와 연결된 건물 로비를 지나 2층과 3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면, 언젠가의 꿈이 담긴 책장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겉보기에는 전부 같은 나무 책장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칸마다 저마다의 개성 넘치는 콘텐츠와 꾸밈새로 가꾸어져 있다. 스무 개 남짓한 무인 상점들이 모인 ‘책장 상가’의 상단에는 각 상점을 소개하는 팻말이 있었는데, 새하얀 하드보드지에는 각 상점이 내보이고자 하는 가치관과 지향점이 적혀 있었다. 그 아래로 보이는 ‘책장 상가’의 한 동에는 하나 혹은 두 개의 상점들이 들어서 있었고, 상점마다 설치된 박스 재질의 종이 차양에는 상호명을 적은 귀여운 간판도 붙어 있었다. 책장 한 칸에서 운영되는 상점들이었지만, 작은 공간은 제법 번듯한 상점처럼 꾸려져 있었다.     



무형의 가치를 판매하는 상점     


‘공유 서점’이라는 말만 들으면 책장마다 책으로만 가득할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썸데이북스의 책장은 그리 단조롭지 않다. 우선, ‘책장 상가’에 입점한 스무 개 남짓한 상점들에서는 대부분 책을 판매하고 있지 않았다. 여행기나 전시 도록, 그림책이나 수필집 등 몇몇 상점들에서 책을 판매하고 있기는 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상점에서는 책을 팔고 있지는 않았다. 상점 내에 책이 ‘마련되어’ 있는 곳은 있어도, 책을 상품으로 내놓는 곳은 다섯 손가락 이내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썸데이북스의 책장 상가에서 ‘책’은 필수 요소가 아니었다.      


서점에서 책을 팔지 않다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실제로 서점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몇몇 서점들을 살피기 시작하며 ‘서점=책을 구매하는 장소’라고만 생각했던 내 단순한 고정관념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제야 일본의 공유 서점을 소개하는 글에서 아주 빈번하게 등장하는 문구인 ‘나의 취향을 공유하는 공간’이라는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곳 상점의 주인들은 책을 팔려고 가게를 차린 사람들이 아니었다. ‘상점’이라는 구실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나만의 특색 있는 취향’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공유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 아닌,
내가 선호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더 많은 이들에게 내보이고 자랑하는,
개개인을 대변하는 팝업스토어이자 쇼룸이었다.



그날 보았던 몇몇 상점들 중, 인상깊었던 몇몇 공유 서점을 소개하자면, 먼저 <소원의 스낵바>가 있다. <소원의 스낵바>는 ‘상실, 이주, 불안을 경험한(혹은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스낵바’라는 컨셉의 상점으로, 이야기와 음식을 함께 ‘제안’하는 곳이다. 그렇다. 판매가 아닌 ‘제안’. 이곳 상점에서는 아무것도 판매하지 않는다. 그저 제안할 뿐이다.     


그래서 <소원의 스낵바>에는 상품 대신 ‘상실, 이주. 불안’이라는 키워드에 걸맞은 다양한 작품을 추천하는 팻말이 전시되어 있다. 추천하는 몇몇 책들은 실제 책장에 꽂혀 있기도 하지만, 판매용은 아니며 단순 열람용이다. 책들 곁에는 종이로 된 메뉴판도 놓여 있는데, 메뉴판에는 ‘상실, 이주, 불안’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추천된 책들과 어울리는 코스 메뉴와 음식, 그리고 음식의 재료들이 적혀 있다. 그러나 메뉴판이 있다고 하여 실제 음식을 먹을 수 있거나 근처에 식당이 있는 건 아니다. 단지 책과 키워드에 어울리는 음식과 재료를 그저 읽을 수 있을 뿐이다. 즉, 이곳은 판매를 위한 상점이라기보다는 상점 주인의 취향과 가치관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픈 마음으로 만들어진, ‘취향을 제안하는 가상의 상점’인 것이다.     



또 다른 상점으로는 <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가 있다. 이곳은 실제 책을 판매하는 서점이긴 했지만, 이곳 또한 판매보다는 애정하는 취향을 공유하고픈 마음이 앞선 공간이었다.     


<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는 19세기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덕후가 운영하는 상점으로, 상점 주인이 직접 번역한 디킨슨 시집(한국어 번역본)을 파는 곳이다. 서점을 장식하는 디킨슨 시집의 표지가 아름다워 책만으로도 충분히 눈길이 가지만, 책장 가까이에 가면 갈수록 눈을 사로잡는 건 책만이 아니다. 이곳 책장은 벽면 구석구석 에밀리의 시를 인용한 구절이 붙어 있으며, 책장의 중앙에는 디킨슨의 시가 수록된 책갈피와 엽서도 마련해 두었다. 책을 제외한 굿즈들은 전부 판매용이긴 하지만, 0원부터 손님이 마음 가는 대로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 시인 ‘에밀리 디킨슨’과 그녀의 시구절이 가진 아름다움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려는 상점 주인의 마음이 슬며시 엿보이는 대목이다.      



책이 아닌 무형의 경험을 판매하는 상점들도 있었다. 독서 모임(<다락방의 미친 여자들>), 희곡 읽기 모임(<Read it! Read me!>) 스토리와 함께하는 요가 수업(<Story in Yoga>), 셀프 타로 리딩(<Murim(무림)>) 등, ‘무인 상점’에서 팔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무형의 가치’ 상품들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다. 특히, 무형의 상품을 파는 상점들은 자신들의 판매하는 ‘경험’을 소개하기 위해 책장을 쇼룸처럼 꾸며 놓았는데, 상점이 내세우는 가치와 지향점에 따라 한 칸의 공간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다르게 장식되어 있었다.  

   

이 외에 책이 아닌 것들을 파는 상점들도 있었다. 디자인 문구와 실링 왁스, 뜨개 인형과 목욕용품, 보드게임, 식물과 중고 물품 등, 책이 아닌 상품들 또한 가지각색이었는데, 다른 서점에서는 자못 특별하게(?) 보이는 이러한 물품들이 이곳에서는 반대로 가장 평범하게 느껴졌다.      



썸데이북스 책방에 대한 짧은 Comment     

‘책장 한 칸’이라는 작디작은 공간에서 문을 연 상점이었지만, 누군가의 꿈으로 이루어진 한 칸의 세계는 결코 작지도, 가볍지도, 단조롭지도 않았다. 저마다의 취향과 개성으로, 조밀하고도 화려하게 채워진 책장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기한 풍경과 볼거리를 보여주었다. 썸데이북스는 상점 주인들의 살뜰하고 열성적인 마음이 모여 만들어진, 다채롭고 풍요로운 서점이었다.     


썸데이북스를 권하고픈 이들     

1. 국내에는 생소한 ‘공유 서점’을 경험해 보고 싶은 사람
  : 책장 한 칸마다 각기 다른 주인이 있는 ‘공유 서점’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한참 유행인 공유 서점이지만, 아직 국내에는 개념마저 생소한 공유 서점을 실제 눈으로 보고 체험해 보고 싶다면, 썸데이북스에 가 보길 추천한다.     
2. 이색 서점을 좋아하는 사람
  : 한 권 서점, 블라인드 북, 특별한 북 큐레이션과 같이 책을 활용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이색 서점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3. 북페어와 일러스트페어 등 다양한 ‘페어’를 좋아하는 사람
  : 서점에는 저자가 직접 책을 판매하는 독립출판 상점들이 있으며, 다양한 분야의 ‘사부작러’들이 만든 물품을 판매하는 상점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디자인 문구, 스티커, 실링 왁스, 뜨개 인형, 보드게임, 타로카드, 인테리어 소품 등 손으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상품들을 구경하고 싶다면, ‘썸데이북스’를 추천한다!     



썸데이북스 

홈페이지  https://litt.ly/someday_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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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잇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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