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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달 모나 Monah thedal Sep 28. 2024

질투, 비교, 경쟁, 성공에 매몰되지 않는 법

<추억 수리 공장>, ‘서점 마계’에서 우연히 만난

질투, 비교, 경쟁, 성공에 매몰되지 않는 법, <추억 수리 공장>, ‘서점 마계’에서 우연히 만난



행복은 남에게서 뺏을 수 있는 것도, 누군가를 짓밟아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야. 눈앞의 일을 하나하나 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손에 들어오지. 남을 부러워하고 타인의 행복을 빼앗으려는 자가 가장 불행한 자야. 열 살짜리 아이도 이해하는 것을 너희는 수십 년, 수백 년이 지나도 모르는구나! (p.405)

- 이시이 도모히코, <추억 수리 공장>


추억의 가치란 무엇일까요. 다만 그리워할 뿐이라 어쩐지 시간 낭비 같고, 지나간 세월에 미련이 남아 질척거리는 것 같은데 말이죠. 대체 왜 우리는 이미 지나버린 시간에 유달리 애착을 가지며 놓지 못하는 걸까요. 아니, 왜 놓아서는 안 되는 걸까요.      


지브리 스튜디오 출신 작가 ‘이시이 도모히코’는 소설 <추억 수리 공장>을 통해 나름의 답을 내놓습니다. 소설은 열 살 소녀 ‘피피’가 할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인 로봇 인형 ‘프리츠’를 수리하기 위해 꿈의 세계에 있는 추억 수리 공장 ‘아시토카 공작소’에 취직하며 시작됩니다. 아시토카 공작소는 할아버지의 제작소를 통해서만 갈 수 있는 꿈의 세계의 공간으로, 장인인 할아버지께서 살아생전 거래하던 거래처(?) 중 하나였죠.    

  

아시토카 공작소는 추억이 깃든 물건을 수리하는 꿈 세계의 공장입니다. 한때 번성했던 공작소는 최근 들어 한 가지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수리한 물건들이 자꾸만 반품된다는 것이죠. 몇 날 며칠 동안 수리한 물건들이 자꾸만 돌아온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도 좌절스러운 일이지만, 그보다 더 우려스러운 건 추억에 가치를 두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수리한 물건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정도가 아니라, ‘이런 물건을 맡긴 적이 없다’며 추억을 잊기 일쑤였고, ‘고리짝 물건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등의 말을 하며 추억 자체를 외면해 버리는 이들도 있었으니까요.     


추억을 잃는다는 건 단순히 과거의 어느 순간을 잃는 것 이상으로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추억을 망각하면, 꿈의 세계는 존재의 이유를 잃게 되고, 그건 곧 꿈 세계의 종말을 의미했죠.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추억이 사라지며 현실이 조금씩 변해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변화한 건 마을에 나타난 새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피피가 살고 있는 현실, 카를레온 시에 등장한 검은 옷의 사내들. 똑같은 검은 선글라스와 양복, 구두와 가방을 든 세 명의 사내들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얼마나 ‘비경제적인’ 일인지를 설파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마을의 오래된 건물들, 시계탑과 할아버지의 공작소처럼 추억을 회상하게 만드는 오래된 모든 것들을 청산해야 한다고 설득했죠. 과거를 벗어나야 비로소 미래로 향할 수 있고, 그래야 마을이 더 부흥할 수 있다면서 말이죠.      


그렇게 마을은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피피의 부모님과 시장 가족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점차 과거를 잊고, 현재와 미래에만 매몰되기 시작했죠. 마을의 고건물은 하나씩 철거되고, 그 자리에는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장인들은 하나둘씩 직업을 잃고, 신식 프로그램으로 대체되어 갔고요. 아이들을 교육하는 방법도 바뀌었습니다. 아이들은 더 이상 골목과 놀이터를 뛰놀며 어른들에게 오래된 지식을 배우지 않습니다. 대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하죠. 일단 현재에서 앞서나가야 미래에 더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제 시계탑 광장을 가득 채우던 사람들, 웃음꽃을 피우던 아이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제 갈 길 가느라 바쁜 회색 인간들이 대체했습니다. 가족들은 대화를 잃고, 마을은 웃음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헤실거리며 시답지 않은 이야기나 하는 건 비효율적인 짓이니까요. 현재를 더 잘 살려면 아무래도 생산적인 일에 더 매진해야죠.     


하지만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활개를 칠수록, 어쩐지 사람들은 공허해집니다. 분명 마을이 발전하는 중임에도 무언가를 얻는 게 아닌 잃는 기분이 듭니다. 건물이 하나씩 철거되고 새 건물이 세워질수록 기세가 등등해지는 건 검은 옷의 사내들뿐입니다. 하지만 상실은 기분일 뿐이라 누구 하나 내색하지 못합니다. 아이들만 어른들의 변화를 무의식중에 눈치채고 있을 뿐이죠. 반면, 꿈의 세계는 실질적인 소멸 위기를 맞습니다. 검은 옷의 사내들이 공장들을 하나씩 폐쇄하며, 마을에 남은 건 피피가 몸 담고 있는 아시토카 공작소뿐입니다.     


하지만 아직 방법은 있습니다. 카이저 슈미트의 손녀가 잊어버린 마지막 추억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슈미트가 마지막으로 수리하려 했던 물건이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만 있다면, 검은 사내들을 물리치고 마을과 꿈의 세계 모두에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거든요. 카이저 슈미트의 손녀가 누구냐고요? 얼마 전, 공작소에 새로 들어온 견습생 ‘피피’. 그 아이가 바로 카이저 슈미트의 손녀입니다.     


피피는 그렇게 두 세계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 됩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기억해야 한다’고 합니다. 피피는 혼란스럽습니다. 기억해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지만, 공작소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자신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던 공작소의 수장 지사마, 무뚝뚝하지만 살뜰한 즈키, 포근한 마음으로 모두를 품어주는 레이디, 장난꾸러기지만 마음이 깊은 에르네, 세 마리의 곰돌이 가족 무샤, 메샤, 미샤. 그리고 현실 세계에 있는 가족들과 한때 친구였던 아이들까지. 피피는 기억해내야 합니다. 할아버지가 남기고 간 마지막 유산. 어쩌면 할아버지의 죽음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는 최후의 순간. 그 기억만이 모두를 살아있게 할 수 있습니다. 과연 피피는 마지막 기억을 되찾아 절망에 빠진 두 세계를 구할 수 있을까요?     

 



책을 읽으며 어쩐지 피피의 세계가 낯설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현재만을 뒤쫓는 사람들, 끝없는 비교와 경쟁, 질투와 비방, 언제든 날이 서 있어 서로를 찌를 것처럼 적개심에 차 있는 분위기. 어딘가 익숙하지 않나요? 정말 일본 작가가 쓴 소설이 맞는지 여러 번 찾아볼 정도로 소설은 지금 우리의 세태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추억 수리 공장>은 이처럼 변화하는 시대 속, 어떤 가치들을 상실해 버린 현실에 대한 재고를 촉구하는 소설입니다. 좀 더 쉽게 풀어 설명하면, ‘너무 빨리 변해가는 사회에서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고찰하게 하는 책이죠.      


작가가 정의한 우리의 상실은 ‘추억’이라는 단어로 일축됩니다. 여기서 추억이란 ‘쉽게 잊어서는 안 되는 과거의 중요한 시간’을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표현입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기억과 추억으로 구성된 시간의 집합체입니다. 매일 지나치는 순간들, 경험들, 생각들이 모이고 쌓여 ‘나’라는 인간의 지성과 감성이 완성되니까요. 그래서 과거는 현재만큼 중요합니다. 현재가 미래만큼 중요한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과거라는 시간이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아진 듯합니다. 전통은 케케묵은 꼰대들의 습관이고, 추억은 보정된 사진이 되어 나를 자랑하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죠. 두꺼운 앨범에서 한 장씩 꺼내, 잔잔히 즐기던 추억의 순간은, 이제 과거의 산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천천히 과거의 시간을 돌이키는 것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아졌기 때문이죠. 유행은 순식간이고, 새로운 지식들은 범람하고, 우리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현재와 미래만 준비하기에도 벅찬 현실 앞에 과거는 자연히 후순위로 밀려나게 됩니다. 과거에 목메는 건 아무래도 치밀한 미래 계획보다 건설적이지 못하게 느껴지니까요.     


그렇지만 과연 그럴까요. 작가는 어린 ‘피피’의 관점을 통해 그런 현 세태에 제동을 겁니다. 현재와 미래에 매몰되어 각박해지는 사람들, 과거를 잊으며 아수라장이 되는 관계들을 보여주며 ‘과거’가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를 그려냅니다. 작가의 정의에 따르면 과거는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되새기고, 그럼으로써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알게 해 주는, 방향키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현재가 엔진이고, 미래가 돛이라면, 과거는 하드웨어를 제어하는 소프트웨어인 셈이죠. 우리를 진정 우리답게 만들어 주는 원천은, 현재도 미래도 아닌 과거에서 비롯된 것일 테니까요. 그러니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과거를 잊는다면 그건 곧 현재와 미래의 항해를 반쯤 포기하는 셈일 겁니다.      


작가는 그래서 과거를 잊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과거가 빛났다면 영광에서 학습할 수 있고, 과거가 어두웠다면 반성하고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할 테고요. 과거가 어떤 모양인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지나온 시간들을 찬찬히 되짚으며 정리하다 보면, 좀 더 정제된 시각에서 ‘나’라는 사람을 재정립할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나’를 기준으로 한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게 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것이니까요.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굳은 심지를 찾는 방법이 바로 추억과 기억에 있는 것이죠. 진정 우리다운 게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면, 어떤 변화에도 쉽게 휩쓸리지 않고 버틸 수 있을 테고요.      


현재에 매몰되어 바로 곁에 있는 남과 비교하고, 질투하며, 성공에만 골몰하며 끝없이 경쟁하는 현실. 어쩌면 이런 현실을 진정시킬 방법,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걸 방지할 방법이 추억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를 잊지 않은 민족에게 현재는 과거를 만회할 혹은 발전시킬 기회가 될 것이고, 미래는 현재를 전복할 또 다른 기회가 될 테니까요. 우리는 자주 잊어버리지만, 시간은 점이 아닌 선입니다. 과거를 기억한다는 건, 시간이 선이라는 걸 아는 것일 테고. 그건 곧 과거의 실패가 현재의 성공 발판이 될 수 있으며, 현재의 실패 또한 미래의 거름이 될 수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일 겁니다. 그러니 한 번의 실패가 영원의 실패가 되지 않기 위해서, 누군가의 실패를 영원한 패배자로 낙인찍지 않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아마도 추억 공부이지 않을까 합니다. 시간이 점이 아닌 선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영원한 패자도 승자도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고. 그러므로 현재의 질투도, 비교도, 경쟁도, 우리가 생각한 만큼의 대단한 의미가 없다는 걸, 마침내 깨닫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이 책을 우연히 만날 수 있었던 이유


서점 마계




< 우연히 만난 책들 >


책방 여행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방을 방문할 때마다 공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을 한 권씩 구매합니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책들을 그냥 묵혀 두기 아까워 책에 대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 우연히 만난 책들 >은 그렇게 탄생하게 된 글 모음집입니다.

글에서는 책방에서 책을 고른 이유와 책에 대한 소소한 감상을 담고 있습니다.





그달 모나 Monah the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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