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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癌

나의 암에 대하여...

by 레드베리RedBerry

통증도 없고 아픈 증상도 없는데,

전신 전이가 된 난소 4기라니...


25년 2월 초 건강검진에서 우연히 1cm 정도의 작은 유방암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 작은 유방암은 전이된 암이었고, 최종 진단은 난소암(복막암) 4기 말이며 유방과 흉막, 림프절까지 전이가 된 아주 심각한 상황이라 몸 전체에 암이 퍼져있어 수술을 할 수 없는 사이즈였다.... "그래서 전신 치료인 항암 치료를 해야만 하며, 항암으로 암이 좀 줄어 들게 되면 그때 수술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라고 담당 교수님이 말씀 주셨다.

(*난소암과 복막암이 같은 암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이후 설명 예정이다.)


나는 술도 마시지 못하며,(본투비 알쓰이다) 담배도 안피고, 커피도 디카페인 위주로 먹는다. 카페인도 거의 섭취하지 않으며, 인스턴트를 좋아하지도 않고, 비만도 아니다. 발암물질을 유도하는 육류를 매일 먹지도 않는다.

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잘 지내려고하는 평범한 40대 중반의 직장인이다.


한국인이라면 많이 가지고 있다는 위염도 역류성 식도염도 장염도 없으며, 건강검진도 1년도 아니고 6개월에 한번씩 받아왔다.(나의 직장과 남편 직장의 배우자 건강검진까지 추가로 굳이 각각 받음)

그리고 별도로 이상이 있으면 로컬병원에서 검사도 추가로 받아왔다. 사실 조금만 아파도 병원을 잘 가는 편이다. 24년 6월 혈액 수치가 약간 튀어서 로컬 산부인과에 가서 진료 받고, 불안하여 24년 7월 대학병원 산부인과에서 복부 CT도 찍었었었는데, 그때도 아무이상 없이 깨끗하다고 결과를 받았었다.


가장 의문을 가졌던 것은 내가 느끼는 내 몸에는 아무런 통증이 없었다는 것이다. 정말 멀쩡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내가 통증에 둔감한 편은 절대 아니다. 나는 예민하면 더 예민한 타입이었다.


암 진단을 받던 날...



길었던 설 연휴 이후에 연차를 추가로 냈다, 그 날 1차 병원(집 근처 로컬 유방외과)에서 건강검진차 초음파를 했다. 가슴 아래 명치쪽에 모기 물린 것 같이 약간 부어오름이 있었지만 아프거나 한건 아니었다. 작년 12월 사촌 여동생이 유방암으로 갑자기... 하늘나라를 가게 되었고, 나도 건강검진센터에서 말고 별도로 한번 받아봐야겠다고 생각했었던 터였다.


초음파 결과를 보며, 어느 한 곳을 보여주며, 염증 같긴 한데 모양이 좀 애매하다고 혹시 모르니 조직검사를 추가로 받아보자 담당의사의 말에 "네 그럴께요" 하고 별 생각 없이 조직검사를 받았다. 조직검사는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초음파 후 맘모톱으로 조직검사를 받았고 수술도 했다는 주변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마취 주사만 아프고, 금방 끝나요." 라고 담당의사가 말했다.

조직 검사는 국소마취를 한 후 큰 바늘을 꼽아 조직을 채취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일주일 후 병원(1차 병원, 집 근처 로컬 유방외과)조직검사 1차 결과를 듣기 위해 방문했다.

간호사가 나를 보며 " 혼자 오셨어요?" 라고 말했다. 당연히 난 "네" 라고 대답했다.

순간 '아...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라고 잠깐 생각했다.


불안한 걱정은 현실이 되었고, 조직 검사 1차 결과는 악성 종양인 암이라고 진단을 받았다.

담당의사 선생님은 먼저 말씀 주셨다.

"유방암으로 진단이 나왔어요" 나는 대답했다. " 아..네"


암이라고 말씀을 듣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작년 초에 보험을 좀 슬림화 시키면서 암진단금도 축소시킨 것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고정비가 많이 나가는 것을 줄이고자 필수만 냅두고 보험료를 축소했다.

'보험...괜히 줄였네...'라고 속으로 떠올리며, 나는 정말 편하게 살 운명이 정말 아닌건가....라고 생각했다.


나의 은 모든 것이었다.

그리고...은 내 모든 것을 틀어지게 했다.


2007년 입사해서 나는 한 회사에서만 16년동안 쉼없이 일했다. 유통업계중 메이저 홈쇼핑에서 마케터로 일하며 몸과 마음이 정말 지쳐 있었고, 실적과 행사 이벤트... 그리고 매출의 압박이 없는 곳으로 업계를 변경하여 이직을 하고 싶었다. 매일 매일 돗데기 시장과 같은 곳에서 정신없이 일하며

(굉장히 버라이어티하고 다양한 인간 군상과 에피소드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아마 같은 업계에 있는 분들 중 대부분은 동의 할것이라고 생각한다.)


의미없는 회의와 수많은 보고자료를 생산하였으며, 시키지 않는 일도 스스로 하면서 나 자신도 계속 괴롭히고 있었다. 휴일에 쉬어도 쉬는게 아니었다. 주말에도 모니터링을 하고...잠을 자고 있어도 회사와 나는 연결 되어있고 머리 속은 계속 켜져 있었다.


나의 홈쇼핑에서의 업무는 온라인 마케팅 업무였다. 쉽게 말하자면 온라인몰의 상품에 할인 쿠폰을 붙이고 예산에 맞춰 적립 프로모션을 하고, 시즌과 상품 브랜드에 맞추어 비슷한 이벤트와 행사, 기획전 등을 세포분열 하듯이 정말 계속 증식만 시켜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결과가 100% 잘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랜덤이었다. 위로는 압박이 들어오고 아래에서는 불만을 토로했으며 동료들도 모두 지쳐있고, 모두가 화나있고 분노에 가득차 대화를 하며 조금의 스트레스를 풀었다. 나는 갈수록 회의감을 느끼고 우울해져갔다. 그렇게 죽을 것처럼 열심히 하니 회사에서 성실히 하는 것은 인정을 해주었으며, 관리 직책까지 맡게 되었다.

(하지만 평가에 있어서는 만족하진 않았다. 항상 나는 내가 한 것 보다 항상 평가를 덜 받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과평가를 좀 더 잘 받고 덜 받고는 전혀 중요한건 아니었는데.... 당시에는 평가 등급과 상사가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거나 이건 아니야, 좀더 잘할수 없니? 라고 욕을 먹거나 하는 것들이 나에 모든 것을 좌지우지 했었다.)


이커머스는 치킨게임이며 매순간이 경쟁이다. 아무리 대기업일지라도 쿠팡과 네이버가 점유율이 이렇게 급속도로 늘고 있는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흘러가는 시장 흐름의 판도를 바꾸는 것은 한 개인이나 한 기업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려가는 물결의 파도에서 나와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2020년 코로나이후로 온라인을 절대 하지 않았던 곳들까지 디지털로 전환되고 부터 난 그렇게 생각해 왔고,2025년 6년이 지난 지금 예상대로 그렇게 되버렸다.)


그러면서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유통업에서의 마케팅 보다 좀 더 한 가지에 집중하고 싶었다. 유통업 말고 더 마음편한 업계이자 (좀 더 갑인 위치에 있는 업이자 회사가 마음이 편한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그냥 유통이 아니면 다 좋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더 좋은 회사에서 일하고 싶었고, 더 인정받고 싶고, 돈도 더 많이 벌고 싶었다.


(유통업을 절대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 당시에 나는 한 회사에서만 너무 오랜기간 있어 나자신을 우물안 개구리라고 생각하였고, '내 인생에서 한 회사만 다니고 끝낼 수는 없다' 라는 그런 생각이 어느 순간 들게 되었다. 그래서 어서 탈출을 하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다. 사실 그 곳이 감옥도 아니었고 그렇게 최악은 사실 아니었다는 것은 회사를 나와서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퇴사한 것을 절대 후회는 하지 않는다.)


내가 그렇다고 이제까지 일했던 커리어를 내팽겨치고 놀고 쉬고 싶진 않았다. 전형적인 일개미이자 뒤쳐지고 싶지 않고 열심히 살고 싶은 월급쟁이였다. 업계를 변경하여 이직을 하고 싶었다. 당시 최종면접까지 보고 레퍼체크를 앞둔 회사가 있었고, 그 회사로 이직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퇴사를 했었다.


꼭 그 회사가 아니어도 금방 다른 회사로 갈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직할 회사와 연이 닿지 않았는지 조직개편으로 TO가 없어지며, 환승이직은 하지 못했다. 이후 스타트업 회사에서 제안이 와서 합류해서 일을 하였다. 그리고 개인사업을 할까도 생각하고 잠시 발을 들여놨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스타트업이나 프리랜서 생활, 개인사업을 하는 것 모두 나의 자율성이 많이 보장되는 장점은 있었지만... 나는 그다지 스스로 먼가를 이루어내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래도 다시 기업에 취업을 해야될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정적인 월급을 받는 것이 난 가장 맞는 일이였구나생각했다. (목표를 주고 시켜야 일을 해야되는...) 어느 정도 강제성이 있고 인프라가 있어야 열정도 다시 살아나는 것인 사람이구나 라는 것을 자유를 주니 깨닫게 되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교육이 되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직장 생활외에 다른 삶을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글로벌 무역상사 중견기업회사의 신사업 팀장을 맡게 되었다. 무역을 디지털로 전환시키는 플랫폼을 사업을 성장시키고 운영과 마케팅을 하는 총괄 업무였다.

무역업은 처음 경험하게 되었지만 재미있게 하였다. 최종 의사결정권자님께 직보고를 하면서 의사결정도 좀 수월했고, 주말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이전 대비하면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렇게 회사생활을 할 수도 있구나...'라며 좋았었다.


18년 직장 생활하면서 가장 그래도 워라밸도 괜찮았고, 회사 위치도 서울 도심에 위치하여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에는 주변에 핫한 카페와 맛집도 다니며 즐겁게 생활하고 있었다.

출근 전과 퇴근 후에는 책도 보고, 가끔 친구들과 약속 잡아서 저녁도 먹었으며, 주말에는 영어 회화학원도 다녔다. 그리고 나의 커리어를 더 성장시키기 위해 마케터 선배분들과도 친목도 쌓고 외부 커뮤니티 활동도 하면서 앞으로 남은 40대외 50대의 커리어를 고민하며 은퇴 후엔 이렇게 살고 싶다 계획도 세우려던 참이었다.


"나의 암진단은 이렇게 계획해 놓은 모든 것이 다 틀어지는 순간이었다. "



암 癌 이 전신으로 전이될 때 까지...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세부 조직검사 결과는 일주일을 더 기다려야 했다. 세부 조직검사는 암의 유형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전이가 되는 암인지 아닌지 암의 타입에 따라 약을 어떤걸 쓰는지 치료방법은 어떻게 되는지도 많은 차이가 있다. 예후도 많이 달라진다.


치료는 3차병원 (상급병원, 대학병원)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가능한 병원 한 곳은 1차 병원에서 어렌지 해주었지만, 결국은 환자 본인이 직접 병원을 찾아보고 결정해야만 했다. 여러병원을 고민하다가는 치료를 하기까지의 시간이 더 길어지기 때문에 가능한 빨리 나에게 맞는 좋은 병원의 교수님을 찾아봐야만 했다. 의료파업 이슈로 전문의들이 없어 대학병원 예약을 빨리 잡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일주일 후 1차 병원 (집 근처 로컬 유방 외과)에서 악성종양으로 진단받은 조직의 검사 결과는 악성 종양인 *침윤성 암으로 진단으로 나왔으며, 타 장기로의 전이 여부는 별도 검사를 해야 알겠지만,

그래도 호르몬 양성, Her2 음성인 예후가 그래도 괜찮은 타입이라고 말씀 주시며, 큰 이슈가 없으면 3차병원(상급병원, 대학병원)에서 아마도 수술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을 주셨다.


*침윤성 암(invasive cancer): 암세포가 원래 발생한 부위(조직의 표면층)를 넘어, 주변 조직 깊숙이 침범한 상태, 전이 가능성이 생기기 시작한 단계로 림프절, 혈관 침범 가능성이 높음.

(1~4기로 진행정도에 따라 병기가 결정됨)

**반대 개념: 상피내암(0기 암) 암세포가 아직 기저막을 뚫지 않고 제자리(상피층) 에만 존재


대학병원의 유방외과 교수님의 예약이 기적적으로 바로 잡히게 되어 4일 후 대학병원 진료를 보았다. 1차병원에서의 조직 슬라이드와 초음파 영상을 보며 자료 영상 소견만으로는 아마도 수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을 주셨다. 대학병원에서 수술전 더 정밀한 사를 위해 정밀 초음파와 MRI, CT, 뼈스캔 검사를 한 후 명확한 치료 방향이 결정될 것이라 검사 일정을 잡아서 검사를 하였다.


초음파와 MRI, 유방 CT, 뼈스캔 검사 결과 흉수가 보여져 추가로 PET-CT 와 복부 CT까지 검사가 추가되게 되었다.(흉수: 폐에 물이 찬 것) 아무런 이슈없이 흉수가 보여질리는 없다고 하셨다.


PET-CT 검사는 암의 위치, 크기, 대사활성 정도까지 모두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는 검사이다. FDG(18F-fluorodeoxyglucose)라는 포도당과 유사한 구조의 방사성 추적자를 주입하면, 암세포는 이 FDG도 포도당처럼 흡수한 FDG는 세포 내에 들어가면 대사 경로에서 멈춰서 쌓이기만 하기 때문에, 많이 모인 부위를 영상으로 표현할 수 있다.

간략하게 말하면 아래와 같다.

암세포는 포도당을 폭식한다 → FDG를 빨아들인다 → FDG는 대사되지 않고 고이 쌓인다 → 방사선 방출 → PET로 감지 → CT로 위치 확인


암이 가장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은 포도당이 몸 안에 들어오면 그 포도당을 먹고 무럭무럭 자란다는 것은

내가 암에 걸리고 암에 관한 여러 정보들을 접하고 나서였다.

그래서 당뇨 위험 환자가 암에 추가로 걸리면 여러가지로 더 복잡한 치료 전략이 필요하다고 한다.

나는 혈당은 정상이라 그래도 다행이었다. 암진단이후 정말 설탕이나 단맛이 나는 것들이 아예 먹고 싶지 않아졌다. 심리적인 걸까... 달달한 것들은 나를 더 빨리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독약이라고 뇌에 박힌 것 같다.



PET-CT 와 복부 CT 검사 결과의 외래진료가 예정되어 있던 날 보다 빨리 진료를 보았으면 좋겠다고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그리고 진료 이후 바로 부인과 교수님 진료도 함께 보는 것도 유방외과 교수님이 연결주셨다고 전달받아 부인과 추가 진료도 잡혔다.


외과 교수님께서는 검사 결과 말씀 주시며, 영상에서 보여지는 것은 복부 쪽부터 가슴 목까지 암이 퍼져있는 것으로 말씀을 주셨다. 유방에 있는 암도 수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전신치료가 되야한다고 말씀 주시며, 외과에서 할 수 있는 전신치료가 아니고 부인과로 전과하는 것으로 연결해주신거라고 말씀 주셨다 교수님께 가서 진료 보면 치료방법을 말씀 주실 것이라고 하셨다.


그 전까지는 수술을 하고 암 덩어리를 떼어내고 이후 재발 방지 치료를 받고 회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순간이었다.


부인과 교수님께서는 암이 난소쪽에서 나와서 복막으로 퍼진 것으로 보여진다고 하시면서, 유방쪽에 파고든 암덩어리도 여러개 있다고 말씀 주셨고 흉막(폐를 감싸는 막이라고 한다)과 겨드랑이 림프절과 목까지 다 번져있다고 하셨다. 수술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사이즈이고 암이 전신에 퍼져있어 항암치료를 선제적으로 하고 이후 암사이즈가 줄어들게 되면 수술여부가 결정된다고 하셨다.


당시에는 복막암이 어떤것인지도 난소랑 복막이랑 무슨 관계인지도 명확하게 인지가 안되었기 때문에

단순하게 물었다. "심각한 건가요?" 교수님께서는 짧고 담담하게 말씀 주셨다. " 많이 심각하죠...."

병기로 따지면 4기 말이라고 하셨다.


"이렇게 몸전체에 아무데도 아픈 곳도 없는데 복막에 전이가 된 암 4기라고요?" 라고 나는 물었다.

교수님께서는 "네... 이게 원래 통증이 없어요" 라고 대답하셨다. 작년 7월에도 다른 대학병원에서 복부 CT를 찍었지만 별 이상이 없었다는 것도 말씀 드리니 복막암은 한 두달 만에도 다 퍼질 수 있는 암이라고 말씀을 주셨다. 그리고 나의 악성종양 변이 암은 속도가 빠른 암이었다.

(이후 찾아본 난소암들을 보니 난소암, 복막암은 조기검진 자체가 현재 의학으로는 불가능하며, 빨리 발견하게 되면 럭키한 것이라는 것도 추가로 알게 되었다.)


진료 당일 가능하면 당장 오늘 입원을 해서 *케모포트를 심고 항암 치료를 받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교수님께서 말씀주셨으며, 나는 당장 치료가 급한 것이라는건 이대로 냅두면 큰일나는 것이 맞는 거구나라는 것을 체감했다. (진료 본 당일 병실은 바로 준비가 안되어 익일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다.)


*케모포트는 정맥(혈관)을 통해 심장 가까이의 굵은 혈관까지 삽입되는 관(카테터)의 일종으로, 동전만한 크기의 원통형 기구를 피부 밑에 이식해서 여기에 혈관으로 통하는 주사관이 연결되는 것이다.

몸 밖으로 나와 있는 부분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일상생활을 하는데 불편감은 없다. 매번 팔의 혈관을 찌르는 불편을 덜어주어 항암치료 등 반복해서 정맥주사가 필요한 환자의 치료에 유용하다.


최종 진단은 난소암으로 진단이 나왔다 복막과 난소는 같은 암으로 본다. 그래도 난소라는 장기 자체 에는 암으로 보여지는 결절이 현재로서는 나타나 보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아무래도 원발성 복막암일 수 있는 것으로 추정이 되는 것이다. 나와 같은 케이스는 정말 희귀하고 거의 없는 케이스라고 말씀을 주셨다.


그래도 위와 소장,대장, 간으로 전이가 된 것보다는 위쪽으로 전이가 된게 차라리 나은것 같다고 나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추가로 뼈전이는 현재까진 없었다. 것도 다행이었다.


검진 등 초음파를 하며 별도로 장기에서 조직을 떼어내어 조직검사를 하거나 암 수술 시 떼어낸 조직들의 검사를 하여 그 조직의 세포가 암세포인지 아닌지 알기 전까지는 영상상의 검사만으로 의사들도 진단을 내린다.

온몸을 다 바늘로 찔러 조직을 체취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하다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장기들이 손상을 입게 된다면, 그건 더 위험하다. 모든 암이 다 조직검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가끔 암인줄 알았는데 수술 후에 암이 아닌 경우도 있고, 수술을 하러 배를 열어보니 영상상 보이는 것 보다 너무 많아 수술을 하지 못하고 다시 배를 닫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


드라마에서나 영화에서 보면,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특히나 초기암이 아닌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심각하다고 말하면 충격을 받으며 눈물을 흘리거나 쇼크를 받는 장면이 대부분 이어진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드라마틱 하지는 않았다.눈물도 나지 않았고, 통증이 없었기에 정말 암이 퍼져 있는 것이 맞는 건가 의심이 들었다.


치료를 하게 되면 내가 계획했던 일상이 무너지는 것들이 걱정이 되었다. 회사에서도 내가 하고 있는 과제들은 어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으며 항암을 먼저 하면 병행하면서 할 수 있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교수님께 직장과 병행이 가능하냐고 물어보니

"그건 좀.... 힘들긴 할텐데..." 라고 말끝을 흐리셨다.


수술은 가능하고 치료는 될거라고 말씀은 주셨지만 사실 4기 말이면 살 날이 얼마 안남은 거 아닌가..

생존율은 얼마정도 되는 거고... 정말 가망은 있는 걸까...? 얼마정도 살수 있는지 물어보면 당연히 당장 죽는다고 말하진 않을테니 그건 물어보지 않는게 낫겠지... 생각을 하며 항암 치료를 최대한 빨리 하겠다고 대답했다.


항암은 3주 간격으로 3번 진행되고 이후 복부CT를 찍어보고 수술여부를 결정한다고 말씀 주셨다.

진료실을 나가면 수술 상담실로 가야된다고 말씀 주시며 그 곳에서 추가로 병실예약등 설명을 해주신다고 하였다.


의사도 객관적인 자료들로 추정을 하는 것이다. 치료가 된다는 아니면 어렵다는 1%를 100%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해봐야 아는거다. 항암약이 잘 들을지 안들을지 나의 암이 없어질지 더 증식될지는 아직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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