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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초롱 Dec 14. 2020

프리랜서, 노브랜드 탈출하기

나의 직업에 이름 붙이기

* '연차는 의미없는 노브랜드 잔혹사'에서 이어집니다.


자, 그럼 나만의 브랜드를 쌓아볼까? 라고 결심한 당신을 위한 실전 팁을 공개한다. 나는 취미 플랫폼 프립에서 ‘언젠가, 프리랜서’라는 주제로 북클럽을 운영했다.(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오프라인 모임을 멈췄다) 언젠가 모두 프리랜서가 될 세상에서 우리가 어떤 준비를 할 수 있을까 함께 이야기해보는 모임이다. 이곳에서 진행하는 ‘자신만의 브랜드 쌓기’ 워크숍의 단계는 다음과 같다.

관계없는 사진 주의

① 나를 정리하는 브레인스토밍 


첫 번째, 내가 이제까지 해왔던 혹은 관심있는 분야나 작업물, 키워드를 브랜인스토밍하고 천천히 그것들을 지우거나 결합하면서 마지막 한 단어가 될 때까지 남겨보는 일이다. 꽃과 디자인, 수공예, 그림 등의 키워드를 가진 프리랜서는 자신의 키워드를 결국 ‘플라워디자이너’로 잡았고, ‘프랑스어, 연구, 음식, 문화’라는 키워드를 적은 프리랜서는 자신의 브랜드를 ‘프랑스어 번역가’로 잡았다. 플라워디자이너는 자신의 키워드를 어느 정도 봉합한 편이지만, 프랑스어 번역가는 작업 중에 자신의 키워드 몇 개를 탈락시켜야 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무슨 일이든지 일단 받고 싶은 마음에 지나치게 광범위한 키워드를 잡는 일이다. 


잡지에 들어가는 글을 워싱하고 인터뷰를 해주는 일을 맡았던 한 프리랜서는 자신의 일을 ‘전방위 기획자’로 잡았다. 어떤 글이든 청탁을 받을 의지가 있고, 어떤 기획이든 잘 해낼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프리랜서에게 전문적인 일을 맡길 클라이언트는 없다. 일을 맡기려고 했을 때는 대개 그 일의 핵심 키워드로 어울리는 사람을 떠올리거나 검색하기 마련인데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프리랜서’를 검색할 확률은 아주 낮다. 그녀가 전방위 기획자로서 멋지게 활동할 수는 있겠지만, 새내기 프리랜서로서 시장에 자리 잡기에는 불리한 조건이다.


때로는 키워드가 절대 합쳐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한 프리랜서는 스포츠용품을 파는 쇼핑몰을 운영해서 쏠쏠하게 수입을 올리면서도, 콘티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놓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녀의 쇼핑몰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쪼리와 그녀가 꾸준히 만드는 드라마 콘티는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도 공통의 키워드가 없어보였다. 결국 그녀는 두 키워드를 하나로 합치는 것을 포기하고 두 개의 브랜드를 따로 잡고 가기로 했다. 사람이 브랜드가 되지 않고, 제품이 브랜드가 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② 영역을 확실히! 콘셉트 잡기  


두 번째, 키워드를 다 만들면 그것을 누군가의 눈에 들 수 있게 독특하게 바꾸거나 정교화하는 작업을 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어 번역가’는 그 사람이 아니어도 많다. ‘플라워 디자이너’도 다른 플로리스트와 큰 차별이 없어 보인다. 프랑스 문학을 번역하고 싶을 때 ‘프랑스어 번역가’라는 타이틀보다는 ‘프랑스 문학 번역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프리랜서를 찾을 확률이 높고, 웨딩에 사용할 꽃을 디자인할 사람을 찾을 때는 ‘플라워 디자이너’보다 ‘웨딩 플로리스트’를 찾을 가능성이 많다. 그 두사람은 ‘프랑스 문학 번역’과 ‘웨딩 플로리스트’로 자신의 키워드를 구체화했다. 물론 이 키워드는 막 프리랜서 업계에 들어온 프리랜서들에게는 오히려 일감이 들어오지 않는 한계가 될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프리랜서에게는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세 번째, 줄이고 줄여서 만든 자신만의 직업 이름을 중심에 놓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덧대어 나간다. 지금까지가 키워드를 줄이는 방법이었다면 이제는 그렇게 줄인 키워드를 다시 넓히는 방법이다. 의료용 아랍어 통역을 하는 사람은 중동에 사는 동안 중동 음식과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중심 일은 의료용 아랍어 통역이겠지만, 그의 확장성은 음식과 문화로 언젠가 뻗어갈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그의 키워드가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을 때를 대비해 큰 그림을 그리는 셈이다.


자신만의 키워드를 만드는 일을 해보면 꽤 신난다. 이제까지 세상은 다양한 직업을 제시하며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객관식 질문을 줬다면, 이제는 내가 세상에 주관식 답을 써내는 기분이다. 세상에 없던 직업명을 새로 만드는 일, 자신만을 위한 직업 이름을 지어보는 일은 내 일에 주체성을 갖겠다는 결의를 담은 의식에 가깝다. 


③ 업데이트와 아카이빙은 스타일링의 기본  


내가 그럴 듯한 직업 이름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그것을 나만 알고 있다면 사실 ‘브랜드’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몇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첫 째는 자신의 개인 작업물들을 온라인을 통해 부지런히 아카이빙 하는 일이다. 페이스북, 인스타, 트위터 , 네이버블로그 같은 SNS에 작업물을 꾸준히 올리거나 자신만의 전시회를 여는 것, 방송에 나가거나 책을 내는 일,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자신을 알리는 일이 모두 아카이빙이다. 클라이언트에게 보여줄 포트폴리오를 부지런히 업데이트 하고 이곳저곳에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배포하는 일도 프리랜서가 해야 할 영업이다. 그런면에서 프리랜서를 한다는 건 자질구레한 일을 해내는 수고를 감내하는 일이자 영업을 뛰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만한 가슴을 지니는 일이다. 나의 음악은 너무 훌륭하니까, 내 수공예품은 국보급이니까. 그런 이유로 자신의 집에서 혼자 연주를 하거나 물건을 만든다고해도 알아줄 사람은 없다. 점잖게 뒷짐을 지고 누군가 자신의 고고함을 알아주길 기다리는 선비정신이 프리랜서에게 어울리지 않는 이유다. 


외주로 받은 일들이 탐탁치 않거나 때로는 자신의 신념과 어긋나거나 내보이기 부끄러울 때도 있다. 그럴 때 그런 일들은 빼고 올리면 된다! 프리랜서 좋다는 게 뭔가. 내가 나의 상사이자 내가 나의 부하라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이지만 아무도 내게 맡겨주지 않을 때는, 개인 작업을 해서 올려도 좋다. 언젠가 클라이언트가 그걸 보고 일을 맡길 수도 있으니까. 나와 친하게 지내는 프리랜서 사진작가는 행사나 축제 사진을 찍는 걸 주로 하는 사람이지만, 인물 사진을 찍는 걸 개인작업으로 하고 있었고 언제가 그걸로 돈도 벌길 원했다. 그는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인물 사진을 취미로 찍어 올렸는데 그게 연이 되어 도봉구에서 진행한 소상공인 인물사진 찍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④ 꾸준함 말고는 정답이 없는 마케팅  


이 모든 것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고 내보이는 다음 단계로 이어진다. 누가 읽어도 그 사람 글이라는 걸 알 수 있도록, 어떤 컵이나 파우치에 그려져있어도 그 작가가 그린 거라는 걸 알 수 있도록 말이다. 김혼비 작가님의 글은 언제 읽어도 재밌고 그녀의 글에는 늘 한결 같은 톤이 있다. 무거운 이야기를 재치있게 해내는 데 도가 튼 김영민 교수님의 글도 팬심으로 구독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가 얄개의 그림은 너무 독특해서 어디서 봐도 얄개님이 그린 것 같아 반갑다. 


자신만의 브랜드 구축 방법을 쌓는 프리랜서도 있다. <일간 이슬아>로 유명해진 이슬아 작가님은 아무도 자신에게 청탁을 하지 않자 매일 글을 써서 월 1만원의 구독료를 받고 메일링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매일마감>의 이다작가님을 비롯해 많은 프리랜서들이 이 방법을 따랐다. 내가 두 명의 친구들과 함께 운영하는 출판사 딴짓은 거의 수익이 제로에 가까운 독립잡지 <딴짓>을 6년 동안 만들고 있다. 그건 <딴짓>이 우리의 정체성이고 그로 인해 우리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딴짓>이라는 브랜드를 보고 우리에게 일을 맡기는 클라이언트가 계속 생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을 상품처럼 브랜드를 하는 일이 그렇게 유쾌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저 ‘노브랜드’로 남으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일이, 효용과 쓸모만을 강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전위적 반항인 것 같기도 한다. 깃발을 드는 것만이 혁명은 아니니까. 삶으로, 행동으로 메시지를 전할 수도 있으니까. 한 끼의 밥이 아쉬운 나는 혁명가는 되지 못하여, 어떻게든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다. 노브랜드가 되지 않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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