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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초롱 Feb 16. 2022

다른 사람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곳에서 사는거래

뾱이에게 보내는 편지

* 이 글은 이번 겨울 저와 집을 바꿔 산, 제 친구 뾱이의 편지에 대한 답장입니다.


안녕, 뾱아. 답장을 쓰려고 보니 강릉에서 돌아온 지 벌써 한 달이나 지났네. 너는 마감을 지키는 게 어렵다며 글 쓰는 내게 대단하다고 말해주었는데, 막상 약속한 시간을 한참 넘긴 건 나라서 머쓱해. 마감을 잘 지키는 능력이 느는 게 아니라 버티고 핑계를 대는 요령만 늘었나봐. 나쁜 건 어쩌면 이렇게 금방 배울 수 있는 건지 모르겠어. 아이들도 그래서 욕부터 배우는 걸까? 


게다가 네게 편지를 쓰는 일은 다른 마감보다 훨씬 부담이 덜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일인데 말이야. 나는 편지글을 좋아해. 청자가 분명하게 정해져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고, 그 사람 특유의 입말이 살아 있는 것도 좋아. 무엇보다 기승전결이 분명하지 않아도 되고, 맥락에 맞지 않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되잖아. 너의 긴 글을 읽으며 나는 글의 주제를 찾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어. 나를 이리 데려갔다가 저리 데려가는 너의 편지를 읽으면 강릉을 함께 산책하는 기분이 들어. 너는 잘 알고, 나는 모르는 세계를, 너의 인도에 따라 살랑살랑 돌아다니는 기분이야. 물론 서간문을 쓸 때 경계하고자 하는 부분도 있어. 뾱이 너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점이야. 나는 상대를 허수아비처럼 세워 놓고 결국 제 할 말만 하는 화자들을 많이 보았거든. (너는 절대 아니지!) 편지글 너머에 있는 게 누구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 말야. 개인적으로 이슬아와 남궁인이 주고 받은 편지글에서 이슬아가 보낸 마지막 편지 ‘남궁인밖에 모르는 남궁인 선생님께’는 통쾌하면서도 무서움을 주었어. (안 봤다면 이 부분만 인터넷에 있으니 읽기를 추천해!)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은 쉽게 자신의 감수성에 취하고, 그 작은 걸 소중히 아끼느라 감수성이 자기애로만 발전하는 걸 왕왕 놓치곤 하잖아. ‘이렇게 널 사랑하는 나’, ‘이렇게 작은 것에 예민한 나’에 대한 이야기는 솔직히 지겹지. 그 편지에서 남궁인 작가가 그랬거든. 이슬아 작가가 그 부분을 벌처럼 쏘아서 집아냈는데, 그게 그렇게 통쾌하면서도 내심 무서웠어. 내가 저런 건 아닐까? 내가 분명 저런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러면서 말이야. 그래서 이번에 너와 편지를 쓸 때도 다짐했지. 내가 할 말을 위해 상대를 허수아비처럼 세워두지 말자고 말이야. 수신인이 꼭 너여야겠다고 말이야. 

네가 홍대에서 잘 지냈다니 다행이다. 저번에 네가 카톡으로도 이야기 했었잖아. 자정이 넘었는데도 배달음식을 시킬 수 있는 곳이 많아 놀랐다고. 이번 편지에도 배달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재밌었어. 나도 가끔 자정이 넘어서 간식이 먹고 싶을 때 배달어플을 켜서 음식을 구경하고는 해. 보통 먹고 싶은 마음 때문에 열었다가, 뭘 먹을지 몰라서 고르는 데만 삽십 분을 쓰고, 그러다가 지쳐서 그냥 안 먹고 말지만 말이야. 우리집 주변엔 온갖 맛집이 많지. 인도의 시금치 커리, 태국의 뿌빳퐁커리(맞나?), 베트남의 반미 샌드위치, 멕시코의 타코, 싱가폴 커피. 거의 세계 음식 박람회라고 해도 좋겠어. 


그렇지만 배달음식을 좋아하는 편은 아냐. 엄청난 양의 포장용기를 볼 때마다 죄책감이 들고(네가 잘못했다는 건 아니야. 내가 훨씬 쓰레기를 더 많이 만들면서 살고 있을 거야!) 맛집에서 가져온 음식이라도 포장용기에 담겨오면 그 맛을 절반은 잃어버린 기분이 들거든.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면 먹는다는 과정 안에서 ‘먹다’만 남고 나머지를 누리지 못하는 것 같아. 식당에 가기 위해 샤워를 하고, 옷을 골라 입고, 찬바람을 맞으면서 종종 걸음을 재촉하고, 겨우 식당에 도착해서 패딩을 벗었을 때의 안온함 같은 것. 나무 테이블의 질감이나 서빙 직원과의 대화, 괴상한 인테리어에 대한 감상 같은 걸 빼앗긴 느낌이랄까. 그래서 나는 언제나 배달음식을 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 편리하면서도 싫어. 배달음식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아. 삶의 즐거움은 대부분 과정에서 나오는데, 시간은 없고 우리는 너무 바빠서 그런지 언제나 결실만 먹어버리고 말지. 너 같은 경험주의자들은 과정을 잘 즐기며 사는 것 같아 보여.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강릉에 가서 배달 음식을 안 먹은 건 아니야. 하하. 너와 하루 같이 있었을 때도 회를 시켜 먹었잖아. 나 혼자 있었을 때 피자를 시켜 먹었어. 강릉은 어쩌면 이렇게 먹을 게 많은 거니? 어쩌면 맛있는 집이 그렇게도 많은 거야? 나는 서울에 있을 때보다 훨씬 잘 먹고 살았어. 네가 초당마을에 사는 덕에 두부도 많이 먹었지. 9남매집이 너희집에서 가깝잖아. 서울 사람들은 200km를 넘게 달려와서 먹는 그 식당이 너희 집에서는 200m밖에 되지 않잖아. 나는 아침마다 씻지도 않고 그 집에 가서 두부를 먹었어. 손두부랑 순두부가 다르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어. 

한 번은 거기 사람이 많아서 너의 집 바로 맞은편에 있는 두부집에 갔는데(그 주황색으로 실내를 가려둔 집) 사장 아저씨가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더라고. 밥을 다 먹고 볶음밥을 시켰는데, 볶음밥에 대해 아주 긴 강의를 해주셨어. 


“볶음밥을 하라고 하면 서울 사람들은 자꾸 밥을 눌러. 그건 볶음밥이 아니거든. 밥알을 살살 굴리면서 국물을 조금씩 부어줘야 해. 왜 조금씩 붓느냐? 그래야 밥알에 고루 국물이 배는 거야. 그리고 밑을 태워 먹어서는 안 돼. 자, 이제 먹어 봐.”


나는 자기 직업에 프라이드가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좋더라. 그 볶음밥은 정말 기가 막히더라. 아저씨는 비밀을 가르쳐줬다면서 의기양양해 했어. 정말 재밌는 사람이었어. 내가 또 칠칠맞게 목도리를 두고 내렸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거긴 QR이 없고 수기장부가 있어서 번호를 남겼거든) 이렇게 말하더라고.


“이 목도리 따수워 보이는데 내가 할까?”


정말 웃겼어.


게다가 강릉은 커피가 유명하잖아. 유명한 커피집을 찾아다니는 재미도 있었지만, 어딜 가서 마셔도 평타는 친다는 게 큰 위안이 되었어. 웬만한 곳에서는 바다나 숲이 보이더라고. 바다와 동네를 구분 지어주는 그 울창한 소나무숲이라니. 네가 갔다는 우리집 앞의 연트럴파크는 명함도 내미지 못할 것 같았어. 어쨌든 강릉에 있는 동안 나는 서울에 있을 때보다 훨씬 부지런히, 많이 돌아다니면서 뭘 먹었어. 덕분에 배달음식을 통해 내가 잃어버린 걸 조금 누렸지. 10km 넘게 운전해서 고작 한 잔의 커피를 마시고 온다거나, 네가 추천한 딸기농장에 가기 위해 아침 7시에 일어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지. 일찍 가면 서비스로 딸기 몇 알 더 얹어 주시더라고? 그걸 기대하는 재미가 또 있다? ㅋㅋ 무언가를 즐긴다는 건 그것을 위해 준비하는 모든 순간까지를 다 말하는 것 같아. 여행 계획을 짜면서부터 여행은 시작된다는 말이 있잖아.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정상에 오른 사람과 한 걸음씩 산을 올라서 정상에 간 사람이 느끼는 게 다른 것처럼 말야. 강릉에 지내면서 나는 과정의 즐거움을 누렸어.


다른 사람이 되고 싶으면 다른 장소에 가라는 말이 있지. 네가 서울에 와서 젠틀몬스터 도산점에 갔다가 다음날에는 망원동의 소품숍에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깜짝 놀랐어. 도산과 망원은 너무 먼데 싶어서 말이야. 나는 강남을 무서워해서 일 년에 한 번 갈까말까 하거든. 솔직히 너무 멀기도 하고. 너도 내가 강릉에서 하루에 20km씩 돌아다녔다고 하면 ‘그렇게 먼 거리를?’이라고 답하겠지. 우리가 평소에 머무는 곳에서는 시간을 들여 어디에 간다는 게 큰 일처럼 느껴져서 그런가봐. 여행 중에는 그렇게 멀리도 슝슝 잘 다니는 데 말이야.


네 말대로 서울은 정말 정신이 없지. 홍대에 살면 맛집을 많이 알 거라고들 생각하지만, 사실 내가 가장 잘 아는 건 골목길이야. 사람이 없는 골목길. 홍대는 정말이지 사람이 너무 많아서(이 시국에도 많단다) 길을 걷는데만 해도 에너지가 소모되잖아. 네가 쓴 것처럼 온갖 찬란한 것들이 ‘여기 좀 보세요!’라며 관심을 갈구하거든. 그래서 나는 목표지점까지 사람을 최대한 만나지 않고 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을 알고 있어. 강릉에서는 산책을 해도 미리 상대를 피할 필요가 없더라. 유명한 관광지인데도 겨울이라 그런지 인구밀도가 높지 않았어. 


그런데도 내가 홍대를 떠나지 않는 건, 이곳이 시끄러운 도서관 같기 때문이야. 어느 동네에나 특별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많겠지만, 홍대는 그런 사연을 밖에 전시해두는 곳이거든. 이곳에서는 허리까지 오는 머리를 찰랑거리며 다니는 남자도 많고, 몸의 절반을 문신으로 덮은 청년들도 많아. 전국에서 숏컷 여자가 가장 많은 곳이 아마 이 동네이지 않을까? 제로웨이스트숍도 많고, 비건 레스토랑도 꽤 있고, ‘차별 반대’ 무지개 스티커를 붙인 카페도 흔해. 여기는 이상해도 괜찮은 곳이야. 이상한 게 자랑이 되는 곳이야. 그래서 나는 계속 이곳에 사는 것 같아.

강릉의 유명 맛집을 부러 찾지 않는 것도 사실 비슷한 이유야. 유명하다는 게 내게는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거든. 그렇지만 이런 말과는 다르게 네가 추천한 집은 거의 다 가봤다는 거. 하하하. 고성 원인숙 생선찜은 당연히 갔지. 세 번이나 갔는 걸. 나 생선찜을 정말 좋아하거든. 네 회사 동료 말대로 진짜 그 생선에서는 게살맛이 나! 너무 맛있어. 그리구 네가 추천한 집은 아니지만 미트컬쳐도 갔지. 아, 그리고 네 말대로 버드나무브루어리도 갔어. 야외에 앉으면 고양이가 자꾸 뭘 달라고 오더라고. 그래서 두 번째로 찾아갈 때는 고양이 간식을 사서 갔어. 난 늘 길에서 만나는 동물들에게 삥을 뜯기고는 해. 만났을 때 줄 게 없으면 너무 속상해서 미리 간식을 챙겨서 산책을 나서지. 너희 동네에는 정말 강아지가 많더라. 대부분 사납게 짖는데(근데 어쩐지 나는 겁이 많아서 짖는 강아지에게 마음이 더 가더라) 네가 이양기 한 그 강아지는 참 순하더라. 참! 떠돌이 개도 많더라. 한 번은 너희 집 앞에서 세차장쪽으로 차를 돌려 나가는데 떠돌이 개가 있더라고. 그래서 간식을 주려고 내렸는데 허둥지둥 도망가는 거야. 목 놓아 불러도 돌아오지 않았어. 그래서 그 자리에 간식을 놔두고 저녁에 가보았더니 없어져있더라고. 그 친구가 먹었을까? 알 수 없지. 강릉에 살게 된다면 길강아지 맘이 되고 싶어.


강릉을 떠나올 때는 무지 아쉬웠는데, 서울에 오니까 또 금방 익숙해지더라고. 너는 어때? 아직 쉬는 중이라 정신없지는 않지? 네 말대로 낯섦고 익숙함 사이를 왔다갔다 해야만 우리는 행복의 비율을 찾을 수 있나봐. 계속 한 곳에만 있으면 그 곳의 소중함도 금방 잊고는 하잖아. 얼른 봄이 되어서(근데 봄에도 바꿀 수 있니?) 강릉에 한 번 더 놀러가면 좋겠다. 사실 무엇보다 기대되는 건 여름이지만 말이야. 하하. 


다음에 네가 홍대에 올 때 갈 만한 곳을 나는 미리 물색해둘게. 어떤 코스로 여행하면 좋을짐 말이야. 그런 마음으로 홍대에 있다 보면, 익숙한 이곳도 낯설게 보게 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다음에 만나게 될 때까지 건강하게 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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