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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묘한기묘진 Jan 31. 2022

자극의 황금 비율을 위하여

집 바꾸기 겨울편_ 강릉에서 뾱이가

 만춘 새해 복 많이 받아! 덕분에 서울에서 재미있는 겨울방학을 보냈어. 1월까지 써보겠다고 했는데 이 글을 쓰는 시간은 설날인 1월 31일 저녁 6시야. 마감에 시달려보니 이제야 '소리없는 아우성'을 이해하게 되었어. 일주일 전부터 '써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어. 결국 전날에야 키보드를 두드릴 거면서 왜 그랬을까? 업으로 글을쓰는 너를 다시 또 존경할께. 


지난 글을 재밌게 읽었다니 다행이야. 우아하게 사는 것 같다는 너의 말에 나의 자존감은 수직 상승했단다. 그렇게 큰 부메랑을 선물해 주는 너의 언니 이야기도 듣고 싶어. 재밌는 분일거 같아. 3년전에 나도 호주를 여행했을때가 떠올랐어. 관광도시 강릉에 사는 강릉시민답게 어떻게 관광상품을 개발하는지 알고 싶어서 기념품 가게가 있으면 꼭 들렀어. 하지만 부메랑을 파는 곳을 본 기억이 없어. 엄밀히 말하면 있었어도 기념품인줄 몰랐을거 같아. 보통 호주에 가면 양모 상품, 영양제, 팀탐 같은 과자를 사온단 말이야. 언니는 왠지 너만큼이나 재밌는 분일 거 같아. 

어머니께 수세미 잘 쓰고 있다고 전해줘. 내가 이제까지 써 본 수세미 중에 최고야. 간격이 정말 완벽해. 원래 있었던 수세미(이것도 선물 받았어)는 촘촘해서 거품은 잘 안났거든. 그렇다고 헐거우면 물이 줄줄 흐르잖아. 어떻게 이런 완벽한 간격을 계획해서 만드신걸까? 설마, 계면활성제의 평균 기포 간격을 계산한 건 아니시겠지? 나도 환갑(어머니 늦었지만, 환갑 축하드려요!)이 되면 이런 혜안을 터득할 수 있을까! 설거지를 하며 감탄했어. 이것을 수세미계의 에르메스, 수르메스라 부르자. 


겨울의 강릉은 어땠어? 이번엔 꽤 오래 지내서 네가 조금은 지겨워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2월에도 놀러오겠다고해서 내심 기뻤어. 그리고 이번 편지에선 네가 강릉에서 뭘 했는지 알려줬으면 좋겠어. 궁금하거든. 보통 강릉 놀러오는 친구들은 맛집이나 놀거리를 물어보는데 넌 그러지 않았잖아. 그래서 집 바꾸는 중간에 우리가 만났을 때, 뭘하고 지냈나 물어봤더니 처음엔 넌 그냥 주문진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눈을 반짝거리며 귀여운 동네 강아지를 만났다고 하더라. 물론 그 강아지는 나도 알만큼 사랑스럽지. 사람이랑 눈만 마주쳐도 행복해하는 그 강아지를 보러 나도 퇴근길을 한 번 돌아간 적이 있었어. 근데 네가 내 입장에서 생각해봐, 3시간이나 운전해서 우리 집에 온 친구가 있어. 그 친구에게 이제 뭐 할지 물어보니 지난번에 만났던 강아지 또 만나러 간다고 하는 거야. 그러다 강아지 간식을 사러 편의점을 신나게 다녀온다? 내 입장에서 네가 얼마나 귀여웠겠어. 생각해봐. 지금도 괜히 웃음이 나. 내가 너 온다고 맛집이며 카페며 이곳 저곳을 추천해 주긴 했는데, 왠지 너는 거길 안가고 너만의 길을 개척했을 거 같아. 언젠가 너에게 강릉 여행지를 추천을 받아보고 싶어. 네가 바라보는 강릉은 나와 달라서 더 재밌을 거 같아. 


근데 또 만춘 너라면 추천을 안해줄 것도 같아. 그럴 것 같은 마음도 이해해. 네가 좋았던 곳이 나에게도 100% 좋을 수 없지. 나도 그랬거든. 강릉에 살다보니 전직장 동료나 친구들이 여행을 왔다며 좋은 곳을 물어보는데 알려주면서도 마음이 개운하지 않아. 누구에게나 멋진 곳은 없어서 실망할 거 같거든. 내가 좋아하는 강릉의 장소는 오로지 그 공간이라서가 아니니까.

예를 들면 '고성 원인숙 생선찜'이 그래. 그 곳엔 가오리 찜이 맛있어. 그런데 무조건 꼭 가야할 정도로 맛있냐고 물으면, 글쎄. 내가 거길 좋아하는 이유는 두 가지야. 첫 째, 처음엔 거길 가자고 한 회사 동료의 멘트가 너무 귀여워서야. '그 집 가오리 찜은 대게 맛이 나요. 근데 대게인데! 살을 안발라도 되! 대게 같은데?! 먹어도 먹어도 또 있어!'라고 말했어. 심지어 같이 먹을 떈 자린고비처럼 '이건 대게다'라고 내게 최면을 거는데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 두 번째는 우리 부모님이 놀러 오시면 늘 가는 정규 코스이기 때문이야. 평생을 내륙지방에 살던 아빠는 가오리를 좋아하는데 따로 파는 음식점이 없었대. 그래서 엄마랑 결혼식 하객으로 가면 꼭 가오리 요리를 먼저 드셨다는 거야. 뷔페식이 그렇듯 퍽퍽하고 뼈 밖에 없던 가오리를 먹다가 살이 통통하고 따끈한 가오리를 먹으니 얼마나 맛있으시겠어. '너네 아빠가 그랬다.' 라며 말하는 우리 엄마도 귀엽고(난 뷔페에서 누가 뭘 먹는지 기억도 못하는데. 이게 사랑인걸까) 여름마다 놀러오셔서 다른 일정은 다 나에게 맡기지만 하루는 '고성 원인숙 생선찜' 가는 날로 정하는 아빠도 귀여워서 나는 이 가게가 참 좋아. 하지만 이런 추억이 없다면, 꼭 가야할 맛집은 아닌거지. 실제로 김포에서 친구가 놀러와서 여길 데려갔어. 근데 '넌 내가 강릉에 놀러왔는데 '고성'음식점을 데리고 가니?' 며 농담 섞인 핀잔을 들었어. 하하. 앞서서는 네게 뭘 했는지 알려달라고 했으면서, 안 말해주는 네 맘을 이해한다니 이런 양가 감정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허허허. 그럼 어디가 기억에 남는지만 정도만 알려줘. 그럼 나는 '만춘이 의미가 있었던 곳이구나. 지나는 길에 있으면 한 번 들려봐야지.' 정도의 마음을 가지고 너의 편지를 읽을께.   


서울은 즐거웠어. 수술 때문에 일주일 밖에 못 지내는게 억울할만큼. 너의 집에 도착해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배달 어플의 스크롤을 내려보는 거였어. 강릉은 두어번 스크롤을 내리면 끝나거든. 저녁 10시에도 배달되는 음식점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에 행복했어. 내가 사는 강릉시 초당동은 관광지이라 음식점이 일찍 문을 닫아. 내가 없는 사이 서울은 식품3D프린터라도 개발 된 거 같더라. 먹고 싶은 전세계 요리를 검색해봤어. 칠리크랩, 슈바인학센, 홍콩 토스트가 검색이 되더라. 그러다 성지엔빠오(반만 튀긴 만두야)을 주문해 봤는데 10년전 상하이에서 줄서서 먹던 그 맛인거야. 얼마나 감동했는지 몰라. 그 다음 지엔핑을 도전했는데 실패 했어. 아직 맛 구현이 안되나봐. 헤헤. 3D프린터야 더 진화해줘. 그리고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사유의 방'을 관람했어. 반가사유상의 하늘하늘한 옷 주름을 따라 찬찬히 보고 있자니, 연말 정산 따위의 자잘한(그러나 내 통장에겐 중요한) 번뇌를 잊고 존재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어. 두 개의 불상이 거울에 비춘 것처럼 같은 포즈로 있으니까 평행 세계에 낀 느낌도 들었어. 그러면서도 '여기가 별나라 같더라도 쫄 필요는 없단다 중생아.'하고 은은하게 웃어 주시는 듯 했어. 강릉에 없는 4D로 스파이더맨을 보며 허접한 바람효과에 깔깔 웃었고, 전에 같이 작업해서 알게 된 아티스트의 갤러리에도 가고, 바리스타째로 납치하고 싶은 카페도 발견했어. 하루 하루 지루할 틈이 없었어. 그런데 그렇게 바쁘게 지내다보니까 15년쯤 전에 들었던 말이 생각났어.  


'서울은 너무 정신없어. 난 서울에서 못살겠어'

사촌언니가 서울에 인턴으로 취업해서 내게 한 말이야. 당시 서울에서 2년째 대학생활을 하고 있던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어. 섭섭하기도 했어. 친한 사촌 언니라서 서울에 온 게 참 반가웠고, 그래서 이대며 명동이며 같이 놀러다닌 후에 들은 말이거든. 내가 데려간 곳이 별로였나 싶더라고. 그래서 왜 정신없어?라고 묻기가 어렵더라. 하지만 마음엔 박혀서 언젠가 물어봐야지 생각했어. 이제 서울을 타자의 입장에서 보니까 그게 무슨 뜻인지 알 거 같았어.


눈 뜨고 코 베인다는 말이 있었지? 어릴 땐 그 말이 과장법인줄 알았는데 말이지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특히 서울을 온전히 갖지 못한 사람 입장에선 더 그럴거 같달까. 연트럴 파크에서 사람들의 줄을 보면 대체 여기가 어딜까?하는 생각에 친구와 대화에 집중할 수 없었어. '핫플인가? 간판도 없네? 왜 간판이 없어?검색해볼까?'하는 생각 때문에 말야. 다음 날은 젠틀 몬스터 도산점에 갔어. 사람들이 곰돌이 인형과 함께 사진을 찍어. '왜 여기서 사진을 찍을까? 선글라스가 뭐 저렇게 생겼냐? 히익 가격 뭐야?' 다음 다음 날에는 망원동의 소품점에 살 것도 없는데 들어갔어. '예쁘네, 어 이거 **닮았네? 에잉? 이건 누가 살까? 오 이거 유투브에서 본 밀랍랩이네?' 이런 생각들을 하다보면 나는 조금 우울해졌어. 결국은 사라는 거 같았어. 브랜드를 기억해, 트렌디한 감성을 소비해, 우리의 이미지를 공유해.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의 손에 들려진 건 계산 완료 스티커가 붙여있는 밀랍 랩 하나. 우후~. 그 어떤 곳보다 자극이 쏟아지는 서울, 그 자극의 파도 속에 있으면 영감이 떠오르고 안목도 길러지겠지. 나는 그게 좋으면서도 싫어. 그래서 그랬던거야. 정신없는 마음. 좋았다가도 싫은 마음이 파도치니까. 서울에 있었을 땐 왜 몰랐는지도 알았어. 그땐 싫어도 나는 서울사람이니까 감당해야 했던거야. 굳이 판단할 필요가 없었지.


정신없지도 않으면서 심심하지도 않게 사는 방법은 뭘까? 난 그걸 알아내고 싶었어. 내가 국제기구에서 3년간 일했던 적이 있잖아. 내가 발음할 수도 없는 베트남 시골 마을로, 인도로, 중미를 오가며 나는 '사는 곳'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 여행지라 하기엔 위험하고, 심심한 곳이라서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 갱에게 총을 맞을 수 있는 출장지는 일몰시간 이후에는 경호원과 함께라도 어딜 나갈 수 없었어. 그래서 난 저녁 아홉시에 잠들어서 해가 뜨면 몰래 산책을 나갔어. 심심할 수도 있는 출장이었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알 수 없는 향신료에 적응하고, 현지어를 따라서 더듬대다 보면 시간은 금방 갔어. 귀국한 날이야 서울이 반가웠지만, 그 다음 주 부터는 왠지 헛헛한 마음이 들었어. 그러면서 나는 꼭 서울이 아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 같아. 


결국 어디에 사는 지 중요한 게 아니라, 황금 비율을 맞추는 삶이 행복한 삶인 것 아닐까? 낯선 것과 익숙한 것이 적당히 섞인 삶. 쏘맥처럼 말이야. 강릉에서 산 지 2년차때부터 점점 즐거웠어. 그 이유는 새로운 자극이 적당히 일상에 섞였기 때문이야. 길을 헤매다 코너를 돌았는데 친구네 서점을 만났어. 한 시간기다려야 먹을 수 있다는 순두부 짬뽕집이 일요일 오후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들었고, 완벽한 동선으로 순두부 짬뽕을 먹었어. 그러다 강릉이 지루해 질 때면, 낯섬을 느끼러 너의 집에 지금처럼 머물 수 있게 되었지. 이 경험이 얼마나 큰 행운인걸까. 나라는 맥주에 너라는 소주(하트하트). 너무 들떴나? ㅎㅎㅎ 봄에는 너의 강릉 생활이 또 즐거운 낯섬이 되길! 안녕 만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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