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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묘한기묘진 Oct 31. 2021

리틀포레스트보다 포레스트검프.

만춘과 함께하는 집 바꾸기, 겨울편을 앞두고 

리틀 포레스트와 포레스트 검프 사이에서

‘우와, 너 그거 같아. 포레스트 검프!’

‘예?’


 만춘아 혹시 ㄱ언니 알아? 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 친하진 않았는데, 강릉 오기 직전에 친해진 언니야. 한동안 베이징에서 같이 살았거든. 그 언니가 오랜만에 내 얘기를 듣더니 내가 사는게 포레스트 검프 같다는거야. 


 추억의 영화지? 하지만 그 영화와 내 근황과의 유사점이 무엇일까? 감도 잡히지 않더라. 나는 그냥 바다 자주 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봤어. 뭘까? 내 표정이 톰 행크스(영화 속 주연배우) 같았나? 도무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다시 물어봤어. 


 ‘왜 포레스트 검프같아요? 저 이제...새우잡이 배 타면 되나요?’

 ‘응? 아! 그 영화 아니다! 그거 말고, 김태리 나오는 건데’

 ‘아이구, 그건 리틀 포레스트죠’

 ‘맞아! 리틀 포레스트!


 결국 언니는 영화를 착각했던거였어. 하지만 난 가끔 나의 강릉살이가 리틀 포레스트보단, 포레스트 검프가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어. 김태리와 달리 나는 농사도 안 짓고, 귀여운 강아지도 없고, 소꿉친구도 없잖아. 심지어 포레스트 검프 같이 멍~한 표정일 때가 많거든 특히 이런 질문을 받을 때!

‘서울 살다가, 왜 강릉에 사세요?’ 

만나는 사람들마다 물어보더라. 처음에 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상대가 너무 당황하길래, 고정 대답을 두 개나 만들어버렸어. 난 관종이니까.


1번, 제주도에서 살고 싶은데, 서울이랑 너무 멀더라고요. 

2번, 은퇴 후 바닷가에서 살려고 했는데 지금 미리 가보고 싶었어요~ 이렇게. 


 어떤 대답을하던, 내면의 나는 누구보다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어. 어쩌다가 탁구 챔피언이 된 포레스트 검프처럼 말이야. 사실은 별 생각없이 왔거든. 너도 이제 강릉 우리 집에서 자주 머물게 되었으니, 혹시 더 좋은 대답 거리가 있다면 알려주면 좋겠어. 아니면, 우리의 편지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대체 나는 어쩌다 강릉에 살고 있는 걸까? 하하


  물론 나는 ‘리틀 포레스트’를 좋아해. 김태리가 나온다는 힌트만으로도 영화 제목을 맞출 정도니까. 강릉에 살면서 리틀 포레스트 같은 영화를 더 열심히 보게 되었어. '리틀 포레스트' 같은 영화가 뭐냐고? 그건 약간 '나는 자연인이다'같은 것도 되고 북유럽인들의 브이로그 같은 것도 해당돼. 이 모든 콘텐츠들의 공통점은 대도시가 아닌 곳에서 어떻게 겨울을 보내는지 나온다는 거야. 강릉에 와서야 알겠더라, 내가 대도시에서만 겨울을 보냈다는 걸. 학생 때는 서울에서 지냈고 직장인이 되면서 겨울을 피해 태국 같은 여름 나라로 떠났거든. 안타깝게도 김태리는 그 영화에서 겨울을 아주 짧게 보내. 숲에선 겨울엔 할 게 없는걸 안 걸까? 감독님도 그래서 영화를 겨울에서부터 시작하신 게 아닐까 의심이 들어. 많은 영화들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하고 있더라고. 결국 나는 중소도시에서의 겨울나기를 서른이 넘어서야 배우고 있어.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인구 50만 미만의 도시를 보통 중소도시라고 한대. 참고로 강릉시민 수는 2016년 기준으로 21만 명이야.



책 읽기엔 아까운 날씨

옆 부서에 계신 선생님이 해준 말이야. 꽃샘추위가 겨우 가신 4월, 도서관에서 한 아름 책을 빌려온 내게 그분은 말했어. ‘어머, 그걸 다 읽게요? 겨울에 읽을 시간 많잖아요. 날씨가 아까워요.’ 누구보다 학생들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던 국어 선생님이셨기에 더욱 기억에 남아. 강릉의 겨울은 참 길어. 보통은 3월부터 봄이라고 하겠지만 4월까지 강릉은 두 가지 바람이 찾아와. 대관령 엘사가 보내주는 산바람과 시베리아에서 온 바닷바람. 강릉 어르신들은 벚꽃 구경은 약속을 잡는 게 아니라고 하셔. 주말에 만나기로 했다? 약속 전날에 비바람이 와서 꽃잎을 날려버려. 그래서 나도 벚꽃이 필거 같으면 연락해. 우리 지금 만나, 당장 만나. 장기하만이 벚꽃을 즐길 수 있어. 다시 겨울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럼 현재까지 내가 터득한 강릉의 겨울나기 꿀팁을 알려줄게.


첫 째, 운동계획을 세우자

지독한 밖순이인 나는 개와 같아서, 하루 활동량을 채우지 못하면 스트레스 받는 편이야. 집순이 친구들이 주말에 침대에서만 지냈다고 하면 속으로 깜짝 놀라. 머리랑 허리가 안 아픈가? 이런 내가 추운 날 산책할 수 있는 몰이 강릉에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내 안의 개를 학대하는 기분이 들었어. 지금도 단풍이 다 떨어질 때쯤, 그렇게 여의도 IFC몰이 그리워. 서울 살 때 다니던 회사가 IFC 몰 동문과 5분 거리라, 퇴근하면서 늘 들리곤 했거든. 지하 2층에서 러쉬 향을 맡고, 한층 더 내려가면 있는 영풍문고 신간을 구경하던 일상. 무슨 전생처럼 눈앞에 아른거려. 이수역에 있던 집 근처에서 마을버스로 갈 수 있던 5층짜리 국립 중앙 도서관도 보고 싶어. 책 사이를 걷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생기곤 했거든. 오늘 저녁은 밀크티에 마라샹궈야! 같은 획기적인 생각들 말이야. 심지어 거긴 구내식당도 있어서 밥하기 귀찮을 때 휴일을 보내기 딱이었어.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것처럼 도서관이 통째로 날아와서 우리 집 앞에 떨어뜨려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강릉의 유일한 몰(mall)은 이마트 뿐이야. 공립 도서관들은 대학교 도서관의 반의 반도 안 돼서 15분이면 열람실을 다 돌 수 있어. 이 편지를 쓰는 도중에 결심했어. 강릉에 몰을 유치하는 정치인에게 꼭 내 표를 줄 것이다.

 경포 호수 공원이나 송정 해변을 산책하면 되지 않냐고? 겨울의 경포 공원은 모든 생명이 지하로 빨려 들어간 것처럼 칙칙해. 해변을 걷다 보면 모래까지 섞인 바람이 날아와 내 뺨을 고문해. 그동안 몰링(malling)에 길들어진 나약한 강릉 이주민은 겨울바다를 이겨낼 수 없었어. 그래서 난 강릉에서 쌀쌀해질때 쯤 실내 운동을 계획해놔. 그러니 만춘도 나 같이 활동량을 중시한다면, 미리 생각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우리 집에서는 큐어바디 필라테스나 스카이베이 호텔의 오션뷰 헬스장이 가까워. 나는 세인트존스 수영장을 다니고 있는데 관광객들 몰리는 시간을 피해서 다녀야 해서 추천하지 않아. 코로나가 걱정된다면 플레이스테이션을 챙겨와서 집에서 저스트 댄스 게임을 하는 것도 좋아. 작년에 내가 그랬거든.


둘 째, 눈은 잘 안오지만, 찾아갈 수 있다.

 가끔 내게 연락을 하는 구남친이 있는데, 겨울이 되면 꼭 같은 소리를 해 ‘강원도는 많이 춥지? 따뜻하게 입고 다녀.’ 구남친들이란~! 걱정이 무색하게 강릉의 겨울은 서울보다 따뜻해. 물론 강원도에서 춘천이나 평창은 머리가 얼 것같이 추워. 하지만 강릉, 속초, 양양, 동해는 바다가 가까워서 서울보다 5도는 따뜻해. 그래서 눈 보다는 비가 내려. 강릉 친구들 말에 따르면, 대관령이 눈구름을 다 막아서 눈이 안 오는거래. 그러다 대관령도 막지 못하는 눈구름이 2~3년 만에 오는데 그때는 폭설이 내린다는 거야. 정확하게 내가 강릉에 온 지 4년만인 올해 3월 2일, 대폭설이 내렸지. 앞에서도 말했든 성정이 개와 같은 나는 눈을 참 좋아해. 그래서 강릉에서 눈을 보는 방법을 찾았어. 바로 리.조.트 (빰) 강릉 주변엔 리조트들이 가까이 있더라고. 내가 좋아하는 리조트는 평창의 알펜시아 리조트야. 겨울 시즌 셔틀 버스도 운행하고 가끔 평일 리프트 만원 행사도 여는 멋진 곳이야. 스키나 보드가 싫다면 휘닉스 파크에 스노우 빌리지를 놀러가면 좋을 거야. 거기엔 6인용 썰매가 있거든. 눈을 싫어한다면 좀 더 시간을 내서 강원랜드는 어때? 2시간 정도 걸리지만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불꽃놀이를 보고 강원도 제일의 해산물 뷔페를 먹으면 여기가 바로 크리스마스 마켓일거야. 


셋 째, 겨울엔 더 좋은 강릉에서 할 것들 best 5 

꿀 팁이라고 말을 꺼냈는데, 아...겨울은 좀 아니구나. 라고 느끼고 이번 방문을 취소할까봐 걱정이 드는데, 괜한 기우일까? 그런 생각을 바꿀만한 정보가 필요할 거 같아서 준비했어. 내가 강릉에서 겨울이 되면 하는 것들을 소개할께. 

1.     신영극장에서 독립 영화 보고 길거리 호떡 먹기. 2000년대에 만들어진 극장의 분위기는 겨울에 가면 더 정겨운 것 같아. 늘 줄이 서있는 마가린 향 호떡도 잊지마. 극장 뒷골목 다이소 옆에 있어.

2.     벽난로가 있는 호텔 노벰버 카페

영진 해변에 있는 호텔 로비겸 카페야. 나는 호텔 로비에 있는 카페를 좋아해. 들떠 있는 여행객을 보면 좋아. 주변 사람들의 기분을 잘 흡수하는 전형적인 ENFP라서 그런 것 같아. 여긴 노벰버(11월)이란 이름에 맞게 겨울에 더 예쁜 호텔이야. 주문진 시장이 가까우니까 횟감을 사온 다음 꼭 이 카페를 들려봐. 

3.     겨울에 더 맛있는 여고시절 떡볶이, 매운탕 먹기

여고시절의 고추 튀김을 먹고 강릉에 오길 잘 했다고 생각했었어. 고추튀김의 고추는 아삭아삭하고, 오징어 튀김도 오징어도 생오징어처럼 보드랍거든. 매운탕은 남항진에 있는 어촌식당의 망치 매운탕이 맛있어.  

4.     사천 김규식 딸기농원에서 올해의 첫 딸기 먹기

강릉에 은근 딸기 맛집이 많아. 첫 딸기는 보통 예약을 해야 하는데, 작년엔 딸기가 풍년이라서 난 당일에 전화로 예약해서 첫 딸기 500g을 15,000원에 샀어.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내가 그 전까지 먹었던 딸기는 딸기의 그림자랄까. 플라톤이 이 딸기를 먹고 이데아설을 이야기 한 것 같았어. 원래 처음 수확한 딸기가 가장 맛있고 그 다음부터 당도가 조금씩 떨어진대. 오후 4시가 되면 품절되니까 출발하기 전에 전화해보고 가.

5.     겨울엔 온천! 속초 척산 온천이나, 양양 설해원의 면역공방에서 몸 녹이기 

척산 온천은 옛날부터 있던 온천 휴양단지라서 족욕 공원처럼 꼭 탕에 안들어가도 온천을 즐길 수 있어. 단지 옆에 '설악산책'이라는 북카페도 있으니까 들리면 좋아. 면역 공방은 큰 돌에(파동욕이라고 건강에 좋대) 누워서 고기 굽듯 내 몸을 앞 뒤로 지지는 사우나야. 4인 1실로 예약이 가능해. 사우나를 끝내고 노천 욕탕에서 마무리 하면 그날은 잠이 솔솔 올 거야. 



나의 재미있는 친구’들’을 맡고 있는 만춘이라면

만춘 너라면 강릉의 겨울을 나보다 즐겁게 보낼 거라고 생각해. 감히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알려주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선 내가 한 가지 고백할 게 있어. 나는 가끔 널 모르는 친구들에게 너에 대해 이야기해. 뒷담화는 절대 아니야. 그래도 너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너를 자랑한 적이 몇 번 있어. 재미있게도 내 주변 친구들의 반응이 다 비슷해. 

‘OO님 친구들은 다 재미있는 사람 같아요!’ 

그럼 나는 말하지. 

‘실은 지금까지 모두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하하핫’

 책+맥 바를 운영하고, 팟 캐스트를 하고, 축제를 기획하고, 책을 쓰고, 내게 ‘로맨틱 홀리데이’를 제안하고, 심지어 ‘결국 이 모두가 동일 인물이었다!’라는 나의 반전 스토리 주인공 역까지 맡느라 바쁜 만춘, 그러면서 내게 큰 자극과 기쁨이 되어준 만춘, 조금 늦었지만, 혼자서 나의 ‘재밌는 친구들’을 맡아줘서 고마워. 이제야 고백하게 되었네. 그래서 나는 함께 편지를 쓰자고 했을 때 기쁘고 내심 고마웠어. 이번 겨울의 강릉 여행도 늘 좋은 기억만 쌓아가길 바라.




홍대의 가을은 신났어

지난 가을의 강릉은 어땠어? 이제야 지난 여행이야기를 꺼낸다. 머쓱해라. 나는 참 좋았어. 물론 사람들로 가득 찬 홍대를 볼 때마다 수도 이전을 취소한 법관과 그 관계자들을 모두 소환하고 싶었어. 나까지 이 인파에 끼게 되어서 죄책감도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나는 너에게 말한 것처럼 엘리스 달튼 전시회를 가고, 옛 친구들을 만났어. 그리고 여유가 있을 때는 너의 집을 구경했어. 

 이번이 네 번째 방문이지만 너의 집 구경은 재밌어. 브루노, 팔라우 같은 너의 여행기가 적힌 냉장고의 마그넷들은 여전히 신기하고, 냉장고 속 잔뜩 준비한 웰컴 프룻도 귀여웠어. 벽면에 전시된 내 얼굴보다 큰 부메랑을 이제야 발견했어. 그리고 내 마음대로 추측해 봤어.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걸까? 호주 어디선가 이걸 본 만춘이는 어떤 마음으로 이걸 샀을까? 아니야 이건 기념품으로 산 게 아닐 수도 있어. 만춘이라면 정말 이 부메랑을 가지고 놀았을 거야. 어쩌면 호주 어디 동네 공원에서 처음 보는 아이들과 신나게 주고 받았을지도 몰라.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 날 짐을 싸는 순간 캐리어에 푹 꽂아서 비행기에 탔을 거야.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금방 약속 시간이 다가오곤 했어. 어떤 사연을 가진 부메랑인지 모르겠지만, 부메랑은 어디론가 날아갔다 다시 돌아오지? 나도 부메랑처럼 날다가 겨울이 되면 너의 귀여운 홍대 펜트하우스로 돌아갈 수 있어서 기뻐. 그럼 겨울까지 건강해!


2021. 집 바꿔 살기 가을 편을 마치며 

 뾱이가. 근데 내가 왜 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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