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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성킴 Mar 10. 2023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사는 것

 어영부영 3월이 되었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딱히 없다. 조용히, 익숙하게, 늘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 3월이 되었다. 제주에는 진작 봄이 온 듯하다. 유채꽃과 매화를 시작으로 봄꽃들이 피기 시작했고, 보일러를 켜지 않고도 춥지 않게 잘 수 있는 밤이 늘어나고 있다. 알레르기와 비염이 정안과 남편의 잠자리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걸 보니 봄이다. 제주에 있다 보면 자연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면서 사는 삶에 감사하게 된다. 사실 육지에 있을 땐 얇아지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곤 했었다. 나무에 핀 꽃이 거기라고 없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지난주에는 시댁 가족들이 제주에 다녀갔다. 아버님은 아프신 바람에 3박 4일 동안 꼼짝 않고 누워만 있다가 가셨다. 1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제주행인데 이렇게 되어 아쉬울 뿐이다. 어머님은 어른 6명과 아이 3명이 먹을 고기와 반찬을 육지에서 싸서 들고 오셨다. 하루가 아닌 매끼 아침과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나는 그것을 이고 지고 오는 엄마의 마음을 100%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음식이 가득 들어 있는 그 가방 안에는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사랑과 걱정의 무게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이런 우리 시어머니가 너무 좋다. 다음번에는 빈손으로 오시라고, 내가 집에서 음식을 다 할 테니 걱정 말고 오시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며느리가 되고 싶다. 그런 며느리가 되러면 아직 몇 년의 시간의 걸릴지 모르지만 노력해서 그렇게 만들고 싶어 지게 만드는 사람이 바로 우리 시어머니다.


 정안은 이제 6살 반으로 올라갔다. 12월이 될 때까지 아직 5살이야,라고 알려주기는 했는데 6살 반이니 6살이라고 대답한다. 실제로는 12월까지 만 4세이다. 만 나이가 도입되었으니 4살이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작년에 5살로 살았는데 갑자기 너 다시 4살이야 하면 그걸 이해할리가 없다. 그래서 그냥 5살이라고 알려주었다. 어렵다 나이가. 한 번도 나이를 말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정안의 나이는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제법 의젓해졌다. 양팔에 예방접종 주사를 맞아도 울지 않고, 넘어져도 괜찮아! 하고 울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신생아처럼 밤잠을 자지만 그것 또한 익숙해졌다. 어느 순간 밤에 3-4번씩 깨서 등을 긁어 달라고도 하고, 소변을 보러 가기도 하고, 똥구멍이 간지럽다고 씻어달라고도 한다. 처음에는 화도 내보고 부탁도 해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새벽에 한 번만 깨는 날에는 오히려 고마웠다. 사람은 적응하며 사는 법. 이런 힘들고 귀찮고 짜증 나는 상황도 적응을 하면 제법 괜찮다. 그 통통하고 귀여운 볼을 맞대고 자는 것도 몇 년 남지 않았을 걸 생각하면 이 순간을 아주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화장실에 혼자 가면 안돼?"라는 말이 안 나오지는 않는다. "아니 같이 가."라고 할 걸 알면서도 괜히 던져본다.

 지난달에는 혼자 걸어서 오름에 올라가는 귀중한 순간도 경험했다. 항상 목마를 태우거나 업고 올라가는 일이 많아 작년에는 오름에 올라가는 것 자체를 시도를 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벌써 2번이나 혼자 오름에 올라갔다. 1번은 아빠가 목마를 태우고 올랐다. 오름산에 올라가는 것을 탐험이라 생각하는 귀여운 여섯 살이다. 아니, 다섯 살인가? 아니, 네 살인가? 그냥 쉽게 51개월이라고 하자. 탐험을 좋아하는 51개월 정안이다. 벌써 세 번의 오름에 다녀왔다. 여름이 오기 전에 많이 다니자 우리.

 

  

삼다수를 연료처럼 마시며 올라갔다.


  첫 시작의 기분은 어쩌면 1월이 아닌 3월이 더 강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새 학기는 3월 2일부터 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반에 가기 전에는 다섯 살이라고 대답하다가 3월부터 여섯 살이라고 대답하는 정안을 보며 3월이 시작하는 달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떠한 시작이든 3월의 꽃처럼 아름답길 바라며. 3월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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