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대학 동기가 10월에 날을 잡았다고 연락을 해왔다. 친구에게는 오래 연애한 여자 친구가 있기는 했지만 늘 결혼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결혼 언제 할 거냐 물으면 언젠간 하겠지, 어떤 때는 몰라, 또 어떤 때는 결혼 생각은 없다던 그 친구가 드디어 결혼을 한다고 한다.
과연 결혼은 진짜, 꼭, 해야만 하는가? 사실 이러한 질문이 수면 위에 올라온 지 오래되지는 않았다. 10년 전만 해도 결혼은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30대는 모든 어른들의 공격 대상이었다. 마치 큰 죄를 지은 것 마냥. 결혼을 꼭 해야 하냐는 질문은 토론 주제에 올라올 수도 없는 그냥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나 역시 30살 즈음에는 결혼을 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되는 줄 알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겨우 사회에 나온 지 5-6년밖에 되지 않았을 무렵인데, 평생 살 사람을 정하고 결혼을 한다는 것이 사실은 현실적이지 않아 보인다. 겨우 30살인데 결혼을 위해 맞선을 보러 다니던 노처녀로 나왔던 드라마 '삼순이'를 보면 그때와 지금의 인식이 정말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하면 좋아?라는 주변 친구들의 물음만큼 난감한 것은 없다. 왜냐하면 결혼처럼 주관적인 이 없기 때문이다. 사지선다처럼 정해져 있는 것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다른 환경과 사람, 이벤트가 가득한 결혼생활에서 "응! 결혼은 좋아."라는 대답을 하는 것은 이상한 것이다. '나'의 결혼생활이 좋은 것이지 '너'의 결혼생활이 좋을지는 절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나와 남편이 결혼한 지 5년이 되었다. 남편은 내가 선택한 첫 번째 가족이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가족이라 그런지 마음에 쏙 든다. 우리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년 반 정도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딱히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닌데 타이밍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결혼 적령기 나이를 가진 남녀 두 사람이 만나 연애를 했으니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넘어가는 단계였다. 결혼은 타이밍이 50% 이상을 차지한다. 30%는 남자의 추진력과 20%의 불완전함으로 결혼은 완성된다. 타이밍과 더불어 결혼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우리 부모님이 오빠를 아주 마음에 들어 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언제 결혼할 거냐는 질문을 오빠를 처음 보자마자 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착한 오빠는 우물쭈물 곧 하겠다고 대답을 해버렸다. (훗날 들을 바로는 남편은 그때까지만 해도 결혼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사실 결혼하고 나서 아이가 바로 생기지 않는 이상 그것은 결혼생활의 시작이 아니고 연애의 연장선이다. 부모로부터 공식적으로 독립을 하고 누리는 자유생활에 가까운 것이다. 이 시기엔 결혼의 좋고 싫음을 말할 수 없는 시기이다. 늦은 밤 같이 혼자 먹기는 많은 양의 배달음식을 시켜 야식을 먹으며 영화를 보고,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 같이 산책할 수 있고, 뭘 해도 즐거운 시기이니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본격적인 결혼생활의 시작은 아이가 삶에 들어오고 나서이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이전에는 알 수 없었던 감정들과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임신과 출산 후 몸의 변화가 없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행운아 그룹에는 속하지 못했다. 변한 신체와 신체능력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육아는 시작된다. 그 속에서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은 나의 엄마나 아빠가 아닌 바로 남편이다. 이때부터 남편이 나의 가장 큰 가족이 된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어 딩크족을 부러워하던 (아주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지금도 조금 부러운) 나는 그 과정을 거치며 우리 셋의 소중함을 배우게 되었다.
갑자기 결혼에서 육아로 주제가 바뀌어 버렸는데, 이 결혼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육아이기 때문에 그렇다. 요즘은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져서 아이가 없는 가족들도 많아지고 있긴 하지만 가장 보편적인 가족의 정의는 아이가 있는 경우이니 거기에 맞춰 이야기를 하게 된다. 어느 정도 아이가 자라서 제 몫을 해내고, 부부의 시간이 조금씩 많아지기 시작하게 될 때 진정한 결혼생활에 대해 정의할 수 있을만한 시기가 되는 것 같다. 내가 선택한 가족에 따라오는 새로운 가족들과 몇 년의 시행착오를 겪고 진짜 가족으로 느끼며 챙기게 되는 시기가 되고, 내 집이 친정집에 있는 내 방이 아닌 우리 셋이 사는 집이 되어 친정집도 며칠 지내면 불편해지고, 눈만 마주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아차려지는 남편과 아이가 있어 안심될 때 그때 결혼생활에 대해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수만 가지의 아니 그 이상의 숫자만큼 다양한 결혼생활이 있다.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모두가 다른 이야기를 가진 결혼 이야기. 어떤 결혼 생활을 하게 될지는 정말 그 누구도 답을 내려줄 수 없다. 나와 상대방이 써 내려가는 그 글의 엔딩은 당사자가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가득 생기기를 바라며 써내려 가는 모두의 결혼 이야기의 끝은 해피엔딩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