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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성킴 Jan 13. 2023

캠린이의 캠핑 시작하기

 남편이 갑자기 캠핑을 하고 싶다고 한다.

 캠핑에 큰 관심은 없지만 우리는 한 팀이니 어차피 같이 다녀야 한다. 남편이 캠핑이 취미가 된다면 그것은 우리 세 명의 취미가 되는 것이다. 어느 순간 캠핑이 유행처럼 번져 나갔고, 쉽게 입문할 수 있는 취미생활이 된 지도 오래다. 내가 어릴 때, '캠핑'이라는 단어를 모를 때, 바닷가에 텐트를 가져가서 버너에 라면을 끓여 먹고, 거기서 하루를 자고 했던 것이 캠핑이라면 나 역시 어린 시절 캠핑의 추억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정안에게도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거 같았다. 안 할 이유도 없다.


 캠핑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우선 남편의 지인이 장박을 하고 있는 캠핑장에 구경을 다녀오기로 했다. 제주에 와서 가는 첫 캠핑장이다. 녹고뫼 캠핑장이라는 꽤나 제주스러운 이름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서쪽에 있는 캠핑장인데 펜션과 글램핑, 캠핑장까지 있어 꽤나 큰 규모를 자랑한다.

 가서 놀란 포인트가 몇 가지 있다. 먼저 캠핑장에 이렇게나 사람이 많다는 것이 신기했고, 텐트가 이렇게 다양하고 크기가 큰 것이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텐트 안은 더 놀라웠다. 티브이에 침대, 난로, 소파까지 없는 게 없었다. 세상에나. 캠핑이라는 것이 침낭에 들어가 새우처럼 쪼그리고 자는 게 아니고 이렇게 호화로울 수가 있다고? 주방 따로, 방 따로의 개념이 텐트 안에서도 존재한다고? 추운 겨울에 캠핑을 시작하려는 게 못마땅했는데 따뜻한 텐트 안에 들어가니 그런 생각이 싹 가셨다. 이게 겨울 장박이라는 것이구나. 내가 모르는 세계가 여기에 또 있구나.

 하지만 이렇게 맥시멀 한 캠핑은 내가 추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기분이 들었다. 편하긴 하지만 이것은 캠핑의 본 목적에서 벗어나는 것 같았다. 더 많은 경험과 더 나은 가치를 위해 캠핑 시작을 동의했는데, 이것은 그야말로 집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라 이럴 거면 차라리 집에 있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캠핑의 첫 시작이 힘들지 않았기에 좋은 이미지를 가지게 되기는 했다. 역시 미리 와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의 집이 되어 줄 귀여운 텐트를 구매했다. 남편이 어떻게 크기도 색깔도 디자인도 내 마음에 쏙 마음에 드는 걸 잘도 골랐다. 겨울 캠핑의 낭만을 즐기려면 아직 많은 것이 부족하지만 텐트를 샀다는 것 자체로 이미 우리는 들떠있었다. (필요한 게 너무 많다는 사실을 뒤로하고.)

 우선 식사 해결을 위한 모든 장비는 하나도 구매하지 않았다. 우선 지인이 만들어 놓은 우리 집 주방보다 더 많은 도구가 있는 텐트 안에서 숟가락 하나도 얹지 않고 슬며시 끼여서 식사를 해결했다. 역시 캠핑은 부지런한 사람이 하기 좋은 취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솥에 끓이는 삼계탕이며 보쌈이며 호화스러운 식사를 하고 있자니 손이 민망하기는 했으나 입은 즐거웠다.

 두 번을 지인의 장박 텐트 옆에서 맛만 보았다. 정안은 또래 친구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캠핑을 즐거운 것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같이 놀 친구도 있고,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편안함도 있었지만 역시나 우리끼리만의 캠핑이 필요할 것 같아 우리 셋이 가는 첫 캠핑을 계획했다.




 날이 좋아 모든 것이 다 괜찮은 날이었다. 정안이 놀 수 있는 큰 놀이터가 있는 곳으로 캠핑장을 정했다. 제주에서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이 더 늘어났다는 사실은 꽤 즐거운 일이다. 늘 바다로만 다니다가 내륙으로 다니니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앞으로 이 작은 텐트 하나만 트렁크에 가지고 있다면 어디서든 문제없다는 생각에 뭔가 든든해졌다.

 보쌈이나 삼계탕처럼 멋진 음식은 아니지만 쉽게 만들 수 있는 어묵탕과 오리고기로 저녁을 먹었고, 아침에는 느지막이 일어나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아주 간단하지만 맛있는 요리들로 우리의 캠핑 식사를 해결했다. 많은 재료도 필요 없고, 많은 시간을 들일 필요도 없어서 캠핑용 구이바다 하나면 이 모든 음식을 만들 수 있었다. 미니멀한 캠핑을 지향하는 우리에게 딱이었다. 너무 다행히도 바람이 없는 날이라 야외에서 불을 쓰는 것도 문제없었다. 주방이 없는 작은 텐트를 가진 우리에게는 행운인 날씨였다.

 정안은 즐겁게 논 탓인지 저녁 6:30분에 잠이 들었다. 캠핑 만세! 이로써 캠핑을 좋아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달이 아주 밝고, 하늘의 별은 반짝이고 바람은 적어 겉옷이 필요 없는 그런 밤이었다. 캠핑의 즐거움은 그날의 날씨가 얼마나 좋으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약간의 행운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행운이 비껴간 날엔 바람 소리를 들으며 밤을 지새울지도 모른다. 갑자기 내리는 비에 텐트를 말리지도 못하고 걷어야 할지도 모르고. 

 제주가 따뜻하다곤 해도 아직도 기름히터나 전기장판이 필요한 날씨라 전기선이 있는 캠핑장 위주로 다니지만 날이 풀리면 전기선이 없는 곳에서도 캠핑을 해 보고 싶다. 조금 더 날것의 캠핑도 재미있을 것 같다. 하나씩 하나씩 우리 마음에 드는 캠핑용 도구를 사는 즐거움도 느끼면서 천천히, 그러나 너무 많거나 넘치지 않게 우리만의 작은 집을 꾸미는 마음으로 캠핑을 계속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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