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되는 서른넷의 시작이었다. 나의 선택을 믿고 더욱 힘을 빼길 바랐던 한 해. 그렇게 일기장의 첫 페이지를 썼다.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육체적으로는 힘들지 몰라도 104.5km를 고속버스로 출퇴근하면서 이 긴 이동시간이 나의 마음 근육을 성장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왕복 4시간을 출퇴근 하면서 유투브, 팟캐스트, sns를 보는 고요한 시간을 즐기게 되었고 오히려 폭넓은 세상을 만났다. 하지만 그렇게 시야가 넓어지고 거대하고 멋진 세상을 알아가게 되다보니 그만큼 현재 하는 일에 대해 불만이 생기거나, 혹은 만족하고 싶고, 더 즐기고 싶고, 더 자신감있길 바라는 부족한 내 자신이 보였다.
일로 따지면 좋은 작품들을 만난 상반기였다.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 자비에 르그랑 감독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을 통한 자아실현이 상대적으로 중요한 내게 상반기 이 작품 이외에 다른 작품들을 진행했음에도 이 두 작품만이 기억에 남는 걸 보면 나의 취향과 가치가 어디에 깃발이 꽂혀있는지 확실히 알게 한 시기였다. 나를 정확히 알게 되었다. 참 '나같은' 영화를 좋아하는구나. 나는 내가 하는 '영화'를 일을 진행하는 순간만큼은 가장 사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만든 감독, 배우 보다도. 그리고 나는 그런 온 힘을 쏟을 수 있는 영화를 여전히 하고 싶은 것 같다. 그런 영화를 지금은 자유롭게, 나의 의지대로 할 수 없기에 힘든 것 같다. 옳지 않은 판단을 하는 클라이언트/상사를 따라야하고 또 사실 그것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없는 자신이 싫다. 그래서 인생의 권태기라 감히 칭했던 시기가 오기도 했고. 유별나게 삶에 의미 부여를 하는 내 자신이 부담스럽고 불편했던 것 같다. 좀 더 똑부러지고, 나의 선택과 나의 판단에 확신을 가지고 싶다. 벌써 8년차라고 마음은 자꾸 말한다.
남은 2018년의 반절은 어떻게 보내야할까. 그래서 나는 더 또렷하고 당당해질테다. 힘을 뺄 것이 아니라, 나는 힘을 더 줘야 버틸 수 있는 사람이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나의 컨텐츠를 쌓아갈 것이다. 누군가의 지시나 컨펌이 아닌, 내 안의 별을.. 찾아서 헤쳐나가고 싶다. 나의 인간관계는 의도적으로 더 더 좁아질 것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정말 영원히 함께 할 사람. 3명만 있으면 된다는 그 말을 이제는 확실하게 알겠다. 나는 다행이 '남편'이라는 함께하면 가장 쿵짝이 잘 맞는 최고의 짝꿍을 만났고 또 함께 하고 싶은 동료들을 만났으니 충분하다. 인간관계에 온통 서툰 나이지만 더이상 관계를 넓히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걸 알아주는 단 몇명만 있으면 된다. 여행을 좀 더 떠나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영원히 놓지 않을 것이다. 나와 남편의 사랑스러운 2세도 슬슬 준비할 것이다. 이렇게 호기심과 욕심이 많아서 내가 아이를 잘 품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겉으로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다니지만, 그 경험 또한 놓치고 싶지 않은 소중하고 가치있는 시간이리라 믿기에.
일상의 단단함을 여민 시기이기도 했지만 일에서는 이리저리 흔들리기도 하고, 다양한 감정들이 휘몰아치던 시기였던 2018 상반기. 더 이상 힘을 빼겠다거나, 결국 다 부질없다와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난 조금 다른 의미로, 가치를 쫓으며 치열하게 살아내야 하는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