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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lidayreading Aug 12. 2018

<어느 가족> 핏줄보다 위대한 유대와 연대감

어느 고빠의 <어느 가족>을 통해 달라진 세계




얼마 전, 이동진의 라이브톡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참여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집에서 한시간 가까이 걸리는 CGV를 찾아 라이브톡을 관람했었다. 영화는 두말할 나위 없이 좋았고, 라이브톡도 매우 만족스러웠다. 이동진 평론가의 말 중에 인상 깊었던 건 "아마 칸영화제에서 고레에다 감독이 상을 수상했을 때 일본 국민 다음으로 한국 관객들이 가장 기뻐했을것 같다"며, 스스로도 마치 고향에서 오랫동안 흠모하던 동네 형을 동경이나 서울에서 알아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고 고백했다. 이보다 더 정확하게 한국 국민들의 고레에다 감독에 대한 애정을 온전하게 표현한 문장이 있을까. 실제로 국내에는 기이할 정도로 고레에다 감독의 팬들이 많다. 이와이 슌지 감독 이후, 국내에서 실사 영화로는 고레에다 감독이 독보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것 같다. 아마도 한국에서도 가장 관심이 많은 주제인 '가족'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특유의 따스한 영상미 또한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또한 그의 영화는 다양성영화로 분류되는데 다양성영화라는 타이틀이 있는 작품치고 보편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부담없이 관람이 가능하다. 이렇듯 굳건한 고빠들의 지지가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7월 개봉한 <어느 가족>은 현재 개봉 한달도 안되어 12만 관객을 목전에 두고 있으며 그의 영화 중 국내 최고 스코어 기록을 앞두고 있다.


사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이후의 고레에다 감독의 행보에 대해 불만족스러워하는 일부 팬들이 있었다. 사회적 문제에 대해 깊이있게 탐구하고, 일상을 때로는 충격적으로, 다큐멘터리를 보듯 사실적으로 담아낸 그의 연출 방식이 다소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스스로도 결혼 전에는 과연 '가족이란 무엇인가/죽음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고민을 해왔다면, 아이를 낳고 가족이 생기면서 자신의 아이에게 보다 따뜻한 세상, 달라질 세상을 기대케 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밝힌 만큼 그의 변화 또한 자연스러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느 가족>이 좋았던 것은 이전 작품들이 이미 맺어진 가족 속에서 어떤 변화를 보여주는 스토리였다면, 이들은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진짜 가족같은 굳건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와 주변인들로 인해 변화를 겪는다는 점이다. '피로 맺어진 가족만이 진짜 가족일까?' 유교적 정서로는 쉽게 내뱉을 수 없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많은 이들이 고민하던 지점을 과감히 하지만 섬세하게 드러낸 고레에다 감독님의 과감한 결단에 큰 박수를 보낸다. 좋은 어른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제언해준 것과 같아서 좋았다.


나는 <어느 가족>이 보여주는 낯선 동거. 유대를 통한 가족의 형성. 이러한 공동체 형태가 앞으로 우리 사회가 지녀야 할 새로운 가족의 형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아니 이미 되고 있다. 1인 가족이라 불리는 독신. 자식 없는 딩크 부부들이 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삶의 형태는 시작점만 다를 뿐 최근 쉐어하우스 형태의 주거 방식이 주목을 받는 것과 유사하다. 이들의 모습은 오히려 진짜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혈연들이 갖는 부담감. 즉, 반드시 그 사랑에 보답해야한다는 부채감이 없는 담백한 관계였고, 결혼 후에도 여전히 피로 맺어진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어떤 부분에선 이들이 부러웠다. 이들은 거리두기가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도 어느 정도의 체계와 규율,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뜨거움'을 가장해 서로의 발목을 붙잡고, 더 예의가 없고, 더 날선 언어들을 내뱉고, 오히려 더 나쁘고 이기적이게 되는 가족들이 얼마나 많은가. 책임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두가 함께 구렁텅이로 빠져버려야만 하는 가족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았는가? 오히려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에게 더 집착하지 않을 수 있고, 보답없는 애정을 표할 수 있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는 건 아닐까.


<어느 가족>을 통해 나는 세상의 이면을 좀 더 살펴 볼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영화가 고레에다 감독의 마스터피스, 그의 가족 영화의 성숙과 집대성이라고 불리는 만큼, 나 또한 이 영화를 통해 존경할만한 멋진 어른에게 좋은 가르침을 받아서 감동을 받은 느낌이랄까. 조금은 세상의 또 다른 모습을 이해하려고 하는 더 나은 어른이 되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감상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문제를 더욱 나의 문제로 직시하게 되고, 나의 일상으로 끌어들일 수 있게 된 것 같다. 내가 만일, <어느 가족>의 스토리를 보도로 접했다면? 아마도, 영화 안의 경찰처럼, 주변 사람들처럼. 정말 말도 안되는 끔찍한 일이 생겼다고, '그알'에 나올법한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아이를 낳을 수 없어 아이를 납치한, 게다가 살인을 저지른 적 있는 어느 부부의 이야기라고. 이면이 아닌 외피만 발췌해서 여기저기 찌라시를 공유하고 다녔을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가족>을 통해 더 이상 세상이 말하는 명확한 팩트일지라도 세상의 모든 문장들은 결국 사람의 관계, 사람의 이야기. 비밀스러운 감정들이 교차하는 사건이기에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아이는 훔쳐온 게 아니라

누군가 버린 것을 주워온 것일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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