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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몽 Nov 13. 2023

여행병에 걸렸을 때 공항으로 간다

프롤로그

친구에게 받은 여행 엽서

파리에서 에펠탑 그림이 그려진 엽서가 도착했다. 꼭꼭 눌러 적은 손글씨가 아날로그 감성을 선물했다. 퇴사를 하고 3개월 정도 유럽여행을 떠난 친구가 보낸 엽서였다.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간단한 안부 인사와 현재 상황을 간단하게 적은 짧은 글이었다. 이후로도 엽서는 계속 도착했다. 


갑자기 날아온 엽서를 보며 친구와 함께 여행을 하는 느낌이 들어 기다려졌다. 현실을 살아내느라 잊고 있던 여행을 갈망하며 살아왔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친구의 엽서는 프르스트의 마들렌같이 여행의 기억을 불러일으켜줬고, 그때의 감정도 떠오르게 했다.  


엽서를 보냈던 친구는 한국에 돌아왔다. 쌀쌀한 가을. 여자 둘이 안국역 근처에 있는 대림국수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여행기를 나누었다. 친구도 돈을 벌면 여행을 갔고, 시간적인 여유로운 삶을 지향했다. 중학교 때 알던 친구가 영끌을 해서 잠실에  아파트를 구매했다는 얘기를 하며 준비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토로했다. 하지만 금세 또 다른 여행지를 찾아보며 다음에는 어디로 여행 갈지를 고민하며 수다를 떨었다. 


그렇다. 나이는 점점 들어가지만, 일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쏟아부으며 살고 싶지는 않다. 그게 욕심일까. 신세한탄을 하며 여전히 나를 지키며 일할 수 있는 방법과 여행지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나누며, 내가 갔던 곳을 친구도 갔다는 사실에 엄청난 동질감과 여행에 대한 갈망이 커져갔다. 쌀쌀해진 날씨 탓인지 마음에 헛헛함 때문인지 너무 추워 온몸이 쪼그라들었다.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집으로 향했다. 여행병이 걸린 것 같다. 

인천국제공항 비행기 편이 적힌 전광판

가끔 공항으로 여행을 떠난다. 공항은 설레는 장소이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는 공항에서 사람들을 기다리는 장면이 나온다. 다양한 형태의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로 표현되었다. 여행은 가고 싶지만 불가능할 때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 공항으로 여행을 떠난다. 가장 싸게 여행하는 방법이다.


비행기를 탈 것도 아닌데 왜 공항을 가냐고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행병에 걸린 사람들이라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 비행기를 타러 가지는 못하지만, 여행을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니까. 뭐, 병이 더 심각해질 수도 있고. 


인천공항 2층 입국장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더 올라가면 식당가가 있다. 거기에는 통창으로 활주로가 보이는 곳이 있다. 여행을 떠나려고 비행기가 서있거나 날아가는 장면도 볼 수 있다. 통유리창 앞에 마련되어 있는 벤치에 앉아 비행기를 구경하는 재미는 흥미롭다. 마치 진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거기서 커피 한 잔을 시키고, 활주로의 비행기들을 보면서 상상을 해본다.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새로운 나라에 공항에 도착해서 숙소를 찾아가고, 서치 했던 맛집이나 여행지, 아니면 미술관 박물관들을 찾아간다. 그리고 유연히 만나게 되는 카페나 아니면 사람들을 보면서 새로운 생각을 한다. 나름 기분전환이 된다. 


여행이 가고 싶을 때 하는 더 쉬은 방법도 있다. 먼저 핸드폰을 켜고 스카이스캐너 앱을 터치한다. 없다면 깔아보는 것도 좋다. 출발과 도착지를 입력하면 가장 싼 비행기 표들 정보가 주르륵 나온다. 그러면 돈을 계산하며 여행 계획을 세우고 여행을 떠난다. 그러다 통장 잔고에 돈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꿈에서 깬다. 요즘 유행하는 랜선여행처럼 대리만족은 할 수 있을 것이다. 


낯선 공간은 그동안 내 기억 속 저편에 위치했던 것들을 현실로 끌어들여 눈앞에 놓는다. 너무 비싼 생각이기는 하지만, 가끔 그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기억이거나 생각일 경우가 많았다. 일상에서는 찾아오는 생각들이 아니라 소중히 여기며 기록하는 편이다. 여행을 가지 못하니 공항여행으로 여행병을 달래 본다. 

@대림국수 안국점

대학을 졸업하고 1년에 한 번 해외여행을 다니겠다고 결심했다. 20대에는 일하고 돈이 생기면 여행 가방을 들고 어디든 떠났다. 언제든 떠나는 자유로운 나의 모습을 보며 주변의 친구들은 부러워했다. 여행을 하려면 돈, 시간, 여유 3박자가 맞아야 하니까. 나는 여행병에 걸려 10곳 이상에 나라를 돌아다녔다. 


에르메스 백을 하나 살 정도의 여행을 했다. 한번 해외여행을 가면 기본 100만 원정도 비용이 든다. 아주 아껴서 사용한다는 기준에서. 한 번 여행에 못해도 명품백 하나 정도는 살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더 비싼 거 같지만. 


여행이 아닌 명품백을 선택했다면 가방 하나는 남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명품백이 아닌 여행을 선택했다. 둘 다를 할 수 있는 여건의 사람이면 상관없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자동차 하나 값을 아무렇지 않게 들고 다닐 정도의 심장도 없다. 이래놓고 막상 누가 에르메스 백을 공짜로 준다면 마다하지는 않고 받을 것이다. 


여행이 고파서 갑자기 떠났던 공항 여행을 하며 나에게 여행은 무엇인지 생각했다. 일을 그만두거나 힘든 일이 끝났을 때 여행을 갔다. 여행은 '전환'의 의미가 컸다. 낯선 곳에서 느끼는 잠자리, 먹을 것, 언어의 불편함들이 나에게는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극복하는 자신을 보며 새로운 힘을 얻었다. 말도 안 통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은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예측불허의 시간들이 두렵지만, 설렌다.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여행 중에 일어나는 어려움은 가끔은 웃음으로 승화된다. '그래 여행이니까...' 이러고 넘기게 된다. 


여행을 다녀와서 이런 것을 삶에도 적용해서 살 수 없을지 고민했다. 그렇다면 세상에 어려운 일들을 만날 때도 '그래 이런 일쯤이야... 여행이잖아'라며 웃어넘길 수도 있을 텐데. 삶을 여행처럼 살아가라는 이야기를 많은데 쉽지 않다. 쉬웠다면 여행사업이 망했을지도. 


누군가 나에게 명품백을 가질래 여행을 갈래라고 묻는다면 '여행'이라고 답할 거 같다. 약간의 고민을 하겠지만, 역시 여행이 주는 설렘과 기쁨이 명품백을 가졌을 때보다 오래 유지된다. 물건을 살 때 행복은 그 순간이 가장 클 것이고, 이후에는 점점 줄어든다. 그러나 경험과 추억은 오랜 시간 인생에 자리 잡는다.  


'여행 가고 싶어'라는 말을 하며 입버릇처럼 말하며 살았다. 친구의 엽서로 소환된 여행의 기억들을 기록하며 새로운 나와 우리를 발견하고 싶어 기록을 시작하게 되었다. 인생에서 많이 경험해 본 것 중에 '여행'이 있었다. 방황하는 시절에 유일한 안식처이자 도피처였다. 글쓰기 여행이 새로운 '전환'을 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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